
한때 전 세계에서 가장 실패한 스타트업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기업이 있었습니다. 바로 WeWork입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위워크는 실리콘밸리의 탐욕과 거품을 상징하는 기업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기업가치는 한때 470억 달러를 넘어서며 글로벌 대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창업자인 Adam Neumann은 혁신가로 추앙받았습니다. 하지만 상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재무구조와 경영 방식이 공개되자 상황은 순식간에 뒤집혔습니다. 매년 천문학적인 적자가 발생하고 있었고, 창업자의 사익 추구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투자자들의 신뢰는 무너졌습니다. 결국 위워크는 상장에 실패했고 기업가치는 폭락했습니다. 이후 코로나19까지 터지면서 사람들은 공유오피스라는 산업 자체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재택근무가 대세가 되었고 기업들은 사무실을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위워크는 결국 2023년 미국에서 파산보호를 신청하게 되었고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이 회사를 역사 속으로 사라질 기업으로 분류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최근 미국 시장을 살펴보면 예상과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했던 공유오피스 시장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과거처럼 공격적인 확장과 화려한 성장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훨씬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새로운 수요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의외로 AI 산업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AI 산업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GPU입니다. 엔비디아, AMD,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같은 분야가 대표적입니다. 실제로 지금 시장의 관심도 대부분 이쪽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진짜 큰 변화는 항상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나타났습니다. 철도 시대에는 철도회사보다 철강회사가 더 큰 수혜를 봤고 자동차 시대에는 자동차 제조사뿐 아니라 석유와 도로 산업이 함께 성장했습니다. 인터넷 시대에도 서버와 통신망 기업들이 엄청난 성장을 경험했습니다. AI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지금 AI 모델과 반도체에 집중하고 있지만 그 주변에서 발생하는 2차, 3차 수혜 산업들도 조용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생성형 AI 열풍으로 인해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과거 닷컴 버블 시절 인터넷 기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던 것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다만 지금의 AI 스타트업들은 특징이 조금 다릅니다. 대부분 인공지능 연구원과 개발자 중심의 소규모 조직으로 출발합니다. 직원 수가 10명에서 50명 수준인 경우가 많고, 투자 유치가 성공하면 몇 달 만에 100명 이상으로 늘어나기도 합니다. 반대로 투자 환경이 악화되면 조직 규모를 급격히 줄이는 경우도 흔합니다. 이처럼 성장 속도와 조직 규모의 변동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과거처럼 5년, 10년 단위의 장기 사무실 임대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오히려 부담이 됩니다.
여기서 공유오피스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필요한 만큼만 공간을 사용하고 인원이 늘어나면 즉시 확장할 수 있으며 반대로 줄어들 경우에도 부담 없이 규모를 축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국의 AI 스타트업 생태계가 집중된 San Francisco, New York City, Austin 등에서는 이러한 수요가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AI 기업들이 투자자들과 가까운 지역에 모이면서 공유오피스는 단순한 업무 공간을 넘어 네트워킹 허브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습니다. 결국 AI 산업이 새로운 형태의 오피스 수요를 창출하고 있는 셈입니다.
여기에 하이브리드 근무 문화의 확산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당시 많은 기업들은 재택근무가 미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나타났습니다. 조직문화가 약해지고 직원 간 협업이 줄어들었으며 신입사원 교육과 멘토링에도 어려움이 발생했습니다. 결국 많은 기업들이 완전 재택근무 대신 주 2~3회 출근하는 하이브리드 근무 체계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이브리드 근무가 확산되면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직원 수는 100명인데 실제 출근 인원은 매일 40~50명 수준인 경우가 많아진 것입니다. 과거처럼 대형 사무실을 유지하는 것이 비효율적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점점 유연한 공간을 원하고 있습니다. 필요할 때만 사용하고 규모를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공간 말입니다. 공유오피스는 바로 이러한 니즈와 맞아떨어집니다. 과거 위워크가 이야기했던 유연한 오피스 모델이 이제야 시장 환경과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위워크는 너무 일찍 미래를 이야기했던 기업일 수도 있습니다. 당시에는 기업들이 안정적인 장기 임대를 선호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유연성이 경쟁력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많은 오피스 빌딩이 공실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모든 건물이 똑같이 힘든 것은 아닙니다. 교통이 편리하고 접근성이 좋은 핵심 지역의 프리미엄 오피스는 여전히 수요가 존재합니다. 반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오래된 건물들은 공실률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사무실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비효율적인 사무실을 거부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기업들은 비용을 줄이면서도 직원들의 협업 효율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을 찾고 있고 공유오피스는 그 대안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여기에는 중요한 시사점이 숨어 있습니다. 지금 시장은 AI를 이야기하면 엔비디아와 반도체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이 가장 직접적인 수혜 기업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진짜 큰 돈은 종종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곳에서 만들어집니다. AI 산업이 성장하면 데이터센터가 필요하고 전력이 필요하며 냉각 설비가 필요합니다. 동시에 개발자들이 일할 공간도 필요하고 스타트업들이 입주할 사무실도 필요합니다. 결국 AI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혁명이 아니라 산업 구조 전체를 바꾸는 거대한 변화입니다.
그래서 저는 위워크의 이야기가 단순히 한 기업의 재기 스토리로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AI 시대가 만들어내는 예상치 못한 변화들을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습니다. 모두가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비즈니스 모델이 환경 변화에 따라 다시 기회를 얻는 모습은 투자에서도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시장은 언제나 과거를 기준으로 미래를 판단하려고 하지만 진짜 기회는 세상이 바뀌는 순간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공유오피스 시장의 변화 역시 그런 사례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역사상 가장 실패한 스타트업으로 불렸던 위워크가 이제는 AI 시대의 새로운 수혜주로 다시 언급되기 시작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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