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진짜 부자들은 어디에 투자하고 있을까. 이 질문은 늘 흥미롭습니다. 뉴스에서는 개미들의 매수 종목, 테마주 급등, 단타 수익 인증이 자주 등장하지만, 자산 30억·50억·100억 이상을 가진 사람들의 실제 포트폴리오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증권사 PB 리포트, 패밀리오피스 흐름, 자산관리 업계 인터뷰 등을 종합해 보면 공통된 방향성이 분명히 보입니다. 핵심은 화려함이 아니라 안정성, 몰빵이 아니라 구조, 단기 수익이 아니라 생존과 복리입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해외 자산 비중 확대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고액자산가들의 포트폴리오에서 미국 주식과 달러 자산 비중이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국내 증권사 프라이빗뱅킹(PB) 자료를 보면 자산 30억 원 이상 고객의 해외 주식 비중은 과거 한 자릿수 후반에서 두 자릿수 중반 이상으로 올라왔고, 일부는 30~40%까지 확대된 경우도 있습니다. 이들이 미국을 선호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첫째는 달러라는 기축통화 자산을 보유한다는 안정성, 둘째는 글로벌 기술기업 접근성, 셋째는 한국보다 큰 시장과 유동성, 넷째는 환헤지 효과입니다. 한국 경제에만 묶여 있는 구조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도가 분명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미국 시장에서 ‘테마주’를 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상위 자산가들의 포트폴리오를 들여다보면 S&P500 ETF, 나스닥100 ETF, 대형 반도체 ETF 같은 지수형 상품 비중이 상당히 높습니다. 개별 종목을 담더라도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아마존 같은 이미 시장 지위를 확보한 기업 위주입니다. 아직 실적이 불안정한 스토리 중심 기업에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입니다. 부자들은 ‘확률 높은 게임’을 선호합니다. 개미가 5배·10배 수익을 노리는 사이, 자산가들은 10~15% 복리를 더 중요하게 봅니다.


국내 자산 비중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한국 시장을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선택과 집중이 강해졌습니다. 국내에서는 반도체, 방산, 전력 인프라, 금융(고배당) 업종에 대한 선호가 뚜렷합니다. 반도체는 글로벌 수요가 붙어 있고, 방산은 장기 수주 산업이며, 전력 인프라는 AI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투자라는 구조적 스토리가 있습니다. 금융주는 배당 매력이 큽니다. 이 조합은 공통적으로 ‘실적이 찍히는 산업’이라는 특징을 가집니다. 성장 스토리만 있는 기업보다는, 현금흐름이 검증된 기업을 선호합니다.


부동산에 대해서도 오해가 많습니다. “부자들은 아직도 부동산 아니냐”라는 질문이 많지만, 실제로는 구조가 바뀌고 있습니다. 과거처럼 공격적 다주택 확장이나 레버리지 활용은 크게 줄었습니다. 대신 입지 최상급 주택이나 수익형 상업용 부동산에 집중합니다. 꼬마빌딩보다는 안정적인 임대수익이 나오는 자산, 또는 리츠(REITs)·인프라 펀드 같은 간접투자를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방식이 늘고 있습니다. 즉, 부동산도 ‘자본차익 중심’에서 ‘현금흐름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의외로 높은 것이 현금성 자산 비중입니다. 고액자산가 포트폴리오에서 현금 또는 MMF, 단기채 비중이 생각보다 큽니다. 이는 기회를 기다리는 자금입니다. 금리가 높은 구간에서는 예금·채권 수익률도 무시할 수 없고, 변동성이 커질 때는 유동성이 곧 힘이 됩니다. 조정장이 오면 매수할 수 있는 체력이 필요합니다. 부자들은 “항상 투자 중”이 아니라 “항상 준비 중”입니다.


또 하나 눈여겨볼 부분은 대체자산입니다. 일부 상위 자산가는 사모펀드, 인프라펀드, 헤지펀드, 벤처투자 등 비상장 자산에도 일정 비중을 둡니다. 물론 일반 투자자가 접근하기 쉽지 않은 영역이지만, 장기적으로 상장시장과 상관관계가 낮은 자산을 담아 포트폴리오 변동성을 낮추려는 전략입니다. 특히 AI·바이오·에너지 전환 관련 초기 투자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들은 단기 유동성보다는 장기 성장 스토리에 베팅합니다.


연령대에 따라 전략도 조금씩 다릅니다. 40~50대 자산가는 여전히 성장 자산 비중이 높지만, 60대 이상에서는 배당·채권 비중이 늘어납니다. 은퇴 이후 현금흐름이 중요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통점은 있습니다. 레버리지 축소, 글로벌 분산, 달러 자산 확대입니다. 과거처럼 부동산 대출을 극대화해 자산을 불리는 전략은 줄었습니다. 대신 자산을 지키면서 불리는 전략이 중심입니다.


세금 전략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고액자산가는 증여·상속을 염두에 두고 포트폴리오를 구성합니다. 배당소득세, 금융소득종합과세, 양도소득세 등을 고려해 계좌를 분산하고, 법인 구조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즉, 투자 전략은 세금 전략과 함께 움직입니다. 수익률만 보는 것이 아니라 세후 수익을 계산합니다.


그렇다면 이 흐름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일까요. 부자들의 포트폴리오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대신 무너지지 않습니다. 한두 종목에 몰빵하지 않고, 국가 하나에 몰리지 않으며, 단기 뉴스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글로벌 자산을 기본으로 깔고, 현금흐름 자산을 일정 비중 유지하며, 변동성 구간에 대비합니다. 레버리지는 최소화하고, 기회가 올 때 움직입니다.


많은 개인 투자자가 “어떤 종목을 샀는지”에 집중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질문은 “왜 그렇게 배분했는지”입니다. 부자들의 전략은 특정 종목이 아니라 구조에 있습니다. 분산, 글로벌, 현금흐름, 리스크 관리. 이 네 가지가 핵심입니다. 시장이 과열될 때도, 급락할 때도 원칙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결국 자산가들의 포트폴리오는 하나의 메시지를 줍니다. 부는 단기간의 대박이 아니라, 장기간의 생존과 복리에서 나온다는 점입니다. 1년에 50%를 벌겠다는 전략이 아니라, 10년간 무너지지 않겠다는 전략입니다. 뉴스는 매일 바뀌지만 구조는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자들은 늘 구조를 먼저 봅니다.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도 이것입니다. 나는 뉴스에 반응하고 있는가, 아니면 구조를 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