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이라는 공간은 생각보다 보수적인 곳입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해도 바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안전성, 숙련도, 책임 소재, 보험 체계까지 모든 것이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병원에서 어떤 장비가 ‘표준’이 된다는 건, 단순히 기술이 뛰어나다는 의미를 훨씬 넘어섭니다. 그 장비를 중심으로 수술 방식이 재편되고, 의사 교육이 바뀌며, 병원의 운영 방식과 비용 구조까지 함께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이런 변화를 조용히, 하지만 아주 깊게 만들어낸 기업이 바로 **Intuitive Surgical**입니다.
이 기업을 단순히 ‘수술 로봇 회사’라고 부르면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인튜이티브 서지컬은 로봇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수술이라는 행위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어버린 회사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투자 관점에서 중요한 건 바로 이 지점입니다. 기술은 따라올 수 있지만, 시스템과 표준은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다빈치 수술 로봇을 병원에 들이는 순간, 그 병원의 수술실은 이전과 전혀 다른 리듬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외과의는 다빈치 기준으로 수술을 익히고, 수련의와 전공의 교육 역시 같은 기준으로 이루어집니다. 수술 스케줄, 수술실 동선, 간호 인력 배치, 감염 관리 프로세스까지 장비 중심으로 재정렬됩니다. 이 단계에 들어서면 병원 입장에서 다빈치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운영 시스템의 일부가 됩니다.
여기서부터 전환 비용이 폭발적으로 커집니다. 가격이 조금 더 싸다고 해서, 혹은 새로운 경쟁 로봇이 나왔다고 해서 쉽게 바꿀 수 없는 구조가 됩니다. 장비 교체는 단순한 구매 변경이 아니라, 수술 방식과 교육 체계, 내부 프로세스 전체를 다시 짜야 하는 문제로 변합니다. 그래서 다빈치를 도입한 병원일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게 묶입니다. 이게 바로 인튜이티브 서지컬의 해자입니다.
이 회사의 사업 구조를 이해하면, 왜 이 기업이 늘 “비싸 보이는데도” 시장에서 프리미엄을 받는지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인튜이티브 서지컬의 매출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뉩니다. 로봇 시스템 자체 판매, 수술에 필요한 소모품과 기구, 그리고 유지보수와 서비스입니다. 겉으로 보면 로봇 판매가 가장 눈에 띄지만, 시간이 갈수록 비중이 커지는 건 소모품과 서비스입니다. 이 구조가 의미하는 바는 단순합니다. 장비를 한 번 팔고 끝나는 사업이 아니라, 수술이 반복될수록 매출이 쌓이는 구조라는 점입니다.
여기서 핵심 지표는 ‘신규 병원 수’가 아닙니다. ‘수술 건수’입니다. 다빈치로 수행되는 수술이 늘어날수록, 소모품 사용량과 서비스 매출은 거의 자동으로 따라옵니다. 병원이 하나 늘지 않아도, 이미 설치된 로봇의 활용도가 올라가기만 해도 회사의 매출과 이익은 증가합니다. 이건 전형적인 플랫폼형 수익 구조입니다. 스마트폰을 예로 들면, 단말기 판매보다 앱 사용과 서비스 매출이 더 중요해지는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이 구조는 경기 사이클과의 관계에서도 강점을 만듭니다. 소비재 기업은 경기 침체가 오면 바로 타격을 받습니다. 하지만 의료는 다릅니다. 경제 상황이 나빠진다고 해서 암 수술이나 중증 질환 수술을 미루는 경우는 제한적입니다. 특히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수술 수요는 줄기보다 질적으로 더 복잡해지고 정교해지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이는 다빈치 같은 로봇 수술 시스템이 더 적합한 환경이 됩니다.
흥미로운 건, 인튜이티브 서지컬의 성장이 단순히 “병원이 늘어서”가 아니라 “수술 방식이 바뀌어서”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개복 수술이 일반적이었고, 이후 복강경 수술이 표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점점 더 많은 수술이 로봇 기반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단기 유행이 아니라, 수술의 정확도, 환자의 회복 속도, 입원 기간, 합병증 감소 같은 의료의 본질적인 요구에서 비롯됩니다. 병원 입장에서도 수술 회전율이 올라가고, 환자 만족도가 높아지면 장비 투자에 대한 논리가 만들어집니다.
여기서 인튜이티브 서지컬의 또 다른 강점이 드러납니다. 이 회사는 단순히 로봇을 공급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수술 교육, 데이터 축적, 표준화된 수술 프로토콜까지 함께 쌓아왔습니다. 누적된 수술 경험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의료진의 숙련도와 병원의 신뢰로 전환됩니다. 의사 커뮤니티에서 다빈치 기반 수술이 하나의 기준점처럼 작동하기 시작하면, 그 표준을 깨는 건 매우 어렵습니다. 경쟁사가 비슷한 로봇을 내놓아도, “기술적으로 가능하다”와 “현장에서 채택된다”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 지점에서 경쟁 이야기를 짚지 않을 수 없습니다. 메드트로닉, 존슨앤드존슨 등 대형 의료기기 기업들도 로봇 수술 시장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로봇 수술 시장의 경쟁은 스마트폰처럼 빠르게 판이 바뀌는 시장이 아닙니다. 의료는 본질적으로 시간이 필요한 산업입니다. 임상 데이터가 쌓여야 하고, 학회에서 인정받아야 하며, 의사들이 충분히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경쟁은 ‘폭발적 전환’이 아니라 ‘점진적 침투’의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큽니다. 이 과정에서 인튜이티브 서지컬은 최신 모델을 통해 기존 설치 기반을 업그레이드하고, 더 많은 수술 영역으로 확장하면서 방어할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이 회사가 꾸준히 신형 모델을 내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신규 설치뿐 아니라, 기존 고객의 업그레이드 수요를 끌어내는 전략입니다. 이미 다빈치를 쓰고 있는 병원은 경쟁 로봇으로 갈아타기보다는, 같은 생태계 안에서 더 나은 버전으로 이동하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역시 플랫폼 기업이 가진 특성입니다.
물론 이 기업에도 리스크는 존재합니다. 성장률이 과거보다 둔화될 가능성, 의료 보험 정책 변화, 병원의 투자 여력,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경쟁 심화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시장이 기대하는 성장률과 실제 성장률 사이에 괴리가 생길 경우, 주가는 언제든지 변동성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기업은 “언제 사도 안전한 주식”이라기보다는, 구조는 훌륭하지만 가격은 늘 고민이 필요한 기업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이 기업이 흥미로운 이유는 분명합니다. 인튜이티브 서지컬은 의료 산업에서 드물게 반복 매출 구조를 가진 성장 기업입니다. 설치 기반이 늘고, 그 위에서 수술이 반복되고, 반복되는 수술이 소모품과 서비스 매출로 이어지는 구조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집니다. 이런 기업은 단기 실적보다도, ‘구조가 유지되고 있는지’를 보는 게 훨씬 중요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기업을 설명할 때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은 이것입니다.
“인튜이티브 서지컬은 수술을 자동화한 회사가 아니라, 수술을 표준화한 회사다.”
표준을 장악한 기업은 가격 경쟁에서 자유로워지고, 시간이 자기 편이 됩니다.
그래서 이 기업을 투자 관점에서 바라볼 때는 이렇게 정리하는 게 깔끔합니다. 단기적으로는 비싸 보일 수 있고, 시장 상황에 따라 주가는 흔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술이라는 반복되는 행위 위에 올라탄 비즈니스 모델, 그리고 병원 시스템 깊숙이 박혀 있는 구조는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면, 시장은 다시 이 구조를 확인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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