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장을 보면 이상한 장면이 반복됩니다. 실적이 나쁘지 않은데 주가는 잘 오르지 않고, 뉴스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데도 조용히 시가총액을 키워가는 기업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화려한 스토리를 가진 기업은 작은 실망에도 크게 흔들립니다. 이 차이는 단기 숫자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구조에서 나옵니다. 특히 한 번 고객이 들어오면, 떠나는 순간 비용이 아니라 리스크가 발생하는 구조를 가진 기업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평가 기준 자체가 달라집니다.


이런 기업들을 이야기할 때 흔히 락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실제 현상을 정확히 설명하기에는 다소 부족합니다. 락인은 보통 충성도나 습관처럼 가볍게 들리지만, 지금 시장에서 중요한 락인은 훨씬 무겁습니다. 선택의 문제라기보다 책임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바꾸는 순간 누군가는 설명해야 하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며, 누군가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합니다. 그래서 조직은 쉽게 움직이지 못합니다. 이 지점에서 기업의 힘은 조용히 축적됩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영역에서 이런 구조가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 사례가 ServiceNow입니다. 이 회사는 단순히 기능이 좋은 툴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기업 내부에서 일이 시작되고 승인되고 처리되고 기록되는 전 과정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 놓습니다. IT 장애가 발생했을 때 어디서 접수되고 누가 대응하며 어떤 절차로 마무리되는지, 인사 관련 요청이 들어왔을 때 어떤 경로로 승인되고 기록되는지, 보안 사고가 났을 때 어떤 팀이 어떤 순서로 움직이는지까지 전부 시스템 위에 얹혀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다른 솔루션으로 옮긴다는 것은 기능 비교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업무 관성을 바꾸는 일입니다. 그래서 도입은 비교적 신중하게 진행되지만, 일단 안착한 이후에는 해지가 극도로 어려워집니다. 가격 인상은 불만을 만들 수 있어도 이탈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시장이 이 회사를 단순한 소프트웨어 공급자가 아니라 기업 운영 인프라로 보기 시작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보안 영역에서는 CrowdStrike가 비슷한 위치에 서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안 솔루션을 기능 중심으로 생각하지만 실제 기업에서 보안은 경험의 누적입니다. 어떤 유형의 침입이 있었는지, 그때 조직은 어떻게 반응했는지, 무엇이 효과적이었고 무엇이 실패였는지가 시간과 함께 쌓입니다. 이 데이터는 단순한 로그가 아니라 조직의 면역 체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보안 솔루션을 바꾼다는 것은 단순히 다른 제품을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쌓아온 방어 경험을 초기화하는 선택이 됩니다. 이 선택을 누가 감히 쉽게 결정할 수 있을까요. 실제 현장에서는 비용보다 책임이 먼저 떠오릅니다. 이 구조가 만들어지면 가격은 더 이상 핵심 변수가 아닙니다. 안정성과 연속성이 최우선 가치가 됩니다.


클라우드 운영 환경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Datadog은 서버나 애플리케이션을 관리하는 도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운영팀의 눈 역할을 합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무엇이 먼저 이상 신호를 보냈는지, 어느 지점에서 병목이 생겼는지, 트래픽이 어떻게 흐르다 멈췄는지를 한 화면에서 확인하는 순간, 조직은 이 시야에 익숙해집니다. 이 시야를 잃는다는 것은 곧 어둠 속에서 운영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툴로 옮길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생기는 공백은 실제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Datadog은 있으면 편한 도구가 아니라 없으면 위험한 도구로 인식됩니다. 이 인식의 전환이 바로 락인의 본질입니다.


데이터 영역에서는 Snowflake가 같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회사를 데이터 저장 서비스로 오해하지만 실제 역할은 전혀 다릅니다. 기업 내부의 다양한 데이터가 이 플랫폼을 통해 연결되고 외부 파트너와의 협업, 분석, AI 활용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이 구조가 완성되면 데이터는 더 이상 개별 시스템의 자산이 아니라 플랫폼 전체의 맥락 속에서 움직이게 됩니다. 이 상태에서 플랫폼을 바꾸겠다는 것은 단순 이전 작업이 아니라 데이터 활용 전략 자체를 다시 설계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비용 부담이 커져도 기업들은 사용량을 줄이는 선택을 할 뿐, 플랫폼 자체를 포기하는 선택은 최대한 미룹니다.


이 기업들의 공통점은 매우 분명합니다. 고객은 이 서비스를 좋아해서 쓰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만족도는 중요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이 서비스를 끊는 순간 조직 내부에서 설명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누가 결정했는지, 왜 바꿨는지,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질 것인지가 동시에 떠오릅니다. 이 부담은 생각보다 큽니다. 그래서 기업은 웬만하면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려 합니다. 이 선택이 반복되면서 기업의 수익 구조는 점점 더 안정됩니다.


이 지점에서 시장의 시선도 달라집니다. 과거에는 성장률이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이었지만, 이제는 성장의 질이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고객 유지율이 얼마나 안정적인지, 고객당 매출이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증가하는지, 그리고 이탈이 발생할 경우 그 이유가 비용 때문인지 구조적 변화 때문인지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이런 기업들은 분기 실적이 조금 흔들려도 시장의 신뢰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숫자보다 시스템이 먼저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투자 관점에서 보면 질문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이 기업의 고객은 가격이 올라 불만이 생겼을 때 실제로 다른 선택지를 실행할 수 있을까요. 단순히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말이 아니라, 조직 내부에서 회의를 하고 예산을 다시 짜고 책임 소재를 정리한 뒤 실제로 옮길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면, 그 기업은 이미 시간을 편으로 만든 상태에 들어간 것입니다. 주가는 단기적으로 흔들릴 수 있지만, 사업의 방향은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요즘처럼 시장 변동성이 큰 시기에는 이런 기업들이 더 빛을 발합니다. 경기 둔화, 금리 변화, 투자 심리 위축 같은 외부 변수에도 불구하고 고객의 행동이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매출 성장률은 둔화될 수 있지만, 붕괴되지 않습니다. 이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크게 벌어집니다. 시장은 결국 이 차이를 인식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기업들이 항상 주목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화려한 뉴스도 적고, 이해하기 쉬운 스토리도 아닙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투자자들은 뒤늦게 깨닫습니다. 왜 그 기업의 주가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는지, 왜 위기 때마다 다시 회복했는지를 말입니다. 그때서야 숫자가 아니라 구조를 봤어야 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결국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의 속도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같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느냐입니다. 한 번 선택하면 쉽게 바꿀 수 없는 서비스를 가진 기업들은 이 질문에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조용히 시스템을 쌓고, 고객의 선택을 습관이 아니라 책임으로 바꿔 놓습니다. 그리고 그 구조 위에서 시간은 자연스럽게 이들의 편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