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5,200선을 넘어섰습니다.
이 정도 숫자가 나오면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합니다.
“이제 진짜 대세장 아닌가?”
“내가 너무 늦은 거 아니야?”
그런데 같은 시간, 시장에서 가장 큰 지갑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연기금, 특히 국민연금이 조용히 1조 8천억 원 넘게 순매도에 나선 겁니다.
잔치가 한창인데, 접시를 비우고 자리를 정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분위기를 망치려는 게 아니라,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코스피 신고가인데, 국민연금은 왜 팔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건 전망의 문제라기보다 비중의 문제입니다.
주가가 크게 오르면 자연스럽게 국내 주식 비중도 함께 커집니다.
국민연금 같은 장기 자금은 미리 정해둔 목표 비율에 맞춰 움직이기 때문에,
비중이 기준을 넘어서면 일부를 줄여 다시 균형을 맞춥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리밸런싱입니다.
욕조에 물이 한쪽으로만 쏠리면 어떻게 될까요?
넘치기 전에 조금 퍼내야 합니다.
연기금의 매도는 딱 그 타이밍에 나옵니다.
그래서 강세장에서 나오는 매물은
“이제 끝이다”라는 신호라기보다
“너무 잘 올라서, 위험을 조금 덜어내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이번 달 연기금 수급, 숫자만 깔끔하게 보면
올해 들어 연기금은 유가증권시장에서
1조 8,605억 원을 순매도했습니다.
특정 며칠을 빼면 대부분 거래일이 매도 우위였고,
팔린 종목을 보면 지수 비중이 큰 대형주들이 눈에 띕니다.
- 삼성전자
- 현대차
- 알테오젠
- HD한국조선해양
- 삼성바이오로직스
반면 흥미로운 점도 있습니다.
같은 연기금인데, 다른 종목은 오히려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 삼성전자우
- 현대모비스
- 고려아연
- 한화에어로스페이스
- 삼성SDI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연기금이 판다”가 아닙니다.
**“무엇을 줄이고, 무엇으로 바꿔 담고 있나”**입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를 줄이면서 삼성전자우를 늘리는 흐름,
현대차를 줄이고 현대모비스를 담는 선택은
같은 그룹·같은 산업 안에서의 구성 조정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단순 추종보다 구조를 보는 게 더 유리한 이유입니다.
지분율 공시가 더 중요한 이유
일간 수급이 ‘파도’라면,
지분율 공시는 ‘조류’에 가깝습니다.
이번 달에만 국민연금의 지분율 변동 공시가 152건 나왔습니다.
그중 일부는 꽤 의미 있는 변화입니다.
- 녹십자
- 한화비전
- 대한항공
이들처럼 2%포인트 안팎으로 비중이 줄어든 경우는
단순 매매가 아니라 포지션 축소로 봐야 합니다.
특히
- 코스맥스
- 한국콜마
처럼 두 자릿수 보유에서 내려오는 흐름은
의도가 더 분명합니다.
그래서 지분 공시는
“오늘 샀다, 팔았다”보다
“이 기업을 앞으로 얼마나 가져갈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5%룰, 개인 투자자에게도 쓸모 있는 이유!
5%룰은 상장사 지분을 5% 이상 보유하면 공시해야 하고,
이후 1%포인트 이상 변동이 생기면 다시 보고하는 제도입니다.
이 공시가 좋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단기 수급이 아니라 장기 전략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보유 목적도 함께 표시됩니다.
- 단순투자
- 일반투자
- 경영참가
용어는 딱딱하지만, 뜻은 간단합니다.
“어디까지 관여할 생각인가”를 표시한 라벨입니다.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뉴스보다 이 공시 흐름을 따라가는 편이
오히려 덜 흔들립니다.
앞으로 시장, 이렇게 보면 조금 편해집니다.
최근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을 상향하고,
해외 주식 비중은 소폭 낮췄습니다.
이 말은 곧,
국내에서는 종목·업종 교체가 더 잦아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연기금 흐름을 정답지처럼 따라가는 건 위험합니다.
큰손은 분기·연 단위로 움직이고,
개인은 그 변동성을 버티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대신 이 세 가지만 보면 충분합니다.
- 지수 급등 구간에서 매도가 지속적인지
- 5%룰 공시에서 비중 축소가 연속으로 나오는지
- 같은 업종 안에서 어떤 종목으로 갈아타는지
이건 뉴스보다 훨씬 실용적인 나침반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억할 한 문장!
지수는 축제지만, 비중은 회계입니다.
5,200이라는 숫자는 화려하지만
큰돈의 세계에서는 감탄보다 계산이 먼저입니다.
국민연금은 주가에 감정이 없습니다.
비중이 커지면 덜어내고,
줄어들면 다시 채웁니다.
그래서 강세장에서 나오는 매물은
불신의 신호가 아니라
리스크를 관리하는 보험료에 가깝습니다.
개인 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오를까?”보다
“이 자산이 내 계좌에서 너무 커지진 않았나?”
이 질문을 먼저 던질 수 있다면,
뉴스 한 줄에 흔들리는 횟수는 확실히 줄어듭니다.
결국 돈을 오래 지키는 힘은
한 방의 드라마가 아니라,
분산과 재조정이라는 지루한 반복에서 나옵니다.
재미없는 원칙이,
가장 재미있게 돈을 지켜줍니다.
컨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