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이야기가 본격화되면서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은 이겁니다. “그래서 내 일자리는 안전한가?” 그런데 이 질문 자체가 조금 바뀌어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AI가 사람의 일을 ‘대체하느냐’보다, 어떤 일을 더 비싸게 만들고 어떤 일을 싸게 만드는지가 훨씬 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실제 현장을 보면 AI가 들어올수록 오히려 사람이 더 필요해지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 영역의 몸값은 빠르게 올라가고 있습니다.
먼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직군은 의료입니다. AI 판독, 영상 분석, 진단 보조 기술은 이미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왔지만, 그 결과를 최종적으로 해석하고 책임지는 역할은 여전히 의사에게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AI 도입 이후 의사의 가치가 떨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분화되었다는 점입니다. 단순 판독 중심의 업무는 자동화되지만, 복합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전문의, 수술 경험이 많은 의사,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난 의사의 희소성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이는 의료 서비스가 ‘기술 집약 산업’이면서 동시에 ‘신뢰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법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AI는 판례 검색, 문서 요약, 계약서 초안 작성에는 탁월하지만, 실제 분쟁 상황에서 어떤 전략을 취할지, 리스크를 어디까지 감수할지 결정하는 것은 사람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단순 서류 작업 중심의 법무 인력은 줄어드는 반면, 소송 전략, 협상, 규제 해석을 담당하는 변호사들의 가치는 오히려 올라가고 있습니다. AI는 일을 빠르게 해주지만, 책임을 대신 져주지는 못합니다.
두 번째로 눈여겨볼 직군은 ‘현장형 전문직’입니다. 산업 설비 엔지니어, 전력·에너지 인프라 유지보수 인력, 반도체·데이터센터 운영 인력 같은 직군은 AI 시대에 더 귀해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매뉴얼로 설명하기 어려운 판단을 반복적으로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설비의 미세한 소리 변화, 온도 패턴의 이상 징후, 장비 간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예외 상황은 데이터로 학습할 수는 있어도, 실제 현장에서의 ‘즉각적인 판단’은 경험 많은 사람이 훨씬 빠르고 정확합니다. 자동화가 진행될수록 이런 숙련 인력의 부족은 더 심각해지고, 결과적으로 인건비와 몸값은 올라갑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AI가 현장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현장을 더 고도화시킨다는 점입니다. 자동화 설비가 늘어날수록, 그 설비를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의 중요성은 더 커집니다. 그래서 단순 노동은 줄어들 수 있지만, 숙련 노동의 가치는 오히려 상승하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세 번째는 상담, 교육, 코칭, 프리미엄 서비스처럼 ‘관계 기반 직업’입니다. AI 챗봇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생의 중요한 결정 앞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사람을 찾습니다. 자녀 교육, 커리어 전환, 재무 상담, 심리 상담 같은 영역은 정보 제공보다 신뢰와 공감이 더 중요합니다. 이 분야에서도 AI는 도구로 활용됩니다. 자료 정리, 시뮬레이션, 분석은 AI가 맡고, 사람은 해석과 설득, 관계 관리를 담당합니다. 결과적으로 잘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는 더 벌어지는 구조입니다.
이제 이 흐름을 기업과 산업, 투자 관점으로 옮겨보면 그림이 더 또렷해집니다. AI를 ‘사람을 없애는 기술’로 접근하는 기업보다, ‘사람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도구’로 쓰는 기업이 장기적으로 더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 가능성이 큽니다. 의료 서비스 기업, 산업 안전 솔루션 기업, 인프라 운영 기업, 전문 서비스 플랫폼 기업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들은 완전 자동화를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에 규제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낮고, 고객 이탈도 적습니다.
특히 의료, 에너지, 인프라, 보안처럼 사고 비용이 큰 산업일수록 ‘사람 + AI’ 모델이 표준이 됩니다. 이 구조에서는 AI 기술 자체보다도, 현장 데이터, 운영 경험, 고객 신뢰를 함께 쌓아온 기업이 경쟁력을 갖게 됩니다. 단순히 기술이 뛰어난 회사보다, 실제로 문제를 해결해본 경험이 있는 회사가 더 강해지는 이유입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이는 중요한 힌트가 됩니다. AI 모델 개발사만 바라보기보다는, AI를 활용해 기존 산업의 생산성과 안정성을 높이는 기업을 함께 봐야 합니다. 이런 기업들은 기술 변화에 따라 쉽게 도태되기보다는, 기술을 흡수하면서 점진적으로 몸집을 키워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변동성은 낮고, 대신 시간이 갈수록 이익 체력이 쌓이는 구조입니다.
결국 AI 시대에 살아남는 직업과 기업의 공통점은 명확합니다. 책임을 지고, 현장을 이해하고, 신뢰를 축적하는 주체라는 점입니다. AI는 점점 똑똑해지겠지만, 최종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를 감당하는 존재는 여전히 사람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AI가 발전할수록, ‘사람이 꼭 필요한 자리’의 가치는 더 비싸질 가능성이 큽니다. 기술이 세상을 바꿔도, 돈의 흐름은 결국 책임이 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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