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에서 은근히, 하지만 확실하게 퍼지고 있는 트렌드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이겁니다. **사람들이 점점 말을 안 하려고 한다**는 것. 정확히 말하면, 말하는 행위 자체가 싫다기보다는 ‘설명해야 하는 상황’, ‘즉각 반응해야 하는 상태’를 점점 피하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개인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소비·서비스·기업 전략 전반을 바꾸고 있는 꽤 큰 흐름입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비스 경쟁력은 얼마나 친절한지, 얼마나 빠르게 응대하는지에 달려 있었습니다. 콜센터 연결 속도, 상담원의 말투, 매뉴얼화된 친절 문구들이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더 친절한 설명을 원하지 않습니다. **아예 설명할 필요가 없는 상태**를 원합니다. 질문하지 않아도 되고, 대답하지 않아도 되고, 감정 소모 없이 버튼 몇 번으로 끝나는 경험이 기준이 됐습니다.


이 변화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분야가 바로 커머스입니다. **쿠팡**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빠릅니다. 쿠팡의 강점은 물류도, 가격도 있지만 사용자 입장에서 가장 강력한 포인트는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입니다. 상품 검색부터 결제, 배송까지 전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고, 문의할 일도 거의 없습니다. 주소, 결제 수단, 배송 옵션은 이미 저장돼 있고, 문제가 생겨도 복잡한 전화 대신 앱 안에서 클릭 몇 번으로 해결됩니다. 소비자는 쇼핑을 하면서 사람을 상대하지 않습니다. 그게 이제는 ‘편리함’을 넘어 ‘기본값’이 됐습니다.


배달 서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배달의민족**이 초기에 빠르게 확산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전화 주문을 안 해도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가게에 전화해서 메뉴 설명하고, 주소 말하고, 요청사항 전달하는 과정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미 스트레스였습니다. 지금은 한 단계 더 나아갔습니다. 배달의민족은 재주문 버튼, 즐겨찾기, 자동 옵션 설정 등을 통해 사용자가 거의 아무 생각 없이 주문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항상 먹던 그거”를 말하지 않아도 시스템이 대신 기억해줍니다.


이 흐름은 오프라인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무인 주문 키오스크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어르신들이 쓰기 어렵다”, “오히려 불편하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살아남은 키오스크들의 공통점은 기능이 많아서가 아니라, **선택지를 극단적으로 줄였다는 점**입니다. 화면은 커졌고, 버튼은 적어졌고, 자주 쓰는 메뉴는 자동으로 전면에 배치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인건비 절감이 아니라, 주문 과정에서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메뉴를 고르며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뒤에 줄 선 사람을 의식하지 않아도 됩니다.


금융 서비스에서는 이 트렌드가 더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토스**가 대표적입니다. 토스가 처음 주목받았던 이유는 금융 상품이 많아서가 아니라, 송금 과정에서 설명과 확인을 거의 없앴기 때문입니다. 은행명 선택, 계좌번호 확인, 공인인증 절차 같은 ‘금융스러운 불편’을 과감히 덜어냈습니다. 지금은 대출, 투자, 보험까지 확장됐지만, 핵심 철학은 여전히 같습니다. 사용자가 뭘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게 만드는 것, 그리고 사람과 대화하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것. 금융이라는 가장 말이 많을 수밖에 없는 영역에서조차 ‘무언의 UX’가 통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글로벌 서비스로 시선을 넓히면 이 흐름은 더 분명해집니다. **Netflix**는 사용자가 말을 할 필요는 물론, 선택조차 최소화하는 서비스입니다. “뭘 볼까?”라는 질문이 가장 피곤하다는 걸 알고, 자동 재생과 이어보기, 단순한 요금 구조로 사용자의 결정을 대신해줍니다.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보다 더 강력한 건, 사용자가 아무 행동을 하지 않아도 서비스가 계속 굴러간다는 점입니다.


여행 서비스에서도 비슷한 방향이 보입니다. **Airbnb**는 예전에는 호스트와의 소통이 핵심이었지만, 지금은 점점 비대면·무언 중심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자동 체크인, 명확한 가격 표시, 후기 중심 정보 제공은 모두 “질문하지 않아도 되게 만들기” 위한 장치입니다. 여행에서 가장 스트레스 받는 순간은 사람에게 물어봐야 할 때라는 걸, 이 플랫폼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 트렌드가 한국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나는 이유도 분명합니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빠른 응답’, ‘즉각 반응’, ‘눈치’가 기본값이었습니다. 전화는 바로 받아야 하고, 메시지는 읽으면 답해야 하고, 설명은 친절해야 한다는 압박이 늘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이 문화가 디지털 환경에서 과도하게 증폭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연락은 곧 에너지 소모다.” 그 결과, 연락을 줄여주는 서비스, 말을 안 해도 되는 구조가 선호되기 시작한 겁니다.


이 변화는 기업 입장에서 굉장히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예전에는 고객 접점을 늘리는 게 목표였다면, 이제는 **고객이 접점 자체를 느끼지 않게 만드는 것**이 경쟁력이 되고 있습니다. 상담원을 늘리는 것보다, 상담할 일이 없게 만드는 구조. 친절한 설명보다, 설명이 필요 없는 설계. 이 방향으로 움직이는 기업들이 실제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투자 관점에서도 이 트렌드는 꽤 의미가 있습니다. 앞으로 잘되는 서비스와 기업을 고를 때, “이 회사는 얼마나 말을 하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객이 매번 입력하고, 설명하고, 기다려야 한다면 그만큼 이탈 가능성도 커집니다. 반대로 버튼 하나, 자동 처리, 무언의 흐름으로 설계된 서비스는 사용자가 쉽게 떠나지 않습니다. 조용하지만 강한 락인이 생깁니다.


정리해보면, 요즘 트렌드의 핵심은 소통의 진화가 아니라 **소통의 최소화**입니다. 사람들은 더 많은 말을 원하지 않습니다. 더 잘 설명된 서비스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일이 처리되는 상태를 원합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경쟁은 누가 더 친절한가가 아니라, 누가 더 조용한가로 갈 가능성이 큽니다.


조용한 서비스, 말 안 해도 되는 경험, 설명 없는 UX. 이 세 가지를 잘 만드는 기업이 결국 선택받습니다. 이건 유행이 아니라, 이미 생활 깊숙이 들어온 변화입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생각보다 오래갈 가능성이 큽니다. 사람들이 점점 더 피로해질수록, **아무 말도 안 해도 되는 서비스의 가치는 계속 올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