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퇴사’는 하나의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하거나, 프리랜서로 전환하거나, 아예 다른 삶을 시작하겠다는 선언이 멋지게 들리던 시기였죠. 그런데 요즘은 분위기가 확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은 회사를 그만두지 않습니다. 대신 조용히 통장을 하나 더 만듭니다. 퇴사 대신 투잡, 정확히 말하면 ‘월급 말고 수익 구조를 하나 더 얹는 흐름’이 일상으로 들어왔습니다. 이 변화가 재미있는 이유는, 단순히 부업이 유행해서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불확실성을 벗어나기 위해 퇴사를 선택했다면, 지금은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퇴사를 미루고 수익원을 분산시키는 쪽으로 더 많이 움직입니다. 안정은 회사가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설계하는 거라는 감각이 널리 퍼졌다고 보셔도 됩니다.
이 흐름을 이해하려면 먼저 사람들이 왜 퇴사를 덜 하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첫 번째는 고정비가 너무 커졌기 때문입니다. 월급이 크게 오르지 않는 체감 속에서 주거비, 교육비, 생활비가 한번 올라가면 잘 내려오지 않습니다. 예전엔 ‘잠깐 쉬었다가 다시 구하면 되지’가 성립하던 사람들도, 지금은 그 공백이 생각보다 치명적일 수 있다는 걸 압니다. 특히 가족이 있거나 대출이 있거나, 생활이 어느 정도 고정 궤도에 들어간 분들일수록 퇴사는 결단이 아니라 리스크가 됩니다. 두 번째는 기업도 더 이상 절대 안전자산이 아니라는 점이 널리 공유되었기 때문입니다. 구조조정, 성과급 변동, 조직 개편, 예고 없이 바뀌는 평가 체계, ‘잘하던 사람도’ 어느 순간 자리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경험담이 주변에 많아졌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합니다. 회사를 믿지 말자는 의미가 아니라, 회사 하나에 내 생계를 올인하면 위험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투잡’일까요. 예전에도 부업은 있었는데, 지금처럼 보편화되지는 않았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도구와 플랫폼입니다. 과거 부업은 대개 노동형이었습니다. 주말 알바처럼 시간을 갈아 넣는 형태였죠. 그런데 요즘 투잡은 점점 구조형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시간을 팔아 돈을 버는 방식에서, 한 번 만든 결과물이 반복적으로 돈을 벌어주는 방식으로 이동합니다. 여기서 구조형 투잡의 핵심은 ‘자산화’입니다. 글, 영상, 템플릿, 강의, 커뮤니티, 제품 페이지, 리뷰 콘텐츠, 제휴 링크, 뉴스레터, 업무 자동화 설정 같은 것들이 모두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자산을 만드는 비용이 AI와 자동화 도구 덕분에 확 내려갔습니다. 예전에는 글을 쓰려면 자료조사부터 구성, 문장 교정까지 다 손으로 해야 했고, 영상을 만들려면 촬영, 편집, 자막, BGM, 썸네일까지 시간이 많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자료를 모으는 속도, 구조를 짜는 속도, 초안을 만드는 속도가 압도적으로 빨라졌습니다. 시간을 많이 쓰지 않아도 ‘퀄리티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나오는 환경이 열리면서, 투잡이 특수한 사람의 영역에서 보통 사람의 선택지로 내려왔습니다.
여기서 사람들이 많이 오해하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투잡이 유행하는 이유가 ‘돈을 더 벌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돈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본질적인 이유는 심리적 안전장치입니다. 월급 외에 매달 10만 원이라도 들어오는 구조가 생기면 사고방식이 바뀝니다. 회사에서 갑자기 변수가 생겨도 ‘완전한 0’이 아니라는 느낌이 주는 안정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안정감은 이상하게도 삶의 선택을 넓혀 줍니다. 공격적으로 투자할 때도, 이직을 고민할 때도, 가족의 계획을 세울 때도, ‘버퍼’가 있다는 감각이 사람을 더 담대하게 만듭니다. 투잡은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라 리스크 분산 장치라는 말이 여기서 나옵니다.
그럼 실제로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 투잡을 만들고 있을까요. 가장 흔한 축은 네 가지입니다. 콘텐츠 기반, 판매 기반, 지식 기반, 자산 기반입니다. 콘텐츠 기반은 블로그, 쇼츠, 유튜브, 인스타그램, 뉴스레터처럼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해서 수익으로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이 수익은 광고, 제휴, 협찬, 유료 구독, 디지털 제품 판매 등 여러 갈래로 나뉩니다. 판매 기반은 스마트스토어 같은 오픈마켓, 위탁판매, 해외 소싱, 리셀, 공동구매, 브랜드 제휴 등 ‘상품을 매개로 마진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지식 기반은 강의, 코칭, 컨설팅, 자료 판매, 템플릿 판매처럼 ‘내가 알고 있는 걸 패키징해서 파는 방식’이고, 자산 기반은 배당 ETF, 리츠, 채권 이자, 연금계좌 운용처럼 ‘돈이 돈을 벌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흥미로운 건 요즘은 이 네 가지를 섞는 사람이 늘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콘텐츠로 사람을 모으고, 그 콘텐츠가 제품 판매로 이어지며, 그 판매에서 남는 현금을 자산 기반으로 굴려서 현금흐름을 두텁게 만들고, 그 과정 자체를 다시 콘텐츠로 만들어 선순환을 만드는 형태입니다. 투잡이 단순한 부업이 아니라 하나의 작은 비즈니스 시스템처럼 진화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시스템화가 가능해진 배경에는 ‘플랫폼의 표준화’가 있습니다. 쇼핑을 하려면 예전엔 홈페이지를 만들고 결제를 붙이고 물류를 계약해야 했지만, 지금은 플랫폼이 거의 다 해결해 줍니다.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블로그, 숏폼, 영상 플랫폼이 유통을 맡아줍니다. 더 나아가 AI와 자동화 도구가 제작 공정을 분해해서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글은 문장 교정과 구조화가 쉬워졌고, 이미지는 템플릿 기반 디자인 도구가 대중화됐고, 영상은 자동 자막과 자동 컷 편집이 보편화됐습니다. 여기에 일정 관리, 고객 응대, 정산, 통계 분석까지 붙으면, 개인도 사실상 ‘소형 미디어’ 혹은 ‘소형 상점’을 운영할 수 있는 시대가 됩니다. 그래서 요즘 투잡의 본질은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설계’의 문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많이 일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라, 같은 시간을 쓰더라도 반복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사람이 이깁니다.
투잡이 구조형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반복 가능한 단위로 쪼개기’입니다. 많은 분들이 투잡을 시작할 때 처음부터 거창하게 시작합니다. 유튜브 채널을 키우겠다, 쇼핑몰을 크게 만들겠다, 전자책으로 월 500을 벌겠다 같은 목표를 세우는데, 이 목표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실패 확률이 올라갑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목표가 크면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중간에 멈출 이유도 많아집니다. 요즘 잘 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목표를 ‘작은 단위의 반복’으로 바꾼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블로그라면 일주일에 2개 글을 3개월만 쌓아보는 식으로, 쇼츠라면 하루 1개를 30일만 올려보는 식으로, 스마트스토어라면 상품 20개 등록을 목표로 잡는 식으로요. 여기서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반복의 완성’입니다. 반복을 완성하면 데이터가 쌓이고, 그 데이터가 방향을 잡아줍니다. 어떤 키워드에 반응이 오는지, 어떤 유형의 콘텐츠에 저장과 공유가 생기는지, 어떤 제품이 전환이 되는지, 내 시간 대비 효율이 어디서 나오는지 말입니다. 투잡은 감이 아니라 통계가 되기 시작할 때부터 재미있어집니다.
그런데 현실은 이렇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투잡을 해보면 초반에 반드시 부딪히는 벽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체력과 시간입니다. 회사 일이 바쁜데 추가로 뭔가를 하려면 지칩니다. 그래서 ‘매일’ 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실패 확률이 올라갑니다. 오히려 지속 가능한 속도로 설계하는 게 중요합니다. 매일이 아니라 주 3회라도 괜찮습니다. 핵심은 생활 리듬에 붙여서 자동화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월·수·금 퇴근 후 40분은 투잡 작업, 토요일 오전 2시간은 정리와 업로드 같은 식으로요. 두 번째는 콘텐츠를 만들어도 반응이 없을 때의 허무감입니다. 이건 누구나 겪습니다. 그래서 초반에는 ‘수익’보다 ‘자산’에 초점을 맞추는 게 좋습니다. 반응은 늦게 오지만 자산은 쌓입니다. 글 30개, 영상 50개, 상품 100개가 쌓이면 그때부터 갑자기 통계가 움직입니다. 세 번째는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입니다. 이때는 자기 취향으로 시작하면 오히려 길을 잃습니다. 취향은 중요하지만, 처음엔 수요가 있는 영역에서 시작하는 게 빠릅니다. 사람들은 결국 문제를 해결해주는 콘텐츠와 상품에 반응합니다. 돈 아끼는 법, 시간 줄이는 법, 건강 관리, 육아, 여행, 직장 생활, 자기계발, 투자, 소비 리뷰처럼 반복되는 고민이 있는 영역이 강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투잡이 지금 시대에 맞을까요. ‘핫하다’가 아니라 ‘살아남기 쉽다’를 기준으로 보면 세 가지가 눈에 띕니다. 첫째, 제휴 기반 콘텐츠입니다. 내가 제품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되고, 재고가 필요 없고, 고객응대가 최소화되는 구조입니다. 리뷰 콘텐츠를 만들고 제휴 링크로 연결되는 방식은 초반에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입니다. 특히 단발성보다 누적형이 중요합니다. 검색을 타는 글, 오래 쓰이는 가이드형 글은 시간이 지나도 들어옵니다. 둘째, 디지털 제품입니다. 템플릿, 체크리스트, PDF 가이드, 워크시트, 업무 자동화 매크로, 프레젠테이션 템플릿 같은 것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런 것들의 장점은 한 번 만들면 재고가 무한이고, 배송이 없고, 마진이 높다는 점입니다. 셋째, 마이크로 지식 상품입니다. 거창한 강의가 아니라 1~2시간짜리 미니 클래스, 또는 특정 문제를 해결해주는 상담 패키지처럼요. 사람들이 정말 돈을 내는 순간은 ‘정보’가 아니라 ‘확신’이 필요할 때입니다. 내 상황에 맞게 정리해주는 사람에게 비용을 지불합니다. 그래서 전문성이 아주 깊지 않아도 ‘한 영역을 반복해서 해결해본 경험’이 있으면 충분히 상품이 됩니다.
여기서 AI가 투잡을 어떻게 바꾸는지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AI가 투잡을 쉽게 만드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쉽다’가 아니라 ‘차이가 벌어진다’입니다. 똑같이 투잡을 해도 AI를 잘 쓰는 사람과 못 쓰는 사람의 생산성 차이가 크게 벌어집니다. 예를 들어 글을 쓴다고 해도, 단순히 글을 생성해주는 정도에서 멈추면 콘텐츠가 비슷비슷해집니다. 반면 AI를 리서치 보조, 구조화, 요약, 문장 교정, 제목 A/B, 썸네일 문구 후보, CTA 문장 후보, 댓글 대응 템플릿, FAQ 정리까지 ‘공정 전체’에 붙이면, 같은 시간에 만들어내는 결과물의 밀도가 달라집니다. 영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본을 만들고, 음성을 만들고, 자막을 붙이고, 컷을 정리하고, 썸네일을 뽑는 일련의 과정을 자동화하면, 촬영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운영 가능한 채널이 생깁니다. 결국 투잡의 경쟁력은 ‘노력’보다 ‘워크플로우’에 달려가고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함정도 있습니다. AI가 만들어주는 속도에 취하면 ‘남들과 똑같은 결과물’을 빠르게 찍어내게 됩니다. 그럼 조회수도 전환도 안 나옵니다. 사람들은 금방 알아봅니다. 그래서 AI를 쓰더라도 마지막 한 단계는 반드시 사람이 해야 합니다. 내 경험, 내 문장, 내 판단, 내 실수와 깨달음 같은 것들요. 특히 투잡의 핵심은 신뢰인데, 신뢰는 디테일에서 생깁니다. 내가 직접 겪은 시행착오 한 줄, 내 상황에서 이렇게 했더니 이렇게 되더라 같은 기록이 남들의 시간을 아껴줍니다. 그게 결국 돈이 되는 콘텐츠가 됩니다. 투잡은 결국 ‘남의 시간을 아껴주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시간을 아껴주는 사람에게 돈을 씁니다.
이 트렌드를 투자 관점에서 연결해보면 더 흥미로워집니다. 투잡이 늘어나면 무엇이 커질까요. 플랫폼이 커집니다. 결제, 정산, 광고, 크리에이터 도구, 편집 도구, 전자상거래 인프라, 물류, 데이터 분석 서비스가 같이 성장합니다. 개인이 소형 사업자가 될수록 ‘사업 운영을 쉽게 해주는 도구’의 가치가 올라갑니다. 그리고 이 도구들은 대부분 구독형 모델로 돈을 벌려고 합니다. 즉, 투잡 시대는 구독 경제를 더 넓히는 촉매입니다. 또 하나는 금융상품의 소비 방식이 바뀐다는 점입니다. 투잡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소득의 변동성을 더 체감합니다. 그럼 소비는 보수적으로, 자산은 현금흐름 중심으로 짜려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고배당 ETF나 리츠 같은 현금흐름 자산이 관심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습니다. 단순히 배당률이 높아서가 아니라, 소득이 다변화되는 시대에는 현금흐름이 심리적 안전벨트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트렌드 속에서 개인은 어떻게 움직이는 게 좋을까요. 저는 ‘투잡을 직업처럼’ 생각하지 말고 ‘포트폴리오처럼’ 생각하시는 게 좋다고 봅니다. 주식 포트폴리오를 짤 때도 공격주만 담지 않고, 방어주도 담고, 현금도 남기듯이 투잡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정형 하나, 성장형 하나, 실험형 하나 정도로 나누면 훨씬 오래 갑니다. 안정형은 예를 들어 제휴 기반 콘텐츠처럼 유지 비용이 낮고, 조금이라도 꾸준히 들어오는 구조입니다. 성장형은 디지털 제품이나 커뮤니티처럼 시간이 지나면 레버리지가 커지는 구조이고, 실험형은 새 플랫폼이나 새 포맷을 테스트하는 영역입니다. 이렇게 나누면 실패를 해도 전체가 무너지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나에게 맞는 규모’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에너지와 생활이 다르니까요.
마지막으로 꼭 짚고 싶은 게 있습니다. 투잡이 확산되는 시대에는 ‘세금과 규정’이 발목을 잡기도 합니다. 소득이 생기면 신고가 필요할 수 있고, 플랫폼에 따라 정산 구조도 다르고, 저작권이나 초상권 문제도 생길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겁먹지 말고 기본을 챙기는 것입니다. 기록을 남기고, 매출과 비용을 정리하고, 출처를 명확히 하고, 무리한 방법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리스크는 줄일 수 있습니다. 투잡이 오래 가는 사람들은 화려한 한 방이 아니라 기본을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작은 습관이 큰 차이를 만듭니다.
퇴사 열풍이 사라졌다는 말은 ‘꿈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이 더 영리해졌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한 번에 모든 걸 걸지 않습니다. 대신 조용히 구조를 만들고, 수익원을 분산하고, 선택권을 확보합니다. 월급은 기본 베이스캠프이고, 투잡은 나만의 비상식량이자 새로운 길을 탐색하는 도구입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이미 시작됐고, 앞으로 더 보편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입니다. 퇴사할 거냐 말 거냐가 아니라, 지금 내 삶에서 수익 구조를 몇 개로 만들어둘 거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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