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아시아 증시에서 상징적인 장면이 동시에 연출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대표 지수인 **닛케이 225**가 1989년 버블 시기 고점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한국의 **코스피** 역시 강한 반등 흐름을 이어가며 시장 분위기를 바꾸고 있습니다. 단순히 “증시가 올랐다”는 뉴스로 보기엔 아쉬운 장면입니다. 30년을 돌아 다시 고점을 뚫은 일본, 그리고 긴 박스권을 벗어나려는 한국. 이 두 시장의 동시 상승은 아시아 자산의 재평가 신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일본을 보겠습니다. 닛케이는 1989년 말 38,915포인트를 기록한 뒤, 버블 붕괴와 함께 30년 넘는 침체를 겪었습니다. 부동산 가격 폭락, 금융권 부실, 디플레이션 고착화, 인구 감소. ‘잃어버린 30년’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흐름이 달라졌습니다. 핵심은 구조 변화입니다.
가장 큰 변화는 기업 지배구조 개혁입니다. **도쿄증권거래소**는 PBR 1배 미만 기업들에 대해 자본 효율 개선 계획을 요구했고, 이에 따라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가 급증했습니다. 일본 기업 특유의 ‘현금 쌓아두기’ 문화가 바뀌기 시작한 것입니다. ROE가 개선되고, 주주 환원이 늘어나면서 글로벌 자금이 다시 일본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엔화 약세도 결정적이었습니다. 일본은 대표적인 수출 국가입니다. **도요타 자동차**는 환율 효과와 하이브리드 판매 호조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반도체 장비 업체인 **도쿄 일렉트론** 역시 AI 반도체 투자 확대의 수혜를 톡톡히 누렸습니다. 글로벌 AI 사이클과 일본 제조업의 기술력이 맞물린 결과입니다.
여기에 상징적 장면도 있었습니다. **워런 버핏**이 일본 5대 종합상사 지분을 확대하며 일본 시장에 대한 신뢰를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이는 “일본은 구조적으로 저평가됐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졌고, 해외 자금 유입에 불을 붙였습니다.
이제 한국을 보겠습니다. 코스피는 오랜 기간 2,000~2,700선 사이에서 박스권 흐름을 이어왔습니다.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 반도체 업황 부진, 지정학적 리스크 등이 겹치며 지수는 힘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그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메모리 수요 확대의 직격 수혜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HBM(고대역폭 메모리) 수요 급증은 단순한 업황 반등을 넘어 ‘슈퍼사이클’ 논쟁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AI 인프라 투자가 본격화되면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가시성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코스피 상승의 또 다른 축은 밸류업 기대감입니다. 한국 정부 역시 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을 통해 PBR 1배 미만 기업의 개선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지배구조 개혁 사례가 한국에도 자극이 된 셈입니다. 실제로 저PBR 금융주, 지주사, 일부 제조업 기업들이 재평가 기대 속에 강한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과 한국이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비슷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30년 침체 끝에 “체질 개선”으로 고점을 돌파했고, 한국은 “산업 경쟁력과 자본 효율 개선”을 앞세워 재평가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공통점은 명확합니다. 단순한 유동성 장세가 아니라 구조 변화에 기반한 리레이팅 국면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리스크도 있습니다. 일본은 엔화 약세가 장기화될 경우 수입 물가 상승과 소비 둔화로 이어질 수 있고, 일본은행의 통화정책 정상화는 금융시장 변동성을 키울 수 있습니다. 한국은 반도체 업황에 대한 의존도가 여전히 높고, 글로벌 수요 둔화 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가계부채와 부동산 시장 변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장면은 단기 반등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글로벌 자금은 늘 상대적 매력을 찾습니다. 미국 증시가 고평가 논란에 놓인 상황에서, 일본과 한국은 “이익 개선 대비 낮은 밸류에이션”이라는 매력을 제공합니다. 특히 AI, 반도체, 전장, 산업 자동화 등 미래 산업과 연결된 기업들이 중심에 서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경기민감주 랠리와는 결이 다릅니다.
투자 관점에서 보면, 지금은 지수 자체보다 ‘어떤 산업이 구조적으로 성장하고 있는가’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본은 반도체 장비, 자동차 전동화, 로봇·자동화 분야가 강점이고,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2차전지 소재, 일부 방산·조선 업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아시아 제조업의 부활이라는 큰 흐름 안에서 두 시장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는 셈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심리입니다. 1989년 고점을 넘지 못하던 일본 시장은 오랜 시간 투자자들의 ‘트라우마’였습니다. 그 벽을 돌파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상징성을 가집니다. 한국 역시 3,000선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강합니다. 만약 코스피가 실적 기반으로 안정적으로 상단을 돌파한다면, 시장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결국 질문은 이것입니다. 지금의 상승이 단기 유동성 장세인지, 아니면 구조적 전환의 시작인지. 일본은 이미 30년 박스권을 넘어섰고, 한국은 산업 경쟁력과 자본 효율 개선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시험받고 있습니다. 글로벌 자본이 아시아를 다시 보기 시작한 지금, 우리는 단순히 “얼마까지 오를까”를 묻기보다 “왜 오르는가”를 깊이 들여다봐야 합니다.
닛케이 사상 최고치와 코스피 상승은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문장으로 연결됩니다. 아시아 증시가 오랜 저평가 국면을 지나 재평가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는 신호. 물론 모든 상승장이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구조 변화가 동반된 상승은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장면은 숫자의 돌파가 아니라 인식의 전환일 수 있습니다. 일본이 30년을 돌아 벽을 넘었고, 한국이 새로운 산업 사이클 위에서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면, 이 흐름은 단순한 뉴스 헤드라인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중요한 건 지수를 쫓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구조적으로 강해지는 기업을 찾는 일입니다. 아시아 증시의 새로운 페이지가 열리고 있는 지금, 냉정함과 통찰이 동시에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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