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포드, 전기차 사업 접는다
미국의 대표 완성차 업체인 포드가 부진에 빠진 전기차 사업을 대폭 축소하겠다고 선언
물량을 앞세운 중국 전기차가 글로벌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는 상황에서 내연기관차에 힘을 싣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전기차 지원을 대거 줄이는 등 이중고에 직면한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옴
15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포드는 이날 전기차에서 하이브리드와 내연기관 차량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사업 전략을 전면 수정한다고 밝혔음
이에 따라 주력 전기차 모델인 F-150 라이트닝 픽업트럭의 생산을 중단하고 대신 해당 모델을 가솔린 내연기관을 장착한 하이브리드 형태로 전환하기로 했음
내연기관 기반의 트럭과 승합차(밴) 생산도 늘릴 방침
전동화 분야에서는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저가 전기차 부문 정도만 남김
사실상 전기차 사업에서 내연기관차로의 ‘유턴’을 선언한 셈
포드는 이미 전기차 부문에 투자한 비용 195억 달러(약 28조 7800억 원, 세전 기준)는 연말까지 전액 손실 처리하기로 했음
여기에는 SK온과 지분 5대5로 합작해 세운 법인 블루오벌SK의 청산 비용(60억 달러)도 포함됨
SK온은 블루오벌SK의 미국 테네시 공장을 단독 운영한다는 계획
짐 팔리 포드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수익이 나지 않는 대형 전기차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붓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우리는 (전기차 축소라는) 선택을 해야 했다”고 말했음
실제로 포드의 전기차 부문 영업손실은 2022년 21억 3000만 달러에서 2023년 47억 달러, 2024년 50억 800만 달러 등으로 계속 늘어났고 올해도 9월까지 35억 9000만 달러의 손실을 낸 것으로 집계됐음
포드의 이 같은 결정에는 전기차 지원을 대폭 줄인 트럼프 행정부의 내연기관차 우선 정책이 주요 배경이 됐다는 분석
조 바이든 전임 정부가 도입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상 전기차 구매 때 적용되던 최대 7500달러(약 1108만 원) 규모의 세액공제 지원이 9월 말로 종료되면서 미국의 전기차 업계는 직격탄을 맞았음
글로벌 전기차 산업이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에 빠진 상황에서 그나마 버팀목이던 정부 지원까지 끊긴 셈임
자동차 시장조사 업체 콕스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세액공제 지원 중단 이후 10월 미국의 전기차 생산량은 전달 대비 49%나 급감했음
이러한 상황은 미국 전기차 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
10월 또 다른 미국 전기차 주자인 제너럴모터스(GM)는 당초 예정했던 전기차 생산 계획을 대폭 철회하면서 총 16억 달러(약 2조 3600억 원)를 손실 처리했음
또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인 리비안은 저가 보급형 모델인 ‘R2’ 생산을 확대하고 최근에는 자체 개발한 자율주행용 인공지능(AI) 칩을 공개하기도 했지만 개발비를 마련하기 위해 여러 차례 감원을 단행하는 등 자금 부족에 허덕이고 있음
고급 세단 중심의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루시드는 캐즘에 따른 수요 부진에 시달리고 있음
반면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제 살 깎기로 치닫는 국내 경쟁을 피해 글로벌 시장으로 쏟아지고 있음
비야디(BYD)는 올해 3분기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테슬라(13%)에 앞선 점유율 1위임
3위는 지리자동차로 역시 중국 업체. GM과 포드 전기차의 글로벌 점유율은 1% 미만으로 중국과의 경쟁 레이스에서 밀려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
사실상 테슬라 혼자 중국 전기차와 대적하는 양상
영국 BBC는 “미국 내 전기차 보급률은 중국은 물론 영국·유럽과 비교해도 크게 뒤처진다”고 짚었음
유럽, 2035년 내연차 금지 없던 일로
유럽연합(EU)이 2035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던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규정을 사실상 철회하는 방안을 추진
친환경 차량 보급을 늘려 2050년 ‘넷제로(Net Zero·탄소 중립)’를 달성하겠다는 목표였지만 유럽 경제의 핵심 축인 자동차 산업이 심각한 압박에 직면하자 속도 조절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옴
15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유럽 자동차 제조사들이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내연기관 차량 생산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도록 기존 법안을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
신차 생산 과정에서 친환경 철강을 사용하거나 특정 기준을 만족할 경우 2021년 탄소배출량의 10% 범위 내에서 내연기관 차량 생산을 허용하는 방안이 개정안에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음
이와 함께 2035년부터 금지될 예정이었던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방안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음
2년 전 EU는 2035년 이후 내연기관차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규정을 마련. 이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감축하고 2050년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EU의 기후 전략을 뒷받침하는 핵심 정책으로 꼽혔음
하지만 현실적으로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정책 수정론이 힘을 얻은 것으로 보임
당초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유럽 업체들이 단기간 내 전기차 판매를 대폭 늘려야 하는데 미국 테슬라와 중국 비야디(BYD) 등에 뒤처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무리라는 지적임
특히 유럽 자동차 산업 전반을 뒤덮고 있는 위기론은 정책 전환의 주요 배경으로 꼽힘
실제 독일 폭스바겐과 메르세데스벤츠, 유럽 다국적기업 스텔란티스 등은 최근 실적 악화에 시달리고 있음
폭스바겐의 경우 창사 이후 88년 만에 처음으로 독일 내 공장 폐쇄를 결정하며 위기감을 드러냈음
이 과정에서 독일과 이탈리아 등 자동차 산업 비중이 큰 국가들을 중심으로 내연기관차 퇴출 속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음
다만 EU 내부에서도 의견은 엇갈림. 프랑스와 스페인 등은 기존 목표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음
이들 국가는 장기적으로 볼 때 자동차 산업의 중심은 여전히 전기차가 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임
전기차 업체들의 반발도 변수. 관련 업체들은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 관련 투자 위축이 심화되고 EU가 중국에 밀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음
<시사점>
최근 글로벌 전기차(EV) 산업을 둘러싼 환경 변화는 한국 2차전지 산업에 적잖은 긴장감을 안기고 있습니다. 미국 포드는 전기차 투자 축소와 함께 일부 배터리 합작 사업에서 발을 빼는 결정을 내렸고, 유럽연합(EU) 역시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정책을 완화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전기차 세제혜택 중단의 악영향으로 한때 ‘확정된 미래’로 여겨졌던 전기차 전환 시나리오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 같은 변화는 단기적으로 한국 2차전지 산업에 부담인 것은 사실입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전동화 속도를 조절하면서 배터리 수요 전망이 하향 조정되고, 설비 가동률과 수익성 압박이 불가피해졌습니다. 특히 북미와 유럽 시장 의존도가 높은 국내 배터리 기업 입장에서는 정책 리스크와 고객사 전략 변화가 동시에 닥친 셈입니다. 주식시장에서 2차전지 관련주의 변동성이 커진 것도 이러한 불확실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정 국면을 ‘위기’로만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하겠습니다. 전기차 전환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에너지·산업 구조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있습니다. 각국의 정책이 속도 조절에 나설 수는 있어도, 탄소중립이라는 방향성 자체를 되돌리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환경 변화는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이 양적 팽창에서 질적 경쟁의 단계로 넘어가는 분기점에 가깝습니다.
한국 2차전지 산업의 강점은 이 ‘질적 경쟁’ 구도에서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 밀도, 안전성, 수명, 신뢰성 등 핵심 기술력에서 국내 기업들은 여전히 글로벌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단순 가격 경쟁이 아닌 고부가가치 배터리, 프리미엄 전기차와 상용차,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으로 무게중심을 옮긴다면 성장 동력은 여전히 충분합니다. 특히 AI 데이터센터 확대와 재생에너지 확산으로 ESS 수요가 구조적으로 늘어나는 점은 배터리 산업의 새로운 기회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변화는 ‘현지화’와 ‘순환경제’입니다. 각국의 산업 정책은 배터리 생산의 지역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부담이지만 동시에 한국 기업이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확장하며 시장을 선점할 기회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배터리 재활용과 소재 회수 산업이 본격화되면 원가 경쟁력과 공급망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습니다. 단기 실적보다 중장기 체질 개선에 집중해야 할 이유입니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정책 불확실성 속에서 2차전지기업들이 과도한 위험을 떠안지 않도록 금융·세제 지원과 외교적 대응이 병행돼야 합니다. 동시에 차세대 배터리, 전고체 기술, 핵심 소재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는 흔들림 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해야 합니다. 지금 투자를 멈추는 순간, 격차는 빠르게 좁혀집니다.
전기차 산업의 파도가 잠시 낮아진 듯 보이지만, 바다는 여전히 전동화의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한국 2차전지 산업이 이번 조정을 냉정하게 견디며 기술과 전략을 다듬는다면, 다음 상승 국면의 주도권은 다시 한국의 몫이 될 수 있습니다. 위기는 방향을 바꾸는 신호이지, 미래를 부정하는 선언은 아닙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환경변화에 대한 비관이 아니라 최첨단 미래를 준비해 나가는 끈기와 노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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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news.naver.com/article/newspaper/011/0004568051?date=202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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