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시장을 바라보면 주목받는 기업과 실제로 체력이 쌓이고 있는 기업 사이의 괴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기업들은 대체로 화려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 공격적인 확장, 인수합병, 글로벌 진출 같은 키워드들이 빠지지 않습니다. 반면 조용히 실적을 쌓아가고, 비용 구조를 다듬고, 현금을 축적하는 기업들은 시장의 관심에서 비켜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시장 환경이 거칠어질수록, 이런 ‘눈에 잘 띄지 않는 변화’가 훨씬 중요해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지금처럼 금리 수준이 높고, 소비가 둔화되고, 투자 심리가 위축된 국면에서는 기업의 본질이 훨씬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매출 성장을 전제로 한 사업 모델은 환경이 바뀌는 순간 바로 시험대에 오릅니다. 반면 이미 검증된 수익 구조를 가지고 있고, 외부 자금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기업들은 속도를 줄이더라도 방향을 잃지 않습니다. 이 차이는 단기간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누적됩니다.
조용히 체력을 키우는 기업들의 첫 번째 공통점은 ‘성장을 선택적으로 한다’는 점입니다. 모든 기회를 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매출이 늘어날 수 있더라도 수익성이 낮은 사업, 관리가 복잡해지는 영역, 불확실성이 큰 투자는 과감히 뒤로 미룹니다. 대신 이미 자신들이 잘하고 있는 영역, 반복 매출이 발생하는 사업, 고객 이탈이 낮은 구조에 집중합니다. 외형 성장 속도는 느려질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이익률은 오히려 개선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번째는 비용 구조에 대한 태도입니다. 이런 기업들은 매출이 늘 때보다 줄 때 더 많은 고민을 합니다. 마케팅 비용, 인건비, 고정비를 다시 점검하고, 관성처럼 유지되던 지출을 하나씩 정리합니다. 단기 실적을 포장하기 위한 비용 투입보다는, 장기적으로 부담이 되는 구조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이 과정은 외부에서 보기에는 매력이 없어 보일 수 있지만, 기업 내부에서는 체질이 바뀌는 시간입니다.
세 번째는 현금흐름에 대한 집착입니다. 조용히 체력을 키우는 기업들은 손익계산서보다 현금흐름표를 더 중요하게 관리합니다. 회계상 이익보다 실제로 남는 돈이 얼마나 되는지를 집요하게 따집니다. 설비 투자, 신규 사업, 인수합병을 결정할 때도 “이게 얼마나 빨리 현금으로 돌아오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이런 기업들은 경기 변동이 심해질수록 오히려 선택지가 늘어납니다. 자금이 마른 시장에서는 현금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는 시장 지위입니다. 급성장 산업에 있지 않더라도, 자신이 속한 영역에서 확실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들입니다. 거래처가 쉽게 바뀌지 않거나, 고객이 한 번 들어오면 오래 머무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격 경쟁이 심한 산업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품질, 신뢰, 서비스로 차별화가 이루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기업들은 경기 둔화 국면에서도 매출이 급락하지 않습니다. 대신 천천히, 그러나 안정적으로 이익을 쌓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업들이 지금 당장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시장은 언제나 다음 이야기를 찾기 때문입니다. 눈에 띄는 성장률, 자극적인 숫자, 새로운 키워드가 없으면 관심을 받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기대가 낮다는 것은, 동시에 리스크도 낮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시장의 기대가 과도하게 반영된 기업은 작은 실망에도 크게 흔들리지만, 기대가 낮은 기업은 조금만 좋아져도 평가가 달라집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큰 조정 이후 시장을 주도했던 기업들 중 상당수는, 조정 이전에는 지루하다는 평가를 받던 기업들이었습니다. 위기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경쟁력이 되었고, 이후 환경이 정상화되자 자연스럽게 재평가가 이뤄졌습니다. 반대로 화려했던 기업들 중 일부는, 위기 국면에서 체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시장에서 빠르게 잊히기도 했습니다.
지금 시장도 비슷한 국면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기간에 주가가 튀는 기업보다, 이익이 쌓이고 현금이 남는 기업들이 다음 국면에서 훨씬 유리한 위치에 설 가능성이 큽니다. 당장은 주가 흐름이 답답할 수 있습니다. 뉴스도 적고, 이야기거리도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 만들어진 체력은, 시장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힘을 발휘합니다.
불안한 시장에서 투자자들이 점점 피로감을 느끼는 이유는 방향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측이 어려울수록 기준은 오히려 단순해집니다. 돈을 벌고 있는지, 빚이 줄고 있는지, 쉽게 대체될 수 없는 위치에 있는지. 이 세 가지 질문에 꾸준히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기업들은, 지금도 조용히 체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시장이 다시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이런 기업들이 가장 먼저 다시 보이기 시작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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