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기업 이야기를 하다 보면 묘하게 공통된 흐름이 하나 보입니다. 매출이 얼마나 늘었는지, 성장률이 몇 퍼센트인지보다 더 자주 등장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매출은 다음 달에도 반복될까?”라는 질문입니다. 예전에는 분기 실적이 한 번만 잘 나와도 시장이 환호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다릅니다. 같은 숫자라도 “일회성인가, 구조적인가”에 따라 평가가 완전히 갈립니다. 이 변화가 바로 지금 시장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트렌드라고 생각합니다.
한때 기업의 성장은 ‘더 많이 파는 것’과 거의 같은 의미였습니다. 더 많은 고객, 더 많은 점포, 더 많은 광고. 외형이 커지면 주가는 따라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광고비를 태워서 억지로 매출을 키운 기업은 오히려 의심을 받습니다. 그 매출이 멈추는 순간, 구조도 같이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시장이 너무 많이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 기업들은 묻습니다. “이 고객은 다시 돌아올까?” 그리고 “돌아오지 않기 힘든 구조를 만들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자본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금리가 높아지고, 자본이 비싸진 환경에서는 실패를 빠르게 덮어줄 돈이 없습니다. 예전처럼 ‘일단 키우고 보자’는 전략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시장은 훨씬 보수적인 기준을 들이댑니다. 매출이 반복되는지, 비용 구조가 예측 가능한지, 시간이 기업 편인지 아니면 시장 편인지 말입니다. 결국 이 모든 질문은 하나로 모입니다. 이 기업의 돈은 ‘사건’인가, 아니면 ‘습관’인가.
여기서 말하는 습관이란 단순한 구독 버튼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용자가 의식하지 않아도 계속 쓰게 되는 구조, 안 쓰는 게 더 불편해지는 구조, 다른 선택지를 찾는 순간 비용이 발생하는 구조를 말합니다. 이런 구조를 가진 기업은 굳이 큰 소리를 내지 않아도 시간이 지날수록 숫자가 쌓입니다. 분기마다 실적 발표가 이벤트가 아니라 확인 절차가 됩니다. 시장이 이런 기업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조금만 주변을 둘러보면 이 변화는 아주 일상적인 장면에서 보입니다. 예전에는 앱을 설치할 때도 고민했고, 결제할 때는 더 고민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한 번 설정해 두면 알아서 결제가 이루어지고, 서비스는 자연스럽게 생활의 일부가 됩니다. 음악, 영상, 배송, 결제, 업무 도구까지. 사용자는 “이번 달도 써야 하나?”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이미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상태에 들어가면 가격 인상도 상대적으로 둔감해집니다. 싼지 비싼지를 따지기보다, 바꾸는 게 귀찮아집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게 가장 강력한 경쟁력입니다.
이런 구조의 기업이 시장에서 받는 평가는 확연히 다릅니다. 성장률이 조금 낮아도 용서받고, 실적이 잠시 주춤해도 “구조는 살아 있다”는 말이 따라붙습니다. 반대로 숫자는 좋아 보여도 반복성이 약하면 평가가 박해집니다. 단기 성과와 장기 신뢰의 차이입니다. 투자자들이 기업을 바라보는 눈이 점점 ‘시간의 관점’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이 트렌드는 기업의 전략도 바꿉니다. 예전에는 마케팅이 핵심이었지만, 지금은 제품 설계 자체가 전략이 됩니다. 고객을 설득하는 것보다, 고객이 떠나지 않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해졌습니다. 그래서 요즘 기업들은 기능을 늘리기보다, 사용 흐름을 다듬습니다. 버튼 하나, 알림 하나, 결제 주기 하나까지 전부 “이 행동이 반복으로 이어질까”를 기준으로 설계됩니다. 매출팀보다 제품팀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된 이유입니다.
투자 관점에서 보면, 이 변화는 포트폴리오 구성에도 영향을 줍니다. 예전처럼 테마가 돌 때마다 갈아타는 전략은 점점 피로해집니다. 대신 “이 기업의 매출은 어떤 성격인가”라는 질문이 중요해집니다. 매출이 늘었다는 사실보다, 그 매출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가 더 중요해진 겁니다. 한 번 계약으로 끝나는지, 사용량이 늘수록 같이 커지는지, 유지보수가 붙는지, 소모품이 따라오는지. 이 중 하나라도 있으면 시장의 시선은 달라집니다.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조용한 성장’입니다. 뉴스에 자주 등장하지 않고, 화려한 발표도 없지만, 분기마다 숫자가 조금씩 쌓이는 기업들입니다. 이런 기업은 재미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포트폴리오의 중심이 됩니다. 변동성이 큰 장에서도 버텨주고, 전체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합니다. 요즘 시장이 화려함보다 안정감을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흐름은 앞으로 더 강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인구 구조 변화, 생산성 둔화, 기술의 성숙이 맞물리면서 폭발적인 외형 성장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 대신 기업들은 기존 고객에게서 더 많은 가치를, 더 오래 뽑아내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반복 매출 구조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 됩니다. 그리고 시장은 이 조건을 충족한 기업에게만 프리미엄을 줍니다.
그래서 지금 트렌드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요즘 시장은 성장보다 구조를 본다.” 이 말은 성장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성장의 질을 묻는다는 뜻입니다. 한 번 반짝하고 사라지는 성장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단단해지는 성장인지. 이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 때, 요즘 시장이 왜 이런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앞으로 기업 이야기를 볼 때, 숫자보다 먼저 이 질문을 던져보면 좋겠습니다. 이 매출은 반복될까, 아니면 사라질까. 고객은 돌아올까, 아니면 다시 설득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보이기 시작하면, 트렌드는 더 이상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투자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그리고 지금 시장은 분명히 그 기준 위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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