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삼양식품을 다시 보게 되는 이유는 단순히 주가 때문이 아닙니다. 실적이 잘 나와서도 아니고, 불닭볶음면이 여전히 잘 팔려서도 아닙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이 회사가 어느 순간부터 ‘라면 회사’라는 분류로 설명되지 않기 시작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시장은 여전히 삼양식품을 식품주, 그것도 라면주로 묶어두지만, 실제로 회사가 쌓아온 구조를 보면 그 틀 안에 가두기에는 이미 많이 벗어나 있습니다.
삼양식품의 전환점은 명확합니다. 불닭볶음면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불닭이 히트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건 불닭이 소비되는 방식입니다. 한국에서 히트한 뒤 해외로 나간 것이 아니라, 해외에서 콘텐츠가 되고 놀이가 된 뒤 브랜드로 굳어졌다는 점은 이 제품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유튜브와 틱톡에서 시작된 매운맛 챌린지는 광고가 아니라 자발적인 참여였고, 이 과정에서 불닭은 ‘먹어보는 음식’이 아니라 ‘도전하는 경험’이 됐습니다.
이 구조는 굉장히 강력합니다. 소비자는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 불닭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매운맛을 견디는 과정, 친구들의 반응, 영상으로 남기는 기록까지 포함한 하나의 이벤트를 소비합니다. 이런 소비는 가격에 둔감하고, 쉽게 다른 제품으로 이동하지 않습니다. 라면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가격 결정력이 여기서 만들어집니다.
실제로 불닭볶음면은 해외에서 결코 저가 제품이 아닙니다. 오히려 프리미엄 라면 진열대에 올라가 있고, 국가에 따라서는 한국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됩니다. 그럼에도 판매량이 유지되고 확장되고 있다는 것은, 이 브랜드가 이미 가격 경쟁이 아니라 선호 경쟁의 영역으로 이동했다는 뜻입니다. 이는 제조업 관점이 아니라 브랜드 관점에서 해석해야 하는 변화입니다.
이 지점에서 삼양식품은 더 이상 ‘라면을 많이 파는 회사’가 아닙니다. 하나의 글로벌 브랜드 IP를 운영하는 회사에 가깝습니다. 이 차이는 숫자보다 구조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해외 매출 비중이 절반을 넘어서고 있고,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습니다. 미국, 중국, 동남아, 중동 등으로 고르게 분산된 매출 구조는 단순 수출 기업과는 전혀 다른 안정성을 만듭니다. 환율이나 특정 국가의 규제 이슈가 생겨도 전체 실적이 한 번에 흔들리지 않는 구조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불닭 IP의 확장 방식입니다. 삼양식품은 불닭을 하나의 제품으로 고정하지 않았습니다. 소스, 컵라면, 스낵, 지역 한정 맛 등으로 활용 범위를 넓혀왔습니다. 이는 신제품을 많이 낸다는 의미가 아니라, 같은 세계관을 다양한 접점에서 소비하게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글로벌 소비재 기업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구축해온 IP 전략을, 삼양식품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구현해낸 셈입니다.
이 과정에서 마케팅 비용 구조 역시 달라집니다. 전통적인 식품 회사들은 광고에 막대한 비용을 씁니다. 브랜드 인지도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인 투입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닭은 다릅니다. 가장 강력한 마케팅은 여전히 소비자 콘텐츠입니다. 누군가가 올린 영상 하나가 수천만 명에게 노출되고, 그 자체로 광고 역할을 합니다. 이 구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해집니다. 브랜드가 강해질수록 광고비를 더 쓰지 않아도 되는 선순환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투자자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결국 이것입니다. 이 성장이 일시적인 유행인가, 아니면 반복 가능한 구조인가. 불닭볶음면이 처음 등장한 지는 이미 꽤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만약 유행이었다면 이미 사라졌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입니다. 국가 수는 늘어나고 있고, 소비 방식은 더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유행의 궤적이 아니라, 문화로 정착한 브랜드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물론 리스크는 존재합니다. 불닭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의존도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도 합니다. 불닭이라는 IP가 아직도 완전히 소진되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활용 가능성이 계속 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식품을 넘어 소스, 외식, 협업, 라이프스타일 영역까지 확장될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한국 기업 중 이런 단계에 올라선 소비재 기업이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은 OEM, 저가 수출, 특정 거래처 의존 구조에 머물러 있습니다. 반면 삼양식품은 자기 이름으로, 자기 가격으로, 자기 세계관을 유지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소비되고 있습니다. 이 점이 삼양식품을 다시 보게 만드는 핵심 이유입니다.
지금 이 회사를 여전히 “불닭 잘 만든 라면 회사”로만 본다면, 이미 중요한 절반은 놓치고 있는 셈입니다. 삼양식품은 라면을 파는 회사에서 글로벌 브랜드를 운영하는 회사로 이동 중이며, 그 전환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늘 완벽한 예측이 아니라, 구조가 좋은 방향에 서 있는지를 판단하는 일이라면, 지금의 삼양식품은 적어도 구조적으로는 매우 흥미로운 위치에 서 있습니다.
이 회사는 이미 끝난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직 전개 중인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시장은 종종 이런 이야기를 가장 늦게 알아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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