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홀딩(On Holding)을 단순히 “요즘 잘 나가는 러닝화 브랜드”로만 보면 이 기업의 본질을 놓치게 됩니다. 온은 지금 전 세계 소비 시장에서 가장 어려운 위치로 여겨지는 ‘중간~프리미엄 가격대’에 속해 있으면서도, 예외적으로 성장률과 수익성을 동시에 끌어올리고 있는 드문 사례입니다. 이 점에서 온은 단순한 패션 브랜드가 아니라, 중간 가격대 붕괴 국면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기업입니다.
일반적으로 중간 가격대 브랜드가 무너지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가격은 저가 브랜드보다 비싸고, 브랜드 파워는 프리미엄보다 약합니다. 이 구조에서는 경기가 좋을 때는 그럭저럭 버티지만, 소비가 조금만 위축되면 가장 먼저 선택지에서 밀려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업은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택합니다. 더 싸지거나, 아니면 아예 프리미엄으로 올라가거나. 온은 이 갈림길에서 애매한 중간을 유지한 기업이 아니라, 스스로를 프리미엄의 기준 쪽으로 끌어올린 기업에 가깝습니다.
온의 가장 중요한 차별점은 ‘신발을 파는 방식’이 아니라 ‘기준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이 회사는 러닝화를 단순 소비재로 팔지 않습니다. 러닝이라는 행위 자체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과 성능 기준으로 정의하고, 그 기준에 맞는 제품만을 확장해왔습니다. 그래서 온의 신발은 항상 비슷해 보이지만, 동시에 명확한 정체성을 유지합니다. 이 일관성이 가격 방어의 핵심입니다.
중간 가격대에서 실패하는 브랜드들은 대부분 할인에 의존합니다. 재고가 쌓이고, 유통 채널이 압박하면 가격을 흔들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온은 할인 빈도가 낮고, 가격을 자주 흔들지 않습니다. 이 전략이 가능한 이유는 DTC(Direct-to-Consumer) 비중입니다. 온은 도매 유통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사 온라인 스토어와 직영 채널을 빠르게 키웠습니다. 이 구조에서는 브랜드가 가격을 통제할 수 있고, 소비자 반응을 직접 데이터로 축적할 수 있습니다. 중간 가격대 붕괴의 핵심 원인인 ‘가격 주도권 상실’을 스스로 차단한 셈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온이 러닝화 하나에만 베팅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러닝을 중심으로 하되, 테니스화, 트레이닝화, 라이프스타일 스니커즈로 천천히 확장했습니다. 이 확장은 트렌드 추종이 아니라 ‘같은 기준을 다른 상황에 적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소비자는 온의 신제품을 전혀 다른 브랜드처럼 느끼지 않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기준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지점에서 룰루레몬과의 비교가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룰루레몬이 애슬레저의 기준을 만들며 가격을 지켜낸 것처럼, 온은 러닝과 데일리 슈즈의 기준을 만들며 가격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두 브랜드 모두 공통적으로 “이 가격이면 비싸다”는 논쟁 자체를 피합니다. 대신 “이 카테고리에서는 이게 기준”이라는 인식을 먼저 심습니다.
외식이나 가전에서 중간 가격대가 무너지는 이유와 비교해보면, 온의 전략은 더 또렷해집니다. 외식에서 애매한 가격대의 식당이 사라지는 이유는 ‘대체 가능성’ 때문입니다. 가전에서 중간 가격대가 무너지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온은 대체 가능성을 낮추는 데 성공했습니다. 디자인, 착용감, 기술 스토리, 브랜드 이미지가 한 덩어리로 묶여 있기 때문에 단순 가격 비교가 어렵습니다.
물론 리스크가 없는 기업은 아닙니다. 투자자 관점에서 온을 볼 때 반드시 짚어야 할 부분도 분명합니다. 첫째는 미국 비중이 높은 매출 구조입니다. 이는 성장의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경기 둔화나 소비 심리 위축 시 변동성이 커질 수 있는 요인입니다. 둘째는 프리미엄 브랜드의 숙명적인 리스크, 즉 수요 둔화 국면에서 할인 유혹을 얼마나 잘 버텨낼 수 있는가입니다. 셋째는 생산과 공급망 구조입니다.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비용 구조가 흔들릴 가능성도 항상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이 투자자에게 흥미로운 이유는 명확합니다. 이 회사는 “중간 가격대는 반드시 죽는다”는 통념에 반례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조건은 매우 까다롭습니다. 가격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기준을 만들 것, 할인에 의존하지 않을 구조를 만들 것, 특정 고객에게만 강하게 선택받을 것. 온은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는 드문 사례입니다.
미국·일본·한국 시장을 비교해보면 이 전략의 의미가 더 분명해집니다. 미국은 러닝 문화와 커뮤니티가 탄탄해 프리미엄 러닝 브랜드가 성장하기 좋은 시장입니다. 일본은 기능과 디테일, 브랜드 일관성에 돈을 내는 소비 성향이 강해 장기적으로 브랜드를 쌓기 좋습니다. 반면 한국은 비교가 빠르고 트렌드 전환이 극단적으로 빠른 시장입니다. 이 환경에서 온이 장기적으로 살아남으려면 러닝 성능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전반에서 기준을 유지해야 합니다.
온홀딩은 지금 ‘잘 나가는 브랜드’의 단계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업의 진짜 시험대는 다음 국면입니다. 소비가 둔화될 때도 가격을 지킬 수 있는가, 브랜드의 기준을 흔들림 없이 유지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계속해서 “예”라고 답할 수 있다면, 온은 중간 가격대 붕괴 시대를 대표하는 성공 사례로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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