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화장품이 다시 전성기냐, 이 질문을 던지면 많은 분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향 단체관광, 따이공, 면세점 채널이 폭발하면서 국내 화장품 주가가 하늘을 뚫던 시절이 있었죠. 그런데 그 전성기는 너무 빠르게 끝났습니다. 중국 규제, 리오프닝 지연, 면세 채널 구조 변화, 가격 경쟁 심화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K-뷰티는 한물갔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그런데 요즘 흐름을 가만히 보면, 시장이 다시 조용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방향이 완전히 다릅니다. 예전처럼 중국 하나에 올인해서 터지는 방식이 아니라, 미국·동남아·유럽 등 다변화된 시장에서 인디 브랜드가 주도하고, 그 뒤에서 ODM이 실적을 끌어올리는 구조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2차 전성기’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딱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중국이 없어도 성장하는가. 이 조건이 충족되면 전성기는 다시 올 수 있고, 충족되지 못하면 그저 반짝 반등으로 끝날 가능성이 큽니다.
먼저 숫자 감각부터 잡아보겠습니다. 글로벌 뷰티 시장은 워낙 크고, 스킨케어·메이크업·헤어·향수까지 세분화가 되어 있어 “전체 시장이 몇 조다”라는 말만으로는 투자 판단이 어렵습니다. 중요한 건 한국 화장품이 실제로 돈을 버는 구간이 어디로 이동했느냐입니다. 과거에는 면세 채널이 상징이었습니다. 면세 매출 비중이 30~40%를 넘는 회사도 있었고, 특정 시기에는 면세가 실적을 좌우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구조가 깨졌습니다. 대신 온라인 직구, 글로벌 플랫폼, 현지 리테일 입점이 매출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같은 ‘수출’이라도 형태가 달라진 겁니다. 예전에는 큰 손 몇 명이 사 가는 구조였다면, 지금은 소비자가 직접 사고, 리뷰로 검증하고, SNS로 확산시키는 구조입니다. 이 변화는 단순 채널 변화가 아니라, 마진 구조와 브랜드 파워의 평가 방식 자체를 바꿉니다.
그 다음은 왜 하필 지금이냐입니다. 요즘 K-뷰티가 다시 살아나는 핵심 동력은 세 가지로 압축됩니다. 첫째는 인디 브랜드의 폭발력입니다. 예전에는 대형 브랜드가 먼저 해외에 진출하고, 광고로 밀어붙였다면, 지금은 작은 브랜드가 먼저 바이럴을 만들고, 그 뒤에 유통이 붙습니다. 틱톡, 인스타그램, 유튜브 쇼츠의 소비 패턴이 바뀌면서, ‘광고비를 많이 태운 브랜드’보다 ‘리뷰가 많이 쌓인 제품’이 더 잘 팔리는 구조가 됐습니다. 둘째는 미국 시장의 변화입니다. 미국 소비자들이 K-뷰티를 “특이한 아시아 화장품”이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에 성분·효과가 좋다는 카테고리”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셋째는 ODM의 구조적 이익입니다. 브랜드가 인디화될수록 자체 공장을 갖춘 회사는 줄고, 외주 생산 비중은 늘어납니다. 결과적으로 ODM에게 주문이 몰리면서 실적이 좋아지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투자 포인트는 “브랜드를 살 것이냐, ODM을 살 것이냐”로 갈립니다. 브랜드는 히트하면 수익률이 폭발하지만, 한 번 미끄러지면 고정비가 부담이 됩니다. 반면 ODM은 변동비 기반으로 규모를 늘리는 방식이라, 시장의 유행과 수요를 ‘픽업’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특히 요즘 같은 인디 브랜드 시대에는 ODM이 일종의 ‘삽’ 역할을 합니다. 금을 캐는 사람이 누구든, 삽을 파는 쪽이 꾸준히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기 쉽습니다. 물론 ODM도 리스크가 있습니다. 고객사 집중도가 높으면 한두 브랜드가 흔들릴 때 실적이 흔들립니다. 또 원재료 가격, 환율, 인건비 같은 요소가 마진에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ODM 투자는 “수주 구조가 분산되어 있는가, 고객 포트폴리오가 건강한가, 생산능력 증설이 과잉이 아닌가”를 체크해야 합니다.
그럼 중국 없이도 성장하는가라는 핵심 질문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저는 이 질문을 세 가지 하위 질문으로 쪼개서 봅니다. 첫째, 미국에서 ‘지속 구매’가 발생하고 있느냐입니다. 한 번 사 보고 끝나는 유행이면 전성기라 부르기 어렵습니다. 재구매율과 반복 구매가 쌓여야 합니다. 둘째, 동남아·일본·유럽 등에서 시장이 넓어지고 있느냐입니다. 미국 하나에만 걸려도 위험합니다. 셋째, 제품 카테고리가 넓어지고 있느냐입니다. 특정 성분, 특정 유형(예: 선크림, 쿠션, 마스크팩)만 뜨는 건 테마입니다. 스킨케어 라인업이 확장되고, 헤어·바디·향수 등으로 확산되면 산업이 됩니다.
이 관점에서 요즘 K-뷰티의 흐름은 전성기 조건에 꽤 근접해 보입니다. 한국 제품의 강점은 ‘가격 대비 성분 조합’과 ‘제품 개발 속도’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전통 브랜드는 레거시가 강하지만, 트렌드 전환 속도가 느린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한국은 기획부터 출시까지의 리드타임이 짧습니다. 유행이 바뀌면 빠르게 따라갑니다. 이런 속도 경쟁은 SNS 기반 소비 환경에서 압도적 강점으로 작동합니다. 예전에는 백화점 채널이 왕이어서 브랜드 스토리와 광고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온라인에서 “효과가 있냐, 발림이 좋냐, 피부 트러블이 줄었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이 영역에서 한국 제품은 경쟁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 주가가 다시 움직이느냐. 시장은 ‘중국 회복’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 ‘중국 없이도 먹히는 구조’를 확인하려고 합니다. 이게 확인되는 순간 밸류에이션이 달라집니다. 과거의 K-뷰티는 중국 변수에 지나치게 흔들렸습니다. 중국 정책 한 번이면 실적이 휘청했습니다. 그래서 시장이 낮은 멀티플을 줬습니다. 반대로 앞으로는 지역이 분산되고, 채널이 분산되고, 제품 카테고리가 분산된다면, 변동성이 줄어듭니다. 변동성이 줄어들면 시장은 더 높은 멀티플을 줄 여지가 생깁니다. 결국 2차 전성기라는 말은 “매출이 커진다”뿐 아니라 “리스크 프리미엄이 줄어든다”까지 포함해야 합니다.
이제 실제로 어떤 플레이어들이 유리한지 감을 잡아보겠습니다. K-뷰티 생태계를 크게 나누면 브랜드(대형/인디), ODM, 원료/용기/패키징, 유통 플랫폼으로 나뉩니다. 여기서 가장 구조적으로 수혜를 받을 가능성이 높은 축은 ODM과 부자재(용기, 패키징) 쪽입니다. 인디 브랜드가 늘면 공장 외주 수요가 늘고, SKU가 늘면 용기·라벨·패키징 물량이 늘어납니다. 동시에 소량 다품종 생산이 많아지면, 이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생산·공급 체계가 강한 업체가 유리해집니다. 즉, 규모가 크기만 한 업체가 아니라, 유연성이 있는 업체가 승자가 됩니다. 예전에는 대량 생산으로 단가를 낮추는 게 중요했지만, 지금은 “빨리 만들어서 빨리 팔고, 바로 다음 제품으로 넘어가는” 속도가 중요합니다.
반대로 브랜드 투자는 ‘정교한 선별’이 필요합니다. 인디 브랜드는 유행을 타는 속도가 빠른 만큼, 떨어지는 속도도 빠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브랜드 기업을 볼 때는 매출 성장률만 보지 말고, 마케팅비 비중과 재고 회전, 해외 채널의 안정성을 같이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매출이 30% 성장해도 판관비가 40% 늘어나면 이익은 남지 않습니다. 광고비를 태워서 만든 성장인지, 자연 유입과 재구매로 만든 성장인지가 중요합니다. 또 재고가 쌓이기 시작하면 위험 신호입니다. 화장품은 유통기한이 있고, 할인판매가 시작되면 브랜드 이미지가 흔들립니다. 그래서 “재고자산 증가율”과 “매출채권 회전” 같은 숫자를 같이 봐야 합니다. 이런 기본기 숫자가 좋아야 2차 전성기의 승자가 됩니다.
여기서 환율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화장품 수출은 달러 매출이 늘어나는 구조이기 때문에 원화 약세 구간에서는 실적이 우호적일 수 있습니다. 다만 원재료 일부도 수입이고, 물류비도 달러 영향을 받기 때문에 무조건 좋은 건 아닙니다. 중요한 건 기업이 가격 결정력을 갖고 있느냐입니다. 가격 결정력이 있으면 환율 변동을 흡수할 수 있고, 없으면 마진이 흔들립니다. 결국 해외에서 브랜드 파워가 있다는 건 “현지에서 가격을 올려도 팔린다”는 뜻이고, 그게 진짜 강함입니다.
또 하나, K-뷰티를 볼 때 사람들은 종종 ‘중국이 돌아오면 대박’이라는 옵션을 붙입니다. 물론 중국이 회복되면 추가 상승 옵션이 붙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조심해야 할 함정이 있습니다. 중국이 돌아오는 방식이 예전과 같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과거는 따이공과 면세 중심이었고, 특정 채널의 물량이 실적을 좌우했습니다. 지금은 중국도 내수 브랜드가 강해졌고, 소비자 취향도 달라졌습니다. 중국이 회복되어도 과거처럼 한국 브랜드가 일방적으로 가져가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투자 논리의 중심은 반드시 “중국 없이도 성장”이어야 합니다. 중국은 옵션이지, 본체가 되면 다시 옛날 함정에 빠집니다.
그럼 2차 전성기의 ‘진짜 신호’는 무엇이냐. 저는 세 가지 신호를 봅니다. 첫째, 미국에서 특정 제품이 아니라 특정 브랜드가 자리잡는 것. 제품 하나가 뜨는 건 흔합니다. 브랜드가 자리 잡으면 강합니다. 둘째, ODM의 가동률이 안정적으로 올라가면서, 매출 증가가 이익 증가로 이어지는 것. 단순 매출 성장만큼 중요한 게 영업이익률 개선입니다. 셋째, 업계 전체의 할인 경쟁이 줄어드는 것. 할인 경쟁이 줄어든다는 건 수요가 탄탄하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할인 경쟁이 심해지면 산업 전체 마진이 내려갑니다. 결국 2차 전성기는 “많이 팔아서”가 아니라 “제값 받고 팔아서”가 만들어냅니다.
이 주제를 블로그에서 더 맛있게 풀려면, ‘명품 둔화’와 연결하는 것도 좋은 훅이 됩니다. 요즘 소비는 줄지 않고 이동한다고 했죠. 명품 소비가 숨을 고르면, 그 돈이 어디로 가냐. 피부 관리, 웰니스, 자기관리로 간다는 논리를 붙이면 K-뷰티의 구조적 수요와 맞물립니다. 특히 스킨케어는 ‘경기 둔화에도 비교적 방어적’이라는 성격이 있습니다. 립스틱 지수처럼, 어려울수록 작은 사치가 늘어난다는 말도 있죠. 물론 모든 화장품이 방어적인 건 아닙니다. 고가 색조는 경기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초 스킨케어, 선케어, 기능성 제품은 상대적으로 수요가 유지되는 편입니다. 그래서 K-뷰티가 잘하는 영역이 어디인지까지 연결하면 글의 설득력이 올라갑니다.
투자 관점에서 마지막으로 정리해보면, 지금의 K-뷰티는 과거처럼 “중국이 열리면 끝”이라는 단순 게임이 아닙니다. 시장이 바뀌었고, 소비 방식이 바뀌었고, 유통 구조가 바뀌었습니다. 2차 전성기라는 표현이 과장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인디 브랜드가 글로벌에서 성공하고, 그 뒤에서 ODM이 꾸준히 이익을 쌓고, 시장이 분산되며 리스크 프리미엄이 줄어드는 흐름이 이어진다면, 전성기라는 단어는 충분히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건 자동으로 오는 게 아닙니다. 숫자로 확인해야 합니다. 미국 매출이 분기마다 꺾이지 않는지, 마케팅비가 과도하게 늘지 않는지, 재고가 쌓이지 않는지, ODM의 고객 포트폴리오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지, 이런 기본기 숫자를 확인하면서 따라가야 합니다.
K-뷰티는 “끝났다”가 아니라 “구조가 바뀌었다”에 가깝습니다. 예전의 성공 공식이 무너진 건 맞지만, 새로운 성공 공식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투자자는 늘 그 변곡점에서 돈을 벌어왔습니다. 중국 없이도 성장하는 K-뷰티가 가능하다는 게 증명되는 순간, 시장은 다시 ‘전성기’라는 단어를 꺼낼 겁니다. 지금은 그 증명 과정의 중간쯤에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테마에 올라타는 게 아니라 구조를 읽는 겁니다. 소비자는 이미 움직이고 있고, 돈의 방향도 바뀌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방향이 “지속 가능한 성장”인지, “잠깐의 유행”인지 숫자로 확인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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