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더 이상 단순한 기계가 아닙니다. 바퀴 달린 스마트폰, 혹은 움직이는 데이터센터에 가깝습니다. 이 변화의 핵심이 바로 ‘전장(車 전자부품)’입니다. 엔진 출력이나 디자인이 아니라, 차량 안에 얼마나 많은 반도체와 전자제어 시스템이 들어가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저는 반도체 다음 사이클을 이야기할 때, 메모리만 보지 말고 ‘전장’이라는 단어를 함께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내연기관차 한 대에 들어가는 반도체 수는 200~300개 수준이었습니다. 지금 전기차는 1,000개 이상이 들어갑니다. 자율주행 단계가 올라갈수록, ADAS(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가 고도화될수록 그 숫자는 더 늘어납니다. 차량 가격에서 전장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일부 고급 전기차의 경우 차량 원가의 30~40%가 전장과 소프트웨어 영역에서 발생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즉, 자동차 산업의 부가가치 중심이 기계에서 전자·소프트웨어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을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기업은 완성차입니다. 예를 들어 Hyundai Motor Company는 전기차 플랫폼(E-GMP) 기반으로 차량 구조를 완전히 재설계했습니다. 배터리, 인버터, 전력제어 시스템이 중심이 되고, OTA(무선 업데이트)를 통해 차량 기능을 지속적으로 개선합니다. 과거에는 차량을 한 번 팔면 끝이었지만, 이제는 판매 이후에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기능 추가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모델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 구조가 자리 잡으면 자동차 회사는 하드웨어 제조업체가 아니라 플랫폼 기업에 가까워집니다.


전장의 또 다른 축은 반도체입니다. 차량용 반도체는 일반 PC용이나 스마트폰용과 다릅니다. 극한 온도와 진동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인증 절차도 까다롭고, 한 번 채택되면 5~7년 이상 장기 공급이 이어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차량용 반도체는 단가가 높고, 공급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최근 몇 년간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를 겪으면서 완성차 업체들은 공급망을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국내 전자기업들의 역할이 커집니다. Samsung Electronics는 파운드리 사업을 통해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확대하고 있고, 시스템 반도체 역량을 키우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메모리에 강했지만, 자동차 전장 시대에는 시스템 반도체가 중요해집니다. 이미지 센서, 전력 반도체, MCU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기회가 열립니다. 또 다른 축에서는 LG Innotek 같은 기업이 차량용 카메라 모듈, 센서 부품을 공급하며 자율주행 고도화의 수혜를 받고 있습니다.


숫자로 보면 전장 산업의 성장 속도는 완성차 판매 성장률을 상회합니다. 글로벌 전장 시장은 연평균 7~10% 성장 전망이 일반적입니다. 반면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은 2~3% 성장에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차량 1대당 탑재되는 전자부품 가치가 늘어나기 때문에, 완성차 판매가 정체되더라도 전장 기업은 성장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것이 전장 산업이 매력적인 이유입니다.


특히 SDV(Software Defined Vehicle) 전환은 게임체인저입니다. 차량 기능을 소프트웨어로 정의하고, 중앙집중형 전자 아키텍처를 도입하면 ECU(전자제어장치)의 구조가 단순화되고, 고성능 반도체 한두 개가 전체 시스템을 제어하는 방식으로 바뀝니다. 이는 고성능 칩, 고용량 메모리, 고속 통신 모듈 수요를 동시에 자극합니다. 자동차가 단순 이동 수단을 넘어 데이터 플랫폼이 되는 순간, 차량은 네트워크에 항상 연결된 디바이스가 됩니다.


전장 확장은 전기차 보급과도 맞물립니다. 전기차는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인버터, 전력제어 모듈 등 전력 전자 기술이 핵심입니다. 이 부품들은 기존 내연기관차에는 없던 영역입니다. 즉, 전기차 비중이 늘수록 전장 시장은 자동으로 확대됩니다. 완성차 업체들이 전동화 전략을 강화할수록 전장 공급업체의 협상력도 커집니다.


물론 리스크도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은 전통적으로 경기 민감 업종입니다. 글로벌 경기 둔화가 오면 차량 판매가 줄고, 전장 수요도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전장 기술은 빠르게 진화하기 때문에 R&D 투자 부담이 큽니다. 기술 트렌드를 놓치면 도태될 위험도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전장’이라는 단어만 보고 접근하기보다는, 기술력·고객 포트폴리오·수주 잔고를 함께 봐야 합니다.


투자 관점에서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전장이 반도체 다음 사이클이 될 수 있는가. 저는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이유는 구조적입니다. AI, 자율주행, 커넥티드카, 전기차라는 네 가지 흐름이 동시에 전장을 키우고 있습니다. 단일 테마가 아니라 복합적 변화입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단기간에 끝나지 않습니다. 차량 개발 주기는 3~5년, 플랫폼은 7~10년 단위로 움직입니다. 한 번 채택된 전장 부품은 오랜 기간 매출로 이어집니다.


결국 자동차는 바퀴 달린 서버가 되고 있습니다. 서버가 커지면 반도체가 필요하고, 전력이 필요하고, 냉각이 필요합니다. 같은 논리가 차량에도 적용됩니다. 고성능 칩, 전력 반도체, 통신 모듈, 센서, 카메라가 핵심입니다. 그래서 전장은 단순 부품 산업이 아니라, 미래차 생태계의 중심입니다.


이제 관건은 속도입니다. 자율주행 상용화 속도, 전기차 침투율, 각국의 환경 규제 정책이 변수입니다. 하지만 방향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자동차 산업은 기계 중심에서 전자·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동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수혜를 받는 영역이 전장입니다.


반도체 사이클을 겪으며 우리는 하나를 배웠습니다. 구조적 수요가 있는 산업은 결국 실적이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전장 역시 같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차는 더 이상 단순한 운송 수단이 아닙니다. 데이터와 전력이 흐르는 플랫폼입니다. 그리고 그 플랫폼을 구성하는 전자부품 산업은, 이제 조용히 다음 사이클을 준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