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라는 기업은 주식시장에서 늘 애매한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IT 기업이라고 하기에는 기술 이야기가 부족해 보이고, 금융 기업이라고 하기에는 은행처럼 돈을 빌려주지도 않습니다. 실물 산업과도 거리가 있고, 그렇다고 소비재 기업처럼 브랜드 서사가 강하게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이 때문에 비자는 늘 “좋은 회사이긴 한데, 정확히 뭘 하는 회사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평가를 받곤 합니다. 하지만 이 애매함이야말로 비자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입니다.


비자는 돈을 빌려주지 않습니다. 대출을 하지 않고, 신용 리스크를 직접 떠안지도 않습니다. 연체율이 오르든 말든, 경기 침체로 소비자가 힘들어지든 말든, 비자의 손익 구조는 은행과 전혀 다르게 움직입니다. 비자는 사람들이 결제를 할 때마다 수수료를 받는 회사입니다. 누가 무엇을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제가 발생했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이 구조를 이해하면 비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은행은 경기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습니다. 소비가 줄면 대출이 줄고, 연체가 늘면 손실이 커집니다. 반면 비자는 소비의 총량이 극단적으로 무너지지 않는 한, 구조적으로 꾸준한 수익을 창출합니다. 사람들이 현금을 쓰든, 체크카드를 쓰든, 신용카드를 쓰든,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결제가 발생하는 순간 비자는 항상 그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비자의 비즈니스 모델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합니다. 전 세계 결제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그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습니다. 하지만 이 단순함을 흉내 낼 수 있는 기업은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결제 네트워크는 규모가 커질수록 강해지는 전형적인 네트워크 효과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가맹점이 많을수록 소비자는 더 많이 사용하고, 소비자가 많을수록 가맹점은 더 많이 붙습니다. 이 선순환이 수십 년 동안 반복되면서, 비자는 사실상 글로벌 결제 인프라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숫자를 보면 이 구조의 힘이 더 분명해집니다. 비자의 최근 연간 매출은 약 330억 달러 수준이고, 영업이익률은 60% 안팎에 달합니다. 제조업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IT 기업보다도 높은 수준입니다. 매출이 1달러 늘어날 때마다 그 중 상당 부분이 그대로 이익으로 남는 구조입니다. 이익을 갉아먹는 대규모 설비 투자나 재고 부담도 거의 없습니다. 서버와 보안, 네트워크 유지 비용은 들지만, 매출 규모에 비하면 극히 제한적입니다.


현금흐름은 더 인상적입니다. 비자는 매년 200억 달러 안팎의 영업활동 현금을 창출합니다. 자유현금흐름 역시 매우 안정적입니다. 이 현금은 배당과 자사주 매입으로 꾸준히 주주에게 환원되고, 동시에 새로운 결제 기술과 글로벌 확장에 재투자됩니다. 비자는 돈을 벌기 위해 돈을 더 쓰지 않아도 되는, 극히 드문 기업 중 하나입니다.


이 구조가 얼마나 강력한지는 위기 국면에서 더 잘 드러납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팬데믹, 금리 급등, 지정학적 리스크 등 수많은 충격 속에서도 비자의 결제 네트워크는 멈춘 적이 없습니다. 소비 패턴이 바뀌어도, 결제 방식이 바뀌어도, 비자는 늘 그 흐름을 흡수해 왔습니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카드에서 모바일 결제로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비자는 배제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결제 횟수는 더 늘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핀테크 기업들이 비자를 위협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 애플페이, 구글페이, 각종 간편결제 서비스는 비자를 대체하기보다는 비자의 네트워크 위에서 작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브랜드는 바뀌었지만, 결제의 뒤편에서는 여전히 비자의 레일을 달리고 있는 셈입니다. 이는 비자가 단순한 카드 회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인프라 기업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마스터카드와의 경쟁 역시 자주 언급되지만, 이 경쟁은 파괴적이라기보다는 안정적인 이중 구조에 가깝습니다. 두 기업은 전 세계 결제 시장을 사실상 양분하고 있고, 가격 경쟁을 통해 서로를 깎아먹기보다는 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워왔습니다. 현금 사용이 줄고, 디지털 결제가 늘어날수록 두 기업 모두에게 유리한 구조입니다. 이 점에서 비자는 성장주라기보다는, 현금 없는 사회로 가는 흐름에 베팅하는 구조적 기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 시장을 보더라도 이 흐름은 유효합니다. 한국은 이미 카드 사용률과 모바일 결제 비중이 매우 높은 국가입니다. 겉으로 보면 비자가 성장할 여지가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외 결제, 온라인 쇼핑, 글로벌 플랫폼 소비가 늘어날수록 비자의 역할은 오히려 더 커집니다. 국내 결제는 로컬 카드사가 담당하더라도, 국경을 넘는 순간 비자의 네트워크는 거의 필수적인 인프라가 됩니다.


투자자 관점에서 비자는 흥미로운 역설을 안고 있습니다. 기술 기업처럼 빠르게 성장하지는 않지만, 기술 변화에 의해 쉽게 밀려나지도 않습니다. 금융 기업처럼 규제의 영향을 받지만, 대출 리스크나 신용 리스크에서는 자유롭습니다. 소비가 줄어들면 성장 속도는 둔화되지만, 소비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비자의 구조는 유지됩니다. 이 균형감각이 비자를 장기 투자 대상으로 만드는 핵심입니다.


비자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제품 발표로 주가가 급등하는 일도 드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결제를 멈추지 않는 한, 비자는 계속해서 돈을 벌어들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서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비자가 ‘보이지 않는 독점’이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시장은 늘 새로운 이야기를 찾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다시 이런 기업을 돌아보게 됩니다. 조용히, 하지만 가장 확실하게 돈을 버는 구조를 가진 기업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