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adoLibre는 흔히 ‘남미의 아마존’이라고 불립니다. 하지만 이 표현은 절반만 맞고, 절반은 오해에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메르카도리브레는 아마존처럼 물건을 파는 회사라기보다는, 남미에서 민간이 만들어낸 금융 인프라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이 기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커머스 기업이라는 틀부터 내려놓고 봐야 합니다.


이 회사가 태어난 환경부터가 다릅니다. 남미는 오랫동안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던 시장이었습니다. 은행 계좌가 없는 인구 비율이 높고, 신용카드 보급률은 낮으며, 물류 인프라는 국가마다 크게 차이가 났습니다.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고 싶어도 결제가 안 되고, 결제가 되더라도 배송이 불안정하며, 판매자는 돈을 받아도 정산이 늦는 환경이었습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해결된 문제들이 남미에서는 여전히 현실적인 장벽으로 남아 있던 시기였습니다.


메르카도리브레는 이 문제를 “기술로 한 번에 해결하자”는 접근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나씩, 아주 현실적인 방식으로 풀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온라인 중개 플랫폼이었습니다. 개인과 소상공인이 물건을 올리고 거래할 수 있는 장터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거래가 늘어나자 바로 문제가 터졌습니다. 돈을 주고받기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여기서 이 회사는 결제를 외주로 맡기지 않고, 직접 만들기로 결정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메르카도파고(Mercado Pago)입니다.


이 선택이 메르카도리브레의 운명을 갈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메르카도파고는 단순 결제 수단이 아니었습니다. 은행 계좌가 없어도 쓸 수 있는 전자지갑이었고, 소상공인이 카드 단말기를 구하지 않아도 QR 결제를 받을 수 있는 수단이었으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동시에 연결하는 도구였습니다. 즉, 이커머스를 위한 결제 시스템이 아니라, 결제를 위한 금융 생태계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결제가 안정되자 거래량은 자연스럽게 늘어났습니다. 거래 데이터가 쌓이자, 메르카도리브레는 또 하나의 선택을 합니다. 대출입니다. 기존 금융권이 신용 평가를 하지 못하던 개인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플랫폼 내 거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소액 대출을 시작했습니다. 이때 중요한 점은 담보도, 복잡한 서류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이 회사는 “이 사람이 얼마나 성실하게 거래해왔는가”를 기준으로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은행이 수십 년 동안 하지 못했던 영역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메르카도리브레는 이커머스 기업에서 금융 기업으로 자연스럽게 변모합니다. 소비자는 쇼핑을 하다가 지갑을 만들고, 지갑을 쓰다가 대출을 경험하고, 대출을 갚으며 신용을 쌓게 됩니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앱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금융 서비스를 쓰고 있다’는 인식조차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냥 편리해서 쓰다 보니 금융 생태계 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구조입니다.


물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남미는 국가 간, 도시 간 물류 편차가 매우 큰 지역입니다. 이커머스가 커지기 위해서는 물류 안정성이 필수였지만, 기존 물류 업체에만 의존해서는 한계가 명확했습니다. 메르카도리브레는 이 문제도 직접 해결합니다. 자체 풀필먼트 센터를 구축하고, 판매자가 물건을 미리 맡겨두면 배송을 책임지는 구조를 만듭니다. 단순히 배송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거래 전체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메르카도리브레의 구조는 명확해집니다. 상품은 미끼에 가깝고, 핵심은 거래입니다. 거래가 있어야 결제가 생기고, 결제가 있어야 금융 데이터가 쌓이며, 데이터가 있어야 대출과 보험, 추가 금융 서비스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이 구조는 매우 강력하지만, 동시에 진입 장벽도 높습니다. 어느 하나만 흉내 내서는 절대 따라올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투자 관점에서 이 기업이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단기 실적만 보면 변동성이 큽니다. 물류 투자, 금융 리스크, 환율 문제 등으로 인해 분기별 숫자는 출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조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남미 전체의 디지털 결제 비중은 여전히 낮은 편이고, 현금 거래 비율도 높습니다. 즉, 시장 자체가 아직 성장 중입니다. 메르카도리브레는 이미 그 성장의 중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이 회사의 성장이 경쟁자를 쫓아내는 방식이 아니라 시장을 키우는 방식이라는 점입니다. 아마존처럼 기존 시장에서 점유율을 빼앗는 구조가 아니라, 아예 없던 거래를 만들어내고, 없던 금융 사용자를 끌어들이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단기 수익성보다는 장기 확장성이 더 중요하게 작동합니다. 이 점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이 기업을 평가하는 기준이 계속 높게 유지되는 이유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는 규제입니다. 금융은 규제가 강한 산업이지만, 남미에서는 오히려 이 기업이 정부보다 빠르게 금융 접근성을 개선해왔습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메르카도파고가 사실상 국민 결제 인프라처럼 사용됩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규제 리스크로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정부와의 협력 관계로 전환될 가능성도 큽니다. 이미 여러 국가에서 제도권 금융과 플랫폼 금융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습니다.


이 기업을 보며 생각해볼 질문은 단순합니다. 만약 한국이나 미국처럼 금융 인프라가 이미 잘 갖춰진 시장이었다면, 메르카도리브레 같은 기업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아마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회사는 ‘불편함이 너무 컸던 시장’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을 가장 현실적인 방식으로 해결해왔습니다.


결국 메르카도리브레는 이커머스 기업이 아닙니다. 금융 회사도 아닙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거래를 중심으로 한 생활 인프라 기업에 가깝습니다. 사람들이 사고, 팔고, 돈을 주고받고, 신용을 쌓는 모든 과정을 하나의 생태계 안에 묶어두는 회사입니다. 그래서 이 기업을 단순히 실적이나 성장률로만 평가하면 본질을 놓치기 쉽습니다.


이 회사가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지는 단기 지표보다, 남미 전체가 얼마나 더 디지털화될 수 있는지를 보는 게 더 중요합니다. 현금이 사라지고, 개인이 금융 시스템 안으로 들어오며, 소상공인이 데이터 기반으로 신용을 평가받는 구조가 확산될수록, 메르카도리브레의 역할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기업은 우리에게 하나의 힌트를 줍니다. 위대한 기업은 항상 가장 앞선 기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장 불편한 현실을 가장 오래 견뎌본 곳에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을 해결하는 방식이 단순할수록, 그 구조는 오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