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유통기업을 바라볼 때 가장 많이 착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전히 “물건을 얼마나 잘 파느냐”로 기업의 경쟁력을 판단하는 시선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유통 대기업들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제 핵심은 판매량이 아니라 ‘접점’과 ‘데이터’에 있습니다. 물건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더 이상 수익의 중심은 아닙니다. 유통사들이 플랫폼 기업처럼 움직이기 시작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 유통의 본질은 단순했습니다. 싸게 사서 조금 붙여 파는 구조였고, 매출 규모와 점포 수가 곧 경쟁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온라인과 모바일이 일상이 되면서 이 구조는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가격 비교는 실시간으로 이뤄지고, 상품 차별화는 갈수록 어려워졌습니다. 이 상황에서 유통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뿐이었습니다. 끝없는 가격 경쟁으로 마진을 깎아내리거나, 아예 다른 수익 구조를 만들어내거나. 지금 살아남고 있는 유통 대기업들은 후자를 택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고객을 보는 관점’입니다. 예전에는 고객이 물건을 사는 순간만 중요했다면, 지금은 고객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보고, 얼마나 자주 들어오는지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이 지점에서 유통은 자연스럽게 플랫폼의 영역으로 이동합니다. 고객 접속 빈도, 체류 시간, 구매 패턴이 쌓이면 그 자체가 자산이 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멤버십 구조입니다. 멤버십은 단순한 할인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유통사 입장에서는 고객을 ‘회원’으로 묶어두는 가장 강력한 락인 장치입니다. 월 정액, 연회비 구조는 매출의 변동성을 낮춰주고, 고객의 구매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확보하게 해줍니다. 이 순간부터 유통사는 물건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고객 트래픽을 관리하는 회사로 성격이 바뀝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수익의 성격입니다. 상품 판매 마진은 경쟁이 치열할수록 얇아지지만, 멤버십 수익과 데이터 기반 수익은 규모가 커질수록 오히려 효율이 좋아집니다. 가입자가 늘어도 시스템 비용은 크게 늘지 않고, 축적된 데이터는 다양한 방식으로 재활용됩니다. 이 구조는 전형적인 플랫폼 기업의 수익 모델과 매우 유사합니다.
두 번째 변화는 광고입니다. 예전에는 브랜드들이 TV나 포털에 광고비를 썼다면, 이제는 유통 플랫폼 안으로 예산을 옮기고 있습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유통 플랫폼은 ‘구매 직전의 고객’을 가장 정확하게 타겟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검색, 노출, 추천 영역에 들어가는 광고는 단순 노출이 아니라 매출과 직결됩니다. 유통사가 직접 광고 인벤토리를 운영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이들은 더 이상 단순한 중개자가 아닙니다. 광고 매출은 마진이 매우 높고, 물류나 재고 부담도 없습니다. 플랫폼적 수익의 핵심입니다.
세 번째는 결제와 금융입니다. 자체 페이, 포인트, 후불 결제, 할부 서비스까지 유통사의 손이 닿지 않는 영역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결제는 단순 편의 기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객 데이터를 가장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영역입니다. 무엇을 얼마나 자주, 어떤 방식으로 결제하는지를 알게 되면 고객의 소비 성향이 거의 완벽하게 드러납니다. 이 정보는 다시 마케팅, 상품 기획, 재고 운영으로 연결됩니다. 플랫폼 기업이 금융 기능을 품는 이유와 정확히 같은 맥락입니다.
오프라인 유통도 예외가 아닙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매출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전략은 전혀 다릅니다. 이들은 점포를 ‘판매 공간’이 아니라 ‘트래픽 허브’로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명품, 식음료, 팝업스토어, 체험형 콘텐츠를 강화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매장에서 얼마를 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자주 방문하느냐입니다. 방문 데이터는 다시 온라인과 멤버십, 앱으로 연결되고, 전체 플랫폼의 가치를 끌어올립니다.
이 변화는 유통기업의 재무 구조에서도 드러납니다. 단기적으로는 비용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IT 투자, 데이터 인프라, 멤버십 혜택, 물류 고도화 등으로 인해 비용 부담이 커집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매출 변동성이 낮아지고, 고정 수익 비중이 늘어납니다. 시장이 유통기업을 단순 소비재 기업이 아니라 플랫폼 기업의 시각으로 다시 보기 시작하는 이유입니다.
투자자 관점에서 이 변화는 매우 중요합니다. 같은 유통기업이라도 플랫폼화에 성공한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의 밸류에이션은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 매출 성장률이 아니라, 멤버십 가입자 수, 활성 이용자, 광고 매출 비중, 자체 결제 비중 같은 지표를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지표들은 전통적인 유통 분석에서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핵심이 되고 있습니다.
결국 요즘 유통 대기업들이 플랫폼 기업처럼 변하는 이유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닙니다. 가격 경쟁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적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고, 고객 접점과 데이터를 가진 쪽만이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건은 여전히 팔지만, 돈을 버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면 유통기업을 계속 과거의 기준으로 오해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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