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시장을 보다 보면 묘한 공통 장면이 반복됩니다. 오랜만에 연락한 지인들조차 자연스럽게 주식 이야기를 꺼내고, 대화의 결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이번엔 진짜 쉽다”, “이렇게만 하면 되는 거 아니냐”, “나도 이제 감을 잡은 것 같다”는 말들입니다. 실제로 수익을 낸 사람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고, 계좌 숫자가 좋아진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다만 이 장면을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지금 우리가 마주한 시장은 ‘실력이 증명되는 장’이라기보다는 ‘환경이 수익을 만들어주는 장’에 훨씬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장의 핵심은 방향보다도 밀도입니다. 시장에 들어와 있는 돈의 양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두텁습니다. 투자자예탁금, 신용잔고, 각종 ETF로 흘러 들어오는 자금들은 특정 기업 하나의 경쟁력을 따져보고 들어오기보다는, “지금 시장에 있어야 한다”는 집단적 판단의 결과에 가깝습니다. 이때 시장은 분석의 정확성보다는 참여 여부를 먼저 보상합니다. 그래서 종목을 잘 골랐기 때문이 아니라, 시장 안에 있었기 때문에 수익이 나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수익의 원인이 흐려집니다. 기업의 실적이 개선되었는지, 산업 구조가 바뀌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자금이 몰렸는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상승장이 일정 기간 지속되면, 대부분의 설명은 사후적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됩니다. 주가가 오르면 이유가 생기고, 이유가 생기면 판단이 맞았다는 확신이 쌓입니다. 이 확신이 반복되면서 투자자는 점점 자신의 ‘실력 그래프’를 실제보다 가파르게 그리게 됩니다.
유동성이 만든 장의 가장 큰 특징은 실패가 늦게 온다는 점입니다. 잘못된 판단이 즉시 손실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수익으로 보상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는 리스크 관리보다 수익 극대화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게 됩니다. 평소라면 피했을 종목에도 손을 대고, 변동성이 큰 구간에서도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이 자신감은 실력의 결과라기보다는, 시장이 허용해준 범위 안에서만 유효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이 장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유동성 장세는 그 자체로 하나의 국면이고, 그 안에서 수익을 내는 것 역시 투자자의 몫입니다. 문제는 이 장이 끝난 뒤에 옵니다. 돈의 속도가 느려지고, 시장이 다시 숫자와 구조를 보기 시작할 때, 이전과 같은 판단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때 많은 투자자들이 “시장이 변했다”고 말하지만, 사실 변한 것은 시장보다도 환경이었고, 그 환경에 맞춰 조정되지 않은 투자 방식이 문제였던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 같은 시기에는 수익률보다 기록이 중요해집니다. 어떤 논리로 들어갔는지, 무엇을 보고 판단했는지, 그리고 만약 이 돈의 일부가 빠져나간다면 그 판단이 여전히 유효한지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동성 덕분에 얻은 수익은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그것을 실력의 증거로 착각하는 순간 다음 국면에서 치러야 할 비용이 커집니다.
시장에는 늘 두 종류의 시간이 흐릅니다. 하나는 돈이 흐르는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실력이 검증되는 시간입니다. 지금은 명백히 전자에 가깝습니다. 이럴 때 가장 좋은 선택은 공격이 아니라 정리입니다. 내가 어떤 조건에서 돈을 벌었는지를 명확히 구분해두는 것, 그리고 그 조건이 사라졌을 때 어떻게 행동할지를 미리 생각해두는 것이야말로 이 장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인사이트입니다.
결국 이 장은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의 수익은 내 판단이 만든 것인가, 아니면 시장이 허락한 것인가.” 이 질문에 솔직해질수록, 다음 장에서도 살아남을 확률은 높아집니다. 유동성은 언젠가 줄어들지만, 그 흐름을 이해한 경험은 남습니다. 지금은 돈을 버는 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장을 배우기에 아주 좋은 시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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