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항공을 다시 보려면 감성보다 숫자부터 봐야 합니다. 항공은 스토리 산업이 아니라 구조와 수치의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팬데믹 직전인 2019년 대한항공의 연결 매출은 약 12조 원 수준이었습니다. 팬데믹을 거치며 여객은 붕괴됐지만, 2021~2022년에는 화물 운임 급등 덕분에 오히려 매출과 영업이익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최근 몇 년을 보면 연간 매출은 15조~16조 원대까지 올라왔고, 영업이익도 1조 원을 크게 웃도는 체력을 보여주었습니다. 팬데믹 이전 대비 매출 규모 자체가 한 단계 레벨업된 셈입니다.
핵심은 수익 구조입니다. 2019년에는 여객 매출 비중이 약 70% 수준이었고, 화물은 20% 중반이었습니다. 팬데믹 기간에는 화물 비중이 50%를 넘는 비정상적 구조가 되었고, 지금은 다시 여객 중심으로 돌아왔지만 화물 체력은 예전보다 높아졌습니다. 여객 수요는 이미 2019년 대비 90~100% 수준을 회복했고, 미주·유럽 장거리 노선의 탑승률은 80% 중후반까지 올라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제선 회복이 실적을 지지하는 구조입니다.
대한항공의 연간 운항 규모를 보면 보유 항공기는 약 160대 내외, 이 중 장거리 운항이 가능한 대형기 비중이 높습니다. 장거리 노선은 좌석당 단가(Yield)가 높고, 프리미엄 좌석 매출 비중도 큽니다. 예를 들어 미주 노선의 평균 운임은 동남아 단거리 노선 대비 1.5~2배 이상 높습니다. 좌석 점유율이 1~2%만 변해도 영업이익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합니다. 항공은 고정비 비중이 높은 산업이기 때문에 탑승률과 단가가 곧 이익 레버리지로 연결됩니다.
화물 부문도 숫자로 보면 여전히 의미가 있습니다. 팬데믹 당시 톤당 운임이 역사적 고점까지 치솟으며 연간 화물 매출이 7조 원에 육박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수준에서 정상화됐지만, 여전히 연간 3조~4조 원대 화물 매출을 유지합니다. 특히 반도체·2차전지·의약품·고부가가치 전자제품은 항공 화물 의존도가 높습니다. 글로벌 공급망이 완전히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화물은 대한항공의 변동성 완충 장치입니다.
비용 구조를 보겠습니다. 항공사에서 가장 큰 변수는 유가입니다. 연료비는 전체 영업비용의 약 25~35%를 차지합니다.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변동할 경우 수천억 원 단위의 비용 차이가 발생합니다. 다만 대한항공은 유류할증료 제도를 통해 일정 부분 전가하고, 일부 헤지 전략을 사용합니다. 환율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비용의 상당 부분이 달러로 결제되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이 100원 변동하면 비용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최근 환율이 1,300원대 이상에서 움직이면 단기 부담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해외 매출 역시 달러로 들어오기 때문에 완전한 순손실 구조는 아닙니다.
밸류에이션도 숫자로 보겠습니다. 시가총액은 대략 10조 원 안팎에서 움직여왔습니다. 연간 영업이익이 1조 원을 넘는 체력이라면 단순 EV/EBITDA 기준으로 4~6배 구간에 형성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글로벌 대형 항공사들의 평균 EV/EBITDA가 5~7배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과도한 고평가 영역은 아닙니다. 다만 항공은 사이클 산업이기 때문에 시장은 프리미엄을 쉽게 주지 않습니다. 실적 지속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생길 때만 재평가가 가능합니다.
이제 가장 큰 이벤트인 아시아나항공 통합을 봐야 합니다. 통합이 본격화되면 기단 규모는 200대 이상으로 확대됩니다. 슬롯 통합, 노선 중복 조정, 정비·운영 효율화 등을 통해 연간 수천억 원대 비용 절감 효과가 기대됩니다. 항공 산업은 규모의 경제가 명확한 산업입니다. 고정비 비중이 높기 때문에 규모 확대는 곧 단위당 비용 하락으로 이어집니다. 통합 효과가 완전히 반영되면 이익 체력이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습니다.
공급 측면도 중요합니다. 글로벌 항공기 제조사인 보잉과 에어버스의 생산 차질로 신규 항공기 인도는 지연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항공기 공급이 빠르게 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요는 회복됐지만 공급은 제한적이라는 점이 운임을 지지합니다. 과거처럼 과잉 경쟁으로 운임이 급락하는 구조와는 다소 다릅니다.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공급 제약이 이익 방어에 기여하는 환경입니다.
프리미엄 전략도 수치로 보면 의미가 있습니다. 장거리 노선에서 비즈니스·퍼스트 클래스 좌석은 전체 좌석의 10~15% 수준이지만, 매출 비중은 30%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소득층과 기업 출장 수요가 회복되면 이익 레버리지가 큽니다. 여행이 단순 이동이 아니라 경험 소비로 확장되는 흐름 속에서 프리미엄 좌석의 전략적 가치는 커지고 있습니다.
리스크도 다시 짚어야 합니다. 글로벌 경기 둔화가 현실화되면 여객과 화물 모두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유가가 급등하면 단기 이익 변동성이 확대됩니다. 환율 급변도 부담입니다. 또한 통합 과정에서 예상보다 비용이 더 들거나 노선 조정이 지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항공은 항상 외부 변수에 민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이클은 몇 가지 점에서 다릅니다. 첫째, 팬데믹을 거치며 재무 구조가 개선되었습니다. 대규모 유상증자와 자본 확충을 통해 부채비율을 낮추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둘째, 화물 네트워크라는 방어 수단이 있습니다. 셋째, 통합 이후 국내 시장에서의 지배력은 과거보다 강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대한항공을 바라볼 때는 세 가지 숫자를 추적해야 합니다. 첫째, 국제선 탑승률과 운임 단가. 둘째, 유가와 환율 흐름. 셋째, 통합 이후 비용 절감 규모입니다. 이 세 지표가 긍정적으로 유지된다면 연간 1조 원 이상의 영업이익 체력은 유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럴 경우 현재 밸류에이션은 재평가 여지도 존재합니다.
항공은 항상 변동성이 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수요 회복, 공급 제약, 통합 시너지라는 세 가지 축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대한항공은 단순한 여행 회복주를 넘어 구조적 재편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숫자로 보면 이미 팬데믹 이전과는 다른 체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남은 것은 이 체력이 몇 년간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시장의 판단입니다. 하늘은 다시 열렸고, 이제는 이익의 지속성이 평가받는 구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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