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편의점 점포 수는 5만 개를 넘어섰습니다. 숫자만 놓고 보면 과잉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인구는 줄고 있고, 출산율은 0.7명 안팎까지 떨어졌으며, 지방 소멸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합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유통 채널은 줄어들어야 맞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편의점은 늘었고, 매출은 증가했고, 오히려 생활 인프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현상은 단순한 근접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소비 구조의 이동, 가구 구조의 변화, 노동 형태의 변화, 그리고 유통 시스템 혁신이 동시에 맞물린 결과입니다.


첫 번째로 봐야 할 것은 ‘인구’가 아니라 ‘가구’입니다. 한국은 인구가 줄고 있지만 가구 수는 여전히 증가하거나 유지되고 있습니다. 1인 가구 비중은 34%를 넘었고, 2인 가구까지 합치면 전체의 절반 이상입니다. 가족 단위 대량 구매 구조가 무너졌습니다. 대형마트에서 카트를 채워오는 소비 대신, 하루하루 필요한 만큼 사는 소비가 늘었습니다. 냉장고에 1주일치 식재료를 쟁여두는 대신, 오늘 먹을 도시락을 사는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이 변화는 편의점에 구조적으로 유리합니다. 인구 감소는 수요 감소를 의미할 수 있지만, 가구 분화는 구매 빈도 증가를 의미합니다.


두 번째는 노동 구조 변화입니다. 맞벌이 가구가 증가하고, 야간 노동과 교대 근무가 보편화됐습니다. 재택근무 확산도 소비 패턴을 분산시켰습니다. 소비 시간이 특정 시간대에 집중되지 않고 24시간으로 흩어졌습니다. 대형마트는 영업시간 제한이 있지만, 편의점은 24시간 운영이 기본입니다. 시간 분산형 소비에서는 편의점의 경쟁력이 극대화됩니다. 특히 심야 시간대 매출은 과거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세 번째는 동네 소매 구조의 붕괴입니다. 과거 골목 슈퍼는 지역 상권의 핵심이었지만, 물류 경쟁력과 가격 경쟁력에서 밀렸습니다. 프랜차이즈 편의점은 본사의 중앙 물류 시스템을 통해 재고 관리와 상품 공급을 효율화했습니다. POS 데이터 분석을 통해 판매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축적하고, 그에 맞춰 발주를 조정합니다. 이는 개인 슈퍼가 따라오기 어려운 시스템입니다. 결국 편의점은 기존 동네 소매를 흡수하며 성장했습니다. 신규 수요 창출이 아니라 유통 구조 재편이 성장의 본질이었습니다.


매출 구조를 보면 더 명확해집니다. 과거 편의점은 담배와 음료 중심이었습니다. 마진은 낮았고, 방문객 수가 중요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도시락, 즉석식품, 디저트, PB 간편식이 핵심입니다. PB상품은 마진이 높고, 가격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물가 상승 국면에서는 소비자가 가성비 상품을 찾게 되고, 이는 PB 매출 증가로 이어집니다. 객단가가 올라가고, 점포당 매출이 증가합니다. 방문객 수보다 ‘1회당 구매액’이 중요한 산업으로 변했습니다.


상장사 실적을 보면 이 변화가 수치로 드러납니다. BGF리테일은 CU를 운영하며 2024년 매출 약 8조 원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점포 수 증가뿐 아니라 PB 비중 확대와 상품 믹스 개선이 실적을 견인했습니다. 영업이익률은 3~4% 수준으로 대형마트보다 낮아 보이지만, 변동성이 작고 안정적입니다. 경기 둔화기에도 큰 폭의 손실을 기록하지 않는 구조입니다.


GS리테일 역시 GS25를 중심으로 편의점 사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GS리테일은 홈쇼핑, 슈퍼마켓 등 다양한 채널을 보유하지만, 편의점이 현금흐름의 핵심 축입니다. 특히 퀵커머스와의 결합을 통해 점포를 ‘마이크로 물류 허브’로 활용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점포는 단순 매장이 아니라, 배송과 픽업의 거점입니다.


이마트의 이마트24는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지만, 프리미엄 상품 전략과 차별화된 콘셉트를 통해 경쟁하고 있습니다. 대형마트와의 상품 연계를 통해 차별화된 PB를 강화하는 전략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편의점은 이제 단순 소매 채널이 아닙니다. 택배 접수·수령, 공과금 납부, 간편 금융 서비스, 배달 픽업, 지역 커뮤니티 거점 역할까지 수행합니다. 은행 지점은 줄어들지만 편의점은 남습니다. 특히 지방이나 고령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는 생활 인프라로 기능합니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집 근처에서 해결할 수 있는 서비스”의 가치는 커집니다.


또 다른 구조적 요인은 온라인과의 관계입니다. 온라인 식료품 배송이 확대됐지만, 즉시성에서는 편의점이 우위입니다. 온라인은 빠르면 몇 시간, 일반적으로는 다음 날입니다. 편의점은 즉시입니다. 특히 간편식, 즉석 소비, 소량 구매 영역에서는 온라인이 완전히 대체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편의점은 배송 거점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물론 리스크도 존재합니다. 점포 수 5만 개는 포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출점 경쟁이 과열되면 점포당 매출이 둔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최저임금 상승은 인건비 부담을 키웁니다. 온라인 신선식품 배송이 고도화되면 일부 수요는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편의점의 본질은 ‘생활 밀착성’입니다. 소비 구조가 분산되고, 가구가 분화되고, 시간이 파편화될수록 가까운 채널이 강해집니다. 편의점은 그 변화의 교차점에 있습니다.


투자 관점에서 보면 편의점은 고성장 테마는 아닙니다. 대신 현금흐름이 안정적이고, 경기 방어적 성격을 갖습니다. 배당 매력도 일정 수준 유지됩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인구 감소라는 거시 변수 속에서도 소비 방식 변화라는 미시 구조 덕분에 지속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국 질문은 단순합니다. 10년 뒤에도 동네에 무엇이 남아 있을까요. 대형마트일까요, 은행 지점일까요, 아니면 편의점일까요.


편의점 5만 개 시대는 과잉이 아니라 전환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인구는 줄어도, 생활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생활의 가장 가까운 접점에 편의점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