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일렉트릭을 지금 시점에서 다시 꺼내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전력은 테마가 아니라 숫자로 증명되는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야기’가 아니라 ‘실적’이 찍히는 구간입니다. AI, 데이터센터, 전기차, 산업 자동화까지 모든 것이 전력을 더 많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전기를 만드는 것보다, 그 전기를 안정적으로 보내는 설비가 더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바로 그 병목에 있는 기업이 HD현대일렉트릭입니다.


먼저 산업 구조부터 보겠습니다. 전력기기 산업은 크게 발전(발전소), 송전(초고압 송전선), 배전(도시·산업단지 공급)으로 나뉩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이 중 변압기·차단기·배전 설비 등 핵심 송배전 장비를 공급합니다. 특히 초고압 변압기는 진입장벽이 높습니다. 설계, 절연 기술, 납기 신뢰성, 글로벌 레퍼런스가 모두 필요합니다. 단순 제조업이 아니라 기술 기반 산업입니다.


숫자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최근 몇 년간 HD현대일렉트릭의 매출은 3조 원 안팎까지 올라왔고, 영업이익은 4천억~5천억 원대 수준을 기록하는 구간에 진입했습니다. 영업이익률은 과거 한 자릿수에서 최근 두 자릿수 초반까지 개선되었습니다. 전력기기 산업 특성상 수주 산업이기 때문에, 수주잔고가 곧 매출 가시성입니다. 최근 수주잔고는 5조~6조 원대 수준으로, 최소 2~3년 치 매출을 커버하는 구조입니다. 이는 단기 테마가 아니라 실적이 확정적으로 찍힐 수 있는 환경이라는 뜻입니다.


그럼 왜 이런 흐름이 나왔을까요. 첫 번째 축은 미국입니다. 미국 전력망 평균 설비 연한은 40년을 넘는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노후화된 설비 교체가 구조적으로 필요합니다. 여기에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이후 제조업 리쇼어링이 가속되면서 산업용 전력 수요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공장이 미국으로 돌아오면 전력망을 증설해야 합니다. 전력망을 증설하면 변압기가 필요합니다. 단순한 경기 사이클이 아니라 정책과 산업 구조 변화가 동시에 작동하는 구간입니다.


두 번째 축은 AI 데이터센터입니다. GPU 한 대의 전력 소모는 과거 서버 대비 몇 배 이상 높습니다. 대형 AI 데이터센터는 중소 도시 하나 수준의 전력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데이터센터를 짓는다고 끝이 아니라,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전압 변환 설비가 필수입니다. 결국 변압기·차단기·배전반이 함께 움직입니다. AI가 성장할수록 전력기기는 뒤에서 조용히 수혜를 받는 구조입니다.


세 번째 축은 중동입니다. 사우디, UAE 등은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산업단지 조성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발전 설비도 확대 중입니다. 발전 설비가 늘어나면 송배전 설비도 늘어야 합니다. 전력은 생산과 전달이 함께 움직이는 산업입니다. 이 구간에서 글로벌 레퍼런스를 가진 한국 업체들이 수주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밸류에이션을 보겠습니다. 전력기기주는 최근 몇 년간 주가가 크게 올랐습니다. 그래서 “이미 다 오른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멀티플이 아니라 이익의 지속 가능성입니다. 만약 연간 5천억 원 수준의 영업이익이 유지되고, 추가 수주가 이어진다면 현재 시가총액 대비 EV/EBITDA 배수는 여전히 글로벌 피어 대비 과도한 수준은 아닙니다. 글로벌 전력기기 기업들은 평균적으로 10배 안팎의 EV/EBITDA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내 기업이 구조적 성장 산업에 편입되면 멀티플 리레이팅 여지도 있습니다.


리스크도 있습니다. 전력기기 산업은 구리, 철강 등 원자재 가격 영향을 받습니다. 원재료 가격 급등은 마진을 압박할 수 있습니다. 또한 대형 프로젝트는 납기 지연, 환율 변동 리스크가 존재합니다. 미국 경기 둔화가 심화될 경우 산업용 전력 수요가 일시적으로 줄어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수주잔고와 정책 방향을 보면 단기 급락 시나리오보다는 구조적 유지 가능성이 더 높아 보입니다.


전력기기는 과거에는 ‘지루한 산업’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성장성이 낮고, 경기 변동에 민감하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탈탄소, 전기화, 데이터센터 확장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전력 수요를 밀어올리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습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2~3년 이야기라면, 전력 인프라 확장은 5년 이상 지속될 수 있는 구조입니다.


투자 프레임은 명확합니다. “AI 다음은 전기다.” 반도체가 두뇌라면, 전력은 혈관입니다. 혈관이 막히면 시스템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HD현대일렉트릭은 그 혈관을 만드는 기업입니다. 테마가 아니라 실적이 찍히는 구간에서, 수주잔고가 쌓이고 마진이 개선되는 기업을 보는 것이 안정적인 전략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HD현대일렉트릭은 단순한 테마주가 아니라, 구조적 산업 변화의 수혜를 받는 실적 기반 기업입니다. 수주잔고 5조 원 이상, 연간 4~5천억 원대 영업이익 체력, 북미·중동 수주 확대라는 숫자가 뒷받침됩니다. 물론 변동성은 존재하지만, 지금은 이야기보다 숫자를 따라가는 구간입니다. 전력은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돈은 그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