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2월 20일(현지시간),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경제비상권한법(IEEPA)을 근거로 부과했던 ‘상호관세’와 이른바 ‘펜타닐 관세’에 대해 위법 판결을 내렸습니다. 표결은 6대 3. 전체 9명의 대법관 중 보수 성향 6명, 진보 성향 3명으로 분류되는데, 보수 대법관 3명까지 위법 의견에 동참했습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관세 부과 권한은 헌법상 의회에 있다”고 명확히 했습니다. IEEPA는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 상황에서 외국과의 거래를 통제할 수 있도록 한 1977년 제정 법률이지만, 이를 근거로 의회 승인 없이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한 것은 권한을 넘어섰다는 판단입니다. 1심과 2심의 위법 기조를 그대로 유지한 셈입니다.
하지만 이 판결이 곧 관세 종료를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같은 날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플랜 B’를 발표했습니다.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전 세계 대미 수출품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그는 이 조치가 3일 후 발효될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습니다.
IEEPA 기반 상호관세는 무효가 됐지만, 다른 법적 수단을 활용해 유사한 수준의 관세 구조를 다시 만들겠다는 의지입니다.
여기서 숫자를 보겠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한 해 동안 약 2,885억 달러의 관세 수입을 거둬들였습니다. 이는 2024년 관세 수입 983억 달러의 약 세 배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관세는 더 이상 협상용 카드만이 아니라, 미국 재정의 실질적인 세수 원천이 되었습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전체 세수 측면에서 대략 같은 수준의 관세를 계속 징수할 수 있는 능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고,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 역시 301조, 122조, 232조 등 다른 조항을 활용해 관세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이미 적용 중인 품목관세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철강·알루미늄: 50%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25% (한국·일본·EU는 15%)
이들은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조치로, 이번 대법원 판결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이번 판결로 법적 기반을 상실한 상호관세와 펜타닐 관세와 관련해 기업들은 환급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됐습니다. 미국 내 관세 반환 소송은 지난달 초 기준 914건에 달합니다. 로이터 자체 추산에 따르면 기업들이 환급받을 수 있는 관세 규모는 최대 1,500억 달러(약 220조 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금액이 전액 환급될지는 불확실합니다. 환급 범위와 적용 시점을 둘러싼 추가 소송과 행정 절차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제 한국으로 시선을 옮겨보겠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4월 2일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표했고, 같은 해 8월 7일부터 이를 적용했습니다. 한국은 당초 25% 상호관세 대상이었지만 협상을 통해 15%로 낮췄습니다.
그 대가로 한국은 미국에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와 광범위한 시장 개방을 약속했습니다.
일본은 5,500억 달러, EU는 6,5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상호관세의 법적 효력이 사라진 지금, 한국의 3,500억 달러 투자 약속이 그대로 유지돼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재협상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 우세합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은 관세를 지렛대로 삼아 투자와 시장 개방을 끌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상호관세가 무효가 되더라도, 10% 전면 관세나 232조 품목관세 확대 등 대체 수단이 존재하는 한 협상 구조 자체가 완전히 바뀌지는 않습니다.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숫자로 보면 더 명확합니다.
2025년 기준 한국의 대미 수출은 약 1,180억 달러로 전체 수출의 약 18%를 차지합니다. 대중 수출은 약 1,230억 달러로 19~20% 수준입니다. 미중 양국이 전체 수출의 약 38%를 차지합니다.
2018~2019년 미중 무역전쟁 당시 글로벌 교역 증가율은 5%대에서 1% 수준으로 급락했고, 한국의 GDP 성장률은 2018년 2.9%에서 2019년 2.2%로 하락했습니다. 코스피는 2018년 1월 2,598포인트에서 같은 해 10월 1,990선까지 하락하며 약 20% 조정을 겪었습니다.
관세는 단순히 세율 문제가 아닙니다.
기업의 투자 계획, 환율 변동성, 공급망 재편, 외국인 자금 흐름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줍니다. 특히 한국처럼 수출 의존도가 GDP의 약 40% 수준인 경제 구조에서는 통상 환경 변화가 곧 성장률 변화로 이어집니다.
이번 판결은 한편으로는 대통령 권한의 한계를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제도적 안정성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 10% 전면 관세 카드를 꺼내 들면서 정책 예측 가능성은 오히려 더 낮아졌습니다.
세계 경제는 다시 불확실성 국면에 진입했습니다.
만약 10% 전면 관세가 실제로 발효된다면, 이는 사실상 전 세계에 대한 일괄 과세입니다. 각국의 보복 조치 가능성, WTO 분쟁 가능성, 글로벌 교역 둔화 압력 등이 동시에 작용할 수 있습니다.
투자 관점에서 핵심 변수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미국 대선 국면과 정치 일정입니다. 보호무역은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 수단입니다.
둘째, 한국의 3,500억 달러 투자 집행 속도와 방식입니다.
셋째, 품목관세 확대 여부입니다. 철강, 자동차, 반도체 장비, 배터리 소재 등이 추가 타깃이 될 경우 산업별 충격이 달라집니다.
결론적으로 2026년 2월 20일 대법원 판결은 관세 정책의 법적 한계를 분명히 했지만, 보호무역 기조 자체를 끝내지는 못했습니다.
상호관세는 무효가 됐습니다. 그러나 관세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오히려 더 커졌습니다.
한국은 이 판의 관찰자가 아니라 당사자입니다. 숫자로 보면 더 명확합니다. 미국과 중국이 한국 수출의 38%를 차지합니다. 통상 정책의 변화는 곧 한국 기업 실적과 증시 흐름으로 직결됩니다.
무역은 세금이 아니라 권력의 문제입니다. 이번 판결은 그 권력의 균형에 균열을 냈습니다. 그러나 게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의 협상, 추가 관세 조치, 정치 일정에 따라 한국 경제와 글로벌 시장의 방향은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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