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거의 자동반사처럼 이렇게 생각합니다. 기업은 성장해야 하고, 성장이 멈추면 문제이며, 확장을 포기하면 경쟁에서 밀린 것이라고요. 하지만 실제 기업의 생존 기록을 시간 단위로 놓고 보면, 이 공식은 자주 깨집니다. 오히려 가장 오래 살아남은 기업들 중 상당수는 어느 순간 “더 커지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 이후에 훨씬 안정적인 궤도로 들어갑니다. 이들은 시장을 이기겠다고 선언하지도 않고,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지도 않지만, 대신 자기 사업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를 정확히 계산하고 그 안에서 움직입니다.


해외 사례부터 보겠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가 Costco입니다. 코스트코는 유통 기업이지만, 전통적인 유통 기업이 선택하는 성장 전략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점포 수를 무작정 늘리지 않고, 마진을 극단적으로 제한하며, 상품 구색도 의도적으로 적게 유지합니다. 특히 인상적인 건, 매출이나 이익을 최대화하는 대신 ‘회원 신뢰’를 훼손할 수 있는 모든 선택을 피한다는 점입니다. 가격 인상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버티고, 단기 실적을 끌어올릴 수 있는 유혹을 여러 번 거절했습니다. 그 결과 코스트코는 폭발적인 성장주는 아니지만, 경기 사이클이 바뀔 때마다 “이상하게 흔들리지 않는 기업”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건 성장을 못 해서가 아니라, 성장의 속도를 스스로 제한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입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례는 Nintendo입니다. 닌텐도는 게임 산업에서 기술 경쟁, 그래픽 경쟁, 플랫폼 확장 경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은 거의 유일한 대형 기업입니다.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엑스박스가 성능과 스펙을 중심으로 확장을 거듭할 때, 닌텐도는 오히려 반대로 갔습니다. 하드웨어 성능을 일부러 낮추고, 개발 비용을 통제하며, 자사 IP가 소화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사업을 전개했습니다. 시장에서는 여러 차례 “성장이 끝났다”, “시대에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닌텐도는 한 번도 치명적인 재무 위기를 겪지 않았고, 실패한 세대 이후에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체력을 유지했습니다. 이 역시 성장 포기가 아니라, 리스크 관리에 가까운 선택이었습니다.


미국의 B2B 산업 쪽으로 가면 이런 기업은 더 많아집니다. 예를 들어 Fastenal 같은 산업용 소모품 기업은 공격적인 M&A나 글로벌 확장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대신 기존 고객과의 거래 관계를 깊게 만들고, 물류·재고·납품 프로세스를 조금씩 개선하는 데에만 집중합니다. 이런 기업들은 분기 성장률로 보면 매력이 없어 보이지만, 10년 단위로 보면 현금흐름이 거의 끊기지 않습니다. 시장의 관심이 줄어드는 대신, 사업의 변동성도 함께 줄어드는 구조입니다.


이제 국내 사례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한국 시장에서는 성장 신화를 강하게 요구하는 분위기 때문에 이런 기업들이 더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오뚜기입니다. 오뚜기는 식품 대기업이지만, 경쟁사들처럼 공격적인 해외 확장이나 대규모 M&A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제품 포트폴리오도 비교적 단순하고, 새로운 트렌드를 따라가기보다는 기존 제품의 품질과 가격 안정성을 유지하는 쪽을 택해왔습니다. 덕분에 성장 스토리는 약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원가 급등, 경기 침체, 소비 위축 국면에서도 회사가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 기업의 전략은 “더 많이 팔겠다”가 아니라 “절대 무너지지 않겠다”에 가깝습니다.


비슷한 결의 기업으로 농심도 언급할 수 있습니다. 농심 역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 있지만, 무리한 확장을 피하고 브랜드 관리와 수익성 유지에 더 무게를 둡니다. 단기적으로는 성장주로 보이기 어렵지만, 가격 결정권과 유통 지위를 쉽게 잃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 왔습니다. 이런 기업들은 투자자 입장에서 화려하지 않지만, 위기 국면에서 포트폴리오의 바닥을 받쳐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 기업들의 공통점은 명확합니다. 이들은 “시장이 원하는 성장”보다 “사업이 감당할 수 있는 성장”을 기준으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내부 의사결정이 느려 보이고, 외부에서는 답답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신 조직은 무리하지 않고, 비용 구조는 단순하며, 현금흐름은 예측 가능합니다. 이건 야망이 없어서가 아니라, 장기 생존을 최우선 목표로 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입니다.


투자자 관점에서 이 지점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종종 성장률이 둔화되면 기업이 실패했다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시점이 바로 기업이 ‘모드 전환’을 한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확장 모드에서 유지 모드로, 스토리 모드에서 운영 모드로 넘어가는 시점입니다. 문제는 시장이 이 변화를 거의 보상해주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기업들은 늘 저평가와 무관심 사이 어딘가에 머무릅니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경기 사이클이 반복될수록, 이런 기업들의 선택은 점점 더 의미를 가집니다. 성장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기업은 뉴스가 되지 않지만,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투자자들은 뒤늦게 깨닫습니다. “아, 이런 기업이 있었지”라고요.


결국 이 주제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모든 기업이 성장해야 할 이유는 없고, 모든 투자자가 성장만을 사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어떤 기업은 더 커지는 대신, 더 오래 가는 길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조용하지만, 매우 계산적인 전략입니다. 이런 기업들을 알아보는 눈은 화려한 숫자를 읽는 능력보다, 시간을 해석하는 능력에 가깝습니다. 이 글을 통해 그 시선을 한 번쯤 가져볼 수 있다면, 오늘 주제로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