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비는 줄지 않았습니다. 방향이 바뀌었을 뿐입니다. 한동안 전 세계 소비의 상징이었던 명품 시장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면서 많은 분들이 “이제 소비 침체가 시작되는 것 아니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시장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다른 장면이 보입니다. 사람들은 소비를 멈춘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스포츠와 애슬레저, 그리고 ‘경험형 소비’가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명품은 보복소비의 상징이었습니다. 가격을 올려도 팔렸고, 매장이 길게 줄을 서는 풍경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금리 상승, 중국 경기 둔화, 중산층 소비 여력 약화가 겹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특히 ‘한 단계 위의 삶’을 상징하던 가방과 의류 중심의 아스피레이셔널 소비가 먼저 둔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초고가 주얼리나 하이엔드 시계처럼 극상위 소비층이 지지하는 영역은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있지만, 중간 가격대 럭셔리의 성장 속도는 눈에 띄게 둔화되는 흐름입니다.
그렇다면 그 돈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최근 몇 년간 글로벌 소비 트렌드를 보면 운동, 러닝, 헬스, 테니스, 골프 등 활동 기반 소비가 강해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옷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삶을 사는가’를 표현하는 소비입니다. 애슬레저는 이제 체육관 전용 복장이 아니라 출근복, 여행복, 일상복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기능성과 디자인이 결합되면서 운동복은 옷장의 중심으로 이동했습니다. 한 번 사면 자주 입고, 반복 사용하며, 일상과 밀착됩니다. 이런 소비는 경기 변동에 생각보다 강합니다.
사람들의 심리도 중요합니다. 명품은 구매 순간의 만족감은 크지만 가격이 높아질수록 부담도 커집니다. 반면 스포츠웨어는 ‘건강을 위한 소비’라는 명분이 붙습니다. 러닝화를 사는 건 사치가 아니라 자기관리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런 소비는 쉽게 끊기지 않습니다. 특히 SNS 환경에서는 운동과 자기관리의 이미지가 곧 개인 브랜드가 됩니다. 운동복과 러닝화는 단순 제품이 아니라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상징이 됩니다.
스포츠 이벤트는 이 흐름을 더욱 증폭시킵니다. 올림픽, 월드컵 같은 글로벌 이벤트는 단기적으로 소비를 자극하는 강력한 촉매입니다. 유니폼, 한정판 스니커즈, 공식 굿즈는 단순 제품이 아니라 ‘경험을 소유하는 아이템’이 됩니다.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관련 상품이 빠르게 팔려나가는 현상은 단순한 이벤트 효과를 넘어, 사람들이 기억과 스토리에 돈을 지불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명품 가방 대신 올림픽 한정판을 선택하는 소비자는 줄어든 게 아니라 이동한 것입니다.
기업 측면에서도 스포츠·애슬레저 산업은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단순히 제품을 많이 파는 시대에서, 브랜드 스토리·직판 채널 강화·디지털 플랫폼 결합이 핵심이 되고 있습니다. 온라인 직판 비중이 늘어나면서 마진 구조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또한 기능성 원단, 친환경 소재, 고급 봉제 기술 등 공급망 경쟁력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브랜드가 앞에 서 있지만, 실제 수익성은 뒤에서 움직이는 생산·물류·채널 전략이 좌우합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평균 가격 전략입니다. 명품은 지속적인 가격 인상 전략을 택했지만, 스포츠 브랜드는 프리미엄 라인과 대중 라인을 동시에 운영합니다. 러닝화에서도 10만 원대 제품과 20만 원 이상 고기능 제품을 병행하며 소비자를 세분화합니다. 이런 구조는 경기 둔화 시에도 어느 정도 방어력을 가질 수 있게 합니다. 소비가 완전히 끊기지 않고, 가격대 안에서 이동하는 형태가 나타납니다.
투자 관점에서 보면 세 가지를 봐야 합니다. 첫째, 스포츠 소비가 일시적 유행인지 구조적 변화인지입니다. 지금까지의 데이터와 생활 방식 변화를 보면 구조적 변화에 가깝습니다. 운동은 선택이 아니라 기본 루틴이 되었고, 루틴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둘째, 브랜드 간 차별화입니다. 모두가 같은 속도로 성장하지는 않습니다. 제품 혁신과 채널 전략, 재고 관리 능력에서 승패가 갈립니다. 셋째, 밸류에이션입니다. 이미 기대가 많이 반영된 기업은 조정 시 리스크가 있고, 실적 개선 대비 저평가된 기업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소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방향을 바꿀 뿐입니다. 한때 로고가 주인공이었다면, 이제는 움직임과 경험이 주인공이 되고 있습니다. 명품이 숨을 고르는 사이 스포츠와 애슬레저가 일상으로 스며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소비가 줄어든다고 걱정하기보다, 어디로 이동하는지 관찰해야 합니다. 시장은 늘 그렇게 다음 이야기를 준비해왔습니다. 이번 이야기의 중심에는 스포츠와 라이프스타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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