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럭셔리 산업을 보면 흥미로운 장면이 하나 반복됩니다. 경기 둔화 이야기가 나오고, 소비가 꺾인다는 뉴스가 쏟아지는데도 어떤 기업들은 거의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격을 올리고, 매출과 이익을 동시에 키웁니다. 이 지점에서 “명품은 불황에 강하다”는 말이 다시 등장하지만, 이 문장은 사실 절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모든 럭셔리가 강한 게 아니라, 구조가 다른 일부 기업만이 강합니다. 그 중심에 있는 회사가 바로 Hermès입니다.
에르메스를 단순히 가방 잘 파는 명품 브랜드로 보면 이 회사의 본질을 놓치게 됩니다. 에르메스는 패션 회사라기보다 공급을 설계하는 유통 시스템 기업에 가깝습니다. 대부분의 유통 기업은 수요를 늘리기 위해 광고를 하고, 매장을 늘리고, 할인이라는 수단을 씁니다. 하지만 에르메스는 정반대의 길을 택합니다. 수요가 넘쳐나도 공급을 늘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안 팝니다”라는 선택을 반복합니다.
버킨이나 켈리 같은 핵심 제품은 사고 싶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구매 이력, 관계, 시간이라는 요소가 누적되어야 접근이 가능합니다. 이 구조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불편하지만, 브랜드 입장에서는 엄청난 힘을 만들어냅니다. 공급이 제한되니 재고가 쌓이지 않고, 재고가 없으니 할인도 필요 없습니다. 할인하지 않으니 가격 인상에 대한 저항도 낮아집니다. 이 선순환 구조 덕분에 에르메스는 원가 상승, 환율 변동, 경기 둔화 같은 외부 변수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 구조는 재무제표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에르메스는 럭셔리 업계에서도 영업이익률이 가장 높은 축에 속합니다. 매출이 늘 때 비용이 같이 불어나지 않기 때문에, 이익이 깔끔하게 남습니다. 대규모 마케팅 비용이나 공격적인 매장 확장이 없고, 연예인 모델에 의존하지도 않습니다. 장인 생산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가격 결정권을 완전히 쥐고 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에르메스의 실적은 화려하진 않지만, 꾸준히 위로 쌓입니다.
이제 자연스럽게 비교 대상이 등장합니다. 바로 LVMH입니다. LVMH는 에르메스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럭셔리 시장을 지배합니다. 에르메스가 ‘선별과 통제’의 기업이라면, LVMH는 ‘확장과 포트폴리오’의 기업입니다. 패션, 가방, 주얼리, 시계, 화장품, 주류까지 수십 개 브랜드를 거느린 거대한 럭셔리 유통 그룹입니다.
LVMH의 강점은 분명합니다. 특정 브랜드가 부진해도 다른 브랜드가 이를 상쇄할 수 있고, 글로벌 유통망과 마케팅 파워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트렌드를 빠르게 흡수하고, 소비자층을 넓히는 데에는 LVMH만 한 기업이 없습니다. 반면 구조적으로 에르메스와는 다른 리스크를 안고 있습니다. 브랜드 수가 많다는 것은 곧 관리해야 할 비용과 변동성도 크다는 뜻입니다. 트렌드 변화, 지역별 소비 위축, 환율, 관광 수요 감소 같은 변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차이가 주가와 실적 흐름에서 그대로 나타납니다. 호황기에는 LVMH가 더 빠르게 성장합니다. 관광객이 늘고, 소비가 확장될 때 포트폴리오 효과가 극대화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시장은 에르메스 쪽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성장 속도는 느릴 수 있어도, 이익의 질과 안정성에서는 에르메스가 훨씬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기 국면마다 “에르메스 프리미엄”이라는 말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이제 시선을 조금 더 넓혀서 럭셔리 산업 전체를 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명품 소비는 경기에 따라 크게 흔들린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럭셔리 시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상위 고객층은 경기와 거의 무관하게 소비를 지속하고, 중간 가격대의 ‘어중간한 명품’이 가장 큰 압박을 받습니다. 이 때문에 요즘 럭셔리 업계에서는 “진짜 명품은 더 강해지고, 나머지는 힘들어진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 흐름에서 살아남는 기업들의 공통점은 명확합니다. 첫째, 가격 결정권을 가지고 있을 것. 둘째, 할인 없이도 판매가 가능한 구조일 것. 셋째, 브랜드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충성도를 만들고 있을 것입니다. 에르메스는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합니다. LVMH는 포트폴리오 분산이라는 방식으로 이를 보완합니다. 반면 중간 지대에 있는 브랜드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투자자 관점에서 보면, 럭셔리 산업은 단순한 소비 섹터가 아닙니다. 오히려 현금흐름이 안정적인 유통 비즈니스에 가깝습니다. 특히 에르메스 같은 기업은 재고 리스크가 거의 없고, 설비 투자 부담도 크지 않으며, 브랜드 가치가 장기적으로 누적됩니다. 이런 기업은 단기 성장 스토리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르메스를 보면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이 회사는 다음 분기 실적이 중요한가, 아니면 다음 10년의 구조가 중요한가.” 럭셔리 산업에서 진짜 강자는 늘 후자에 속해 있었습니다. 유행을 따라간 기업은 사라졌고, 시스템을 만든 기업만이 남았습니다.
지금 럭셔리 시장은 다시 한 번 선택의 구간에 서 있습니다. 소비는 둔화되고 있지만, 진짜 명품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더 선명해지고 있습니다. 이 환경에서 에르메스는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고, LVMH는 규모와 포트폴리오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 대비 자체가 이미 하나의 투자 인사이트입니다.
명품을 사는 이야기가 아니라, 명품을 파는 구조를 들여다보는 것. 그 관점에서 보면 럭셔리 산업은 생각보다 훨씬 숫자와 논리가 분명한 세계입니다. 그리고 그 세계의 최상단에는 여전히, 조용하지만 단단한 기업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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