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산업은 겉으로 보면 단순합니다. 건물을 지을 때 설치하고, 시간이 지나면 교체하거나 보수하는 설비 산업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산업을 조금만 깊게 들여다보면, 제조업이라기보다는 **장기 계약 기반 서비스업**에 훨씬 가깝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구조를 가장 극단적으로 활용한 기업이 바로 오티스입니다.


오티스는 세계 최대 엘리베이터 회사 중 하나지만, 이 기업의 본질은 “엘리베이터를 많이 파는 회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오티스가 가장 중요하게 관리하는 건 **이미 설치된 엘리베이터에서 발생하는 유지보수 계약**입니다. 신규 설치는 경기, 부동산 사이클, 지역 개발 상황에 따라 크게 흔들리지만, 유지보수는 거의 흔들리지 않습니다. 건물이 있는 한, 엘리베이터는 멈출 수 없고, 멈추면 바로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숫자로 보면 이 구조는 더 명확해집니다. 오티스의 연 매출은 약 140억 달러 수준인데, 이 중 절반 이상이 유지보수에서 나옵니다. 더 중요한 건 수익성입니다. 신규 설치 사업은 경쟁이 치열하고 가격 압박이 강해 마진이 낮은 반면, 유지보수 사업은 상대적으로 높은 마진을 유지합니다. 즉, 오티스는 “적당히 팔고, 오래 받는” 구조를 설계한 기업입니다.


이 구조의 진짜 힘은 전환 비용에서 나옵니다. 엘리베이터는 단순한 기계가 아닙니다. 안전 규제, 건물 설계, 소프트웨어, 부품 호환성, 유지보수 이력까지 모두 엮여 있습니다. 한 번 설치된 엘리베이터의 유지보수 회사를 바꾼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번거롭고 리스크가 큽니다. 특히 고층 빌딩이나 대형 상업 시설일수록, “조금 비싸더라도 기존 업체를 쓰자”는 선택이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이 지점에서 오티스는 제조사가 아니라 **건물의 일부**가 됩니다.


이제 이 구조를 한국 기업과 비교해보면 더 흥미로워집니다. 대표적인 비교 대상은 **현대엘리베이터**입니다. 현대엘리베이터 역시 국내 시장에서 강력한 입지를 가진 기업이고, 설치 대수 기준으로 보면 상당한 규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업 구조를 보면 오티스와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전통적으로 **신규 설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구조**를 가지고 성장해 왔습니다. 한국 시장 특성상 재개발, 재건축, 신규 아파트 공급이 많았고, 이에 따라 설치 물량 중심의 성장이 가능했습니다. 문제는 이 구조가 부동산 사이클에 매우 민감하다는 점입니다. 건설 경기가 좋을 때는 빠르게 성장하지만, 주택 공급이 줄어들면 실적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오티스는 신규 설치보다 유지보수 계약을 먼저 봅니다. 신규 설치는 사실상 **미래의 유지보수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진입 비용**에 가깝습니다. 설치 단계에서 어느 정도 마진을 포기하더라도,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질 유지보수 계약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관점 차이가 두 기업의 장기 안정성을 가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차이는 글로벌 분산입니다. 오티스는 북미, 유럽, 아시아 전반에 걸쳐 설치된 엘리베이터 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유지보수 계약 역시 지역별로 분산돼 있습니다. 특정 국가의 부동산 경기나 규제 변화가 전체 실적을 흔들기 어렵습니다. 반면 현대엘리베이터는 상대적으로 국내 비중이 높아, 한국 부동산 정책이나 경기 변화의 영향을 더 직접적으로 받습니다.


이 차이는 투자자 관점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오티스는 고성장 기업으로 평가받지 않지만, 대신 **현금흐름의 예측 가능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습니다. 분기 실적이 예상과 크게 어긋나는 경우가 드물고, 장기적으로 보면 배당과 자사주 매입 같은 주주환원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기업은 시장이 뜨거울 때는 주목받지 못하지만, 시장이 식을 때마다 다시 평가받습니다.


엘리베이터 산업의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기술 혁신이 이 구조를 크게 흔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AI, 로봇, 자동화 같은 키워드가 넘쳐나지만, 엘리베이터의 본질은 크게 바뀌지 않습니다. 안전 규제는 오히려 더 강화되고 있고, 이는 기존 업체에게 유리한 진입 장벽으로 작용합니다. 신생 기업이 혁신적인 기술로 시장을 뒤집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결국 오티스가 강한 이유는 기술이 아니라 **시간을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한 번 설치된 엘리베이터는 수십 년 동안 움직이고, 그 시간 동안 유지보수 계약은 계속 이어집니다. 오티스는 이 시간을 자산으로 만들었고, 그 자산을 전 세계에 분산시켜 놓았습니다. 이 구조를 이해하면, 오티스의 사업은 경기 민감 제조업이 아니라 **도시 인프라 기반의 반복 수익 모델**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국 기업과 비교했을 때, 현대엘리베이터는 여전히 성장 여지가 있는 기업입니다. 다만 그 성장은 신규 설치 사이클에 더 많이 의존해 있고, 유지보수 중심 구조로 얼마나 빠르게 전환하느냐가 장기적인 관건이 됩니다. 오티스는 이미 그 전환을 끝낸 기업이고, 현대엘리베이터는 아직 그 과정에 있는 기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엘리베이터는 한 번 타고 끝나는 제품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산업에서 진짜 돈은 설치 순간이 아니라, 그 이후의 시간에서 나옵니다. 오티스는 그 시간을 가장 먼저, 가장 넓게 확보한 기업입니다. 그래서 화려하지 않아도, 늘 자리를 지킵니다. 이런 기업은 주가 차트보다, 건물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먼저 떠올릴 때 비로소 제대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