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이야기를 꺼내면 대부분의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립니다. 성장 스토리가 자극적이지도 않고, 기술 혁신처럼 한눈에 이해되는 그림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장이 한 번씩 크게 흔들릴 때마다, 그리고 세상이 점점 더 불확실해질수록 조용히 존재감을 키워온 산업이 바로 보험입니다. 그리고 그 보험 산업의 가장 정중앙에 있는 기업이 바로 Chubb입니다.


처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느 나라 기업인가”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처브는 법적으로는 스위스 기업입니다. 본사는 스위스 취리히에 있고, 지주회사 구조 역시 스위스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 회사의 사업적 중심과 DNA는 여전히 미국에 가깝습니다. 2016년 ACE Limited가 미국의 Chubb Corporation을 인수하면서 현재의 구조가 만들어졌고, 이후 회사 이름을 ‘Chubb’로 통합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처브는 미국식 언더라이팅 문화 위에, 스위스식 보수적 지배구조를 얹은 글로벌 보험사라고 보는 편이 가장 정확합니다.


매출 규모만 봐도 이 회사의 위치는 분명합니다. 최근 기준으로 처브의 연 매출은 약 500억 달러 안팎입니다. 전 세계 손해보험(Property & Casualty) 분야에서 최상위권에 속하는 규모이며, 단순히 덩치만 큰 보험사가 아니라 수익성까지 동시에 관리하는 회사입니다. 보험사의 핵심 지표인 합산비율을 보면, 처브는 업계 평균보다 꾸준히 낮은 수준을 유지해 왔습니다. 이는 보험료를 무리하게 늘리는 대신, 수익이 나는 계약만 선별적으로 가져간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보험 산업의 본질이 다시 드러납니다. 보험은 상품을 파는 산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위험을 가격화하는 산업’입니다. 누가 어떤 위험을 얼마에 받아줄 것인가, 그리고 그 위험을 얼마나 정교하게 분산시킬 수 있는가가 모든 수익의 출발점입니다. 기술은 이 과정을 돕는 도구일 뿐, 핵심 경쟁력은 여전히 언더라이팅, 즉 위험을 고르는 능력에 있습니다. 처브는 이 언더라이팅에서 가장 보수적이면서도 가장 정교한 전략을 고수해 온 기업입니다.


처브의 사업 구조를 보면 왜 그런 평가가 나오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회사의 중심은 개인 보험이 아니라 기업 보험과 특수 리스크 보험입니다. 글로벌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재산·책임 보험, 임원 배상 책임(D&O), 사이버 보험, 특수 산업 보험이 핵심입니다. 사고가 나면 손실 규모가 큰 영역이지만, 대신 가격 결정력이 높고 진입 장벽도 높습니다. 단순히 가격을 낮춘다고 들어갈 수 있는 시장이 아니라, 오랜 데이터와 사고 처리 경험, 그리고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회사”라는 신뢰가 필요합니다.


개인 보험 역시 처브는 대중 시장보다는 고자산가(HNW) 중심으로 접근합니다. 고급 주택, 고가 자동차, 예술품 보험처럼 가격 경쟁보다 리스크 평가 능력이 중요한 영역입니다. 이 구조 덕분에 처브는 경기 변동에 따른 실적 출렁임이 상대적으로 적고, 보험료 인상 국면에서는 오히려 수익성이 개선되는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지금 같은 환경은 처브에게 특히 유리합니다. 첫째는 금리입니다. 보험사는 고객으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즉시 사용하지 않고 일정 기간 운용합니다. 금리가 높아질수록 이 운용 수익은 자연스럽게 개선됩니다. 둘째는 리스크의 구조적 확대입니다.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지정학적 갈등, 사이버 공격, 공급망 붕괴 등 기업들이 감당해야 할 위험의 종류와 빈도는 과거보다 훨씬 복잡해졌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기업들이 ‘싼 보험’보다 ‘확실한 보험’을 선택하게 되고, 보험사의 가격 결정력은 강화됩니다.


셋째는 규제와 자본 장벽입니다. 보험 산업은 아무 기업이나 진입할 수 없는 대표적인 규제 산업입니다. 지급여력 기준, 감독 규제, 자본 요건 등으로 인해 기존 플레이어의 지위가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처브는 이미 이 장벽을 넘어선 상태에서 글로벌 분산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둔 기업입니다. 북미, 유럽, 아시아, 중남미까지 고르게 분산된 구조 덕분에 특정 국가나 특정 재해가 회사 전체를 흔들 가능성도 낮습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처브는 늘 늦게 주목받습니다. 성장 스토리가 화려하지 않고, 기술 기업처럼 미래를 과장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장이 한 번씩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즉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숫자로 체감되기 시작할 때 이런 기업의 가치가 다시 보이기 시작합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중요해지는 시점입니다.


앞서 다뤘던 결제 인프라, 헬스케어 시스템, 교육 평가 기업들과 처브는 같은 결을 공유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서비스는 계속 바뀌지만, 위험을 관리하고, 규제를 통과하고, 시스템을 운영하는 기업은 쉽게 대체되지 않습니다. 보험은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시스템 산업입니다. 그리고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이 오래된 산업의 가치가 다시 올라옵니다.


처브는 “경기가 좋아질 때 폭발하는 기업”은 아닙니다. 대신 “환경이 나빠질수록 존재감이 커지는 기업”에 가깝습니다. 리스크는 줄어들 가능성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더 크고, 기업들은 점점 더 많은 위험을 외주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처브는 가장 보험다운 방식으로 돈을 버는 회사입니다.


결국 이 기업을 단기 테마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처브는 세상의 구조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습니다.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시대, 결국 돈을 버는 쪽은 위험을 가장 잘 이해하고 가격을 매길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처브는 그 시스템을 가장 오래, 가장 정교하게 다뤄온 기업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