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글로벌 기업 이야기를 하다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탈중국’입니다. 중국 리스크, 지정학적 긴장, 미중 갈등, 공급망 재편 같은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중국 의존도를 줄이겠다고 선언했고, 생산기지 이전이나 신규 투자 축소 소식도 계속 들려옵니다. 그런데 숫자를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장면이 나옵니다. 기업들은 분명 중국 비중을 줄이고 있는데, 그렇다고 중국을 완전히 떠나지는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모순적인 움직임은 단순히 기업들의 우유부단함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글로벌 기업들이 처한 현실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장면에 가깝습니다. 중국은 더 이상 ‘성장만을 위한 시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 있는 시장’도 아닙니다. 이 두 문장이 동시에 성립하는 곳이 바로 지금의 중국입니다.


한때 중국은 거의 모든 글로벌 기업에게 가장 중요한 성장 엔진이었습니다. 인구 규모, 빠른 도시화, 중산층 확대, 소비력 증가까지 모든 조건이 완벽해 보였습니다. 애플은 아이폰 판매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서 만들어냈고,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중국을 북미 다음의 핵심 시장으로 키웠습니다. 스타벅스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매장을 중국에 열었고, 테슬라는 상하이에 초대형 공장을 지으며 중국을 글로벌 전략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그때의 중국과 다릅니다. 성장률은 둔화됐고, 소비 심리는 예전 같지 않습니다.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 청년 실업 문제, 규제 강화는 기업 입장에서 분명한 부담 요인입니다. 여기에 미중 갈등과 기술 패권 경쟁까지 겹치면서, 중국에 모든 것을 걸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커졌습니다. 그래서 기업들은 하나둘씩 전략을 수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애플을 보면 이 변화가 가장 잘 드러납니다. 애플은 중국에서 아이폰을 만들고, 중국에서 아이폰을 팔며, 중국 공급망에 깊이 묶여 있던 기업입니다. 최근 몇 년간 애플은 인도와 베트남으로 생산 비중을 분산시키고 있습니다. 인도에서 생산되는 아이폰 물량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고, 공급망 다변화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애플이 중국을 버렸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명확히 ‘아니다’입니다. 여전히 중국은 애플에게 가장 중요한 생산 기지이자, 무시할 수 없는 소비 시장입니다.


나이키 역시 비슷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한때 중국은 나이키의 성장 스토리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중국 매출 성장률은 둔화됐고, 현지 브랜드와의 경쟁도 심해졌습니다. 나이키는 중국 비중을 줄이고 북미와 유럽 중심으로 전략을 재정비하고 있지만, 중국 시장에서 완전히 빠져나갈 생각은 없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중국은 성장 속도는 느려졌지만, 여전히 규모가 너무 큽니다. 매출이 줄어드는 시장이 아니라, ‘기대만큼 커지지 않는 시장’이 되었을 뿐입니다.


스타벅스는 이 모순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업 중 하나입니다. 스타벅스는 중국을 제2의 본거지처럼 키워왔습니다. 매장 수만 놓고 보면 이미 미국 다음입니다. 최근 중국 소비 둔화로 실적이 주춤했지만, 스타벅스는 중국 투자를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매장 포맷을 바꾸고, 가격 전략을 조정하며, 현지화 수준을 더 높이고 있습니다. 중국이 더 이상 빠르게 커지지 않더라도, 이미 만들어진 커피 문화와 브랜드 인지도는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테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테슬라는 중국 정부의 지원 속에서 상하이 기가팩토리를 빠르게 키웠고, 이는 테슬라의 글로벌 생산 효율을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최근 중국 전기차 시장의 경쟁은 극단적으로 치열해졌고, 가격 경쟁도 심화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슬라는 중국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중국은 테슬라에게 가장 효율적인 생산 기지이자, 글로벌 전기차 경쟁의 최전선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장에서 빠지는 순간, 경쟁력 자체가 약해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 비중을 줄이면서도 완전히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중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 시장 중 하나입니다. 성장률이 낮아졌다고 해서 시장의 절대 크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둘째, 중국은 단순한 소비 시장을 넘어 공급망의 중심입니다. 생산, 물류, 인력, 인프라가 결합된 생태계는 단기간에 대체할 수 없습니다. 셋째, 중국 시장을 포기하는 순간,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가능성도 커집니다. 중국은 여전히 기술, 제조, 가격 경쟁의 최전선입니다.


그래서 기업들이 선택한 전략은 ‘탈중국’이 아니라 ‘중국 리밸런싱’에 가깝습니다. 중국 하나에 모든 것을 걸던 구조에서 벗어나, 중국을 여러 축 중 하나로 재정의하는 과정입니다. 인도, 베트남, 멕시코, 동유럽 등이 새롭게 부각되는 것도 이 맥락입니다. 중국을 대체하기보다는, 중국의 비중을 낮추는 방향입니다.


투자자 관점에서 이 흐름은 매우 중요합니다. 뉴스에서는 종종 “기업들이 중국을 떠난다”는 자극적인 표현이 등장하지만, 실제 숫자와 전략을 보면 훨씬 복합적입니다. 중국 매출 비중이 줄어든다고 해서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약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공급망과 시장 구조를 더 탄탄하게 만드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중국 의존도가 여전히 지나치게 높은 기업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변동성에 노출될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을 ‘버릴 수 없는 시장’에서 ‘관리해야 할 시장’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미묘한 시선 변화가 앞으로 수년간 기업 전략과 실적에 그대로 반영될 가능성이 큽니다. 중국은 더 이상 성장 스토리의 중심은 아니지만, 여전히 글로벌 전략에서 빠질 수 없는 변수입니다. 이 모순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앞으로 기업들의 성과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