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시장을 보면 하루는 AI가 세상을 다 먹을 것처럼 오르고, 다음 날은 거품 논란이 나오면서 급락합니다. 특히 반도체 주식은 변동성이 극단적으로 커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변동성에 휘둘리다 보면 가장 중요한 질문을 놓치게 됩니다. “AI가 계속 확장된다면, 그 인프라는 누가 쥐고 있는가?” 이 질문을 깊게 파고들면 결국 한 기업으로 수렴합니다. ASML입니다.
ASML은 단순한 반도체 장비 회사가 아닙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EUV(극자외선) 노광 장비를 상용화한 기업입니다. EUV는 7nm 이하, 특히 5nm, 3nm, 그리고 이제 막 본격화되는 2nm 공정에서 필수입니다. AI 가속기, 데이터센터용 GPU, 첨단 모바일 AP, 고성능 CPU 모두 이 공정을 기반으로 생산됩니다. 즉, AI 모델이 아무리 고도화돼도, 그 모델을 돌리는 칩을 만들 수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칩을 만들려면 EUV가 필요합니다.
현재 ASML의 핵심 고객은 TSMC, Samsung Electronics, Intel 입니다. 이 세 기업이 사실상 글로벌 첨단 공정을 나눠 갖고 있습니다. AI 경쟁이 심화될수록 이 기업들은 설비투자를 멈출 수 없습니다. 특히 2nm 이하 공정 경쟁은 단순한 성능 개선이 아니라 전력 효율, 집적도, 서버 운영 비용까지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여기서 뒤처지면 클라우드 경쟁에서도 밀립니다.
ASML의 진입장벽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EUV 한 대 가격은 수천억 원에 달합니다. 개발에 20년 이상이 걸렸고, 부품 수만 해도 수십만 개에 이릅니다. 독일, 일본, 미국 등 글로벌 초정밀 부품 업체들과 얽힌 공급망은 사실상 하나의 생태계입니다. 이걸 단기간에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중국이 수년째 장비 국산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EUV 단계까지는 여전히 큰 격차가 존재합니다.
최근 시장에서 더 주목해야 할 것은 High-NA EUV입니다. 기존 EUV보다 더 높은 해상도를 제공해 2nm 이하 공정을 가능하게 하는 차세대 장비입니다. 이미 초기 고객사로부터 주문을 받았고, 일부는 출하가 시작됐습니다. High-NA는 단순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새로운 사이클의 시작입니다. 과거 DUV에서 EUV로 넘어갈 때처럼, 기술 전환이 일어나는 구간에서는 장비 업체가 가장 먼저 수혜를 받습니다.
재무 구조를 보면 더 명확해집니다. ASML은 장비 판매뿐 아니라 설치 이후의 서비스, 유지보수, 소프트웨어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장비가 깔리면 10년 이상 지속적인 서비스 매출이 발생합니다. 이는 매출 변동성을 줄이고, 영업이익률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영업이익률은 30%대 중반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현금흐름도 매우 견조합니다. 단순한 경기민감주와는 결이 다릅니다.
물론 반도체 사이클은 존재합니다. 메모리 업황이 꺾이면 장비 발주도 늦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최첨단 공정 투자”는 쉽게 멈추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범용 메모리 투자는 줄어도, AI 서버용 고성능 칩과 차세대 공정 투자는 전략적 투자입니다. 실제로 AI 수요가 폭발하면서 데이터센터 CapEx는 역사적 고점을 경신하고 있습니다.
밸류에이션 측면에서 ASML은 항상 저평가 영역에 있던 기업은 아닙니다. 프리미엄을 받습니다. PER 기준으로 시장 평균보다 높게 거래됩니다. 그러나 이는 독점 구조와 기술 우위를 반영한 결과입니다. 시장이 공포에 빠질 때 조정은 나오지만, 구조적 성장 스토리가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AI 인프라 확장이라는 장기 테마가 유효하다면, ASML의 멀티플이 완전히 붕괴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AI 생태계를 넓게 보면 또 다른 축이 있습니다. 메모리입니다. AI 서버에는 고대역폭 메모리(HBM)가 필수입니다. 이 분야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는 기업이 SK hynix 입니다. HBM3, HBM3E를 넘어 HBM4로 가는 과정에서 수익성 개선이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AI 모델이 커질수록 메모리 용량과 속도는 더 중요해집니다. 결국 EUV로 생산되는 로직칩과 HBM 메모리는 함께 움직이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AI 칩 생태계의 정점에는 NVIDIA 가 있습니다. GPU, CUDA 플랫폼, AI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통합한 구조는 독보적입니다. 다만 엔비디아는 이미 시장 기대가 매우 높게 반영된 상태입니다. 변동성도 큽니다. 반면 ASML은 상대적으로 덜 화려하지만, AI 전쟁의 ‘장비 공급자’라는 위치에서 꾸준히 수혜를 받는 기업입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총을 파는 회사가 안정적인 수익을 거두는 것과 비슷한 구조입니다.
리스크도 냉정하게 봐야 합니다. 미중 갈등, 수출 규제, 글로벌 경기 둔화는 변수입니다. 특히 중국 매출 비중이 정책에 따라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첨단 공정 장비는 여전히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상황입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AI 인프라 투자 계획을 축소하지 않는 한, 최첨단 공정 경쟁은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투자의 핵심은 구조입니다. AI가 단기 테마인지, 아니면 산업 구조를 재편하는 장기 흐름인지에 대한 판단입니다. 만약 후자라면, 그 인프라의 병목을 쥔 기업은 반드시 포트폴리오에서 검토해야 합니다. ASML은 그 병목에 가장 가까운 기업입니다. 화려한 AI 서비스 기업이 아니라, 그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는 공정의 핵심 장비를 공급합니다.
시장은 언제든 흔들립니다. 그러나 AI 모델이 더 커지고, 데이터센터가 더 늘어나고, 전력 효율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더 미세한 공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공정을 구현하는 기술은 여전히 ASML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단기 주가가 아니라, 기술과 산업 구조를 본다면 이 기업의 위치는 생각보다 훨씬 견고합니다. AI 시대가 계속된다면, EUV 장비의 불빛도 계속 켜져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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