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한국 소비 시장의 흐름을 좌우하는 축은 단순히 경기지표나 소비심리지수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과거에는 금리와 소득이 소비 변화를 거의 결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지금의 소비는 거시지표보다 더 세분화된 심리, 취향, 가성비 판단, 플랫폼 경험의 영향을 강하게 받습니다. 이 때문에 산업별 매출 구조가 급속도로 재편되고 있고, 어떤 산업은 명확한 성장 궤적을 확보한 반면 어떤 산업은 구조적으로 성장 탄력을 잃으며 차별화가 극명해지고 있습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세 가지 시장이 있습니다. 바로 OTT 시장의 새로운 수익성 경쟁, F&B 시장의 프리미엄화 흐름, 그리고 H&B 채널의 압도적 집중 구조입니다. 이 세 분야는 서로 다른 산업이지만 공통적으로 소비자의 선택 기준이 더 날카로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2026년 한국 소비시장의 핵심은 어떤 기업이 고객을 락인하고 지속적인 매출 흐름을 만들어내는가에 달려 있으며, 기업들의 전략 변화가 불가피한 시점에 와 있습니다.
먼저 OTT 시장은 2024~2025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전환기에 들어섰습니다. 글로벌 OTT 기업들은 이제 단순한 구독자 수 확대 전략에서 벗어나 수익성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글로벌 매출은 2023년 약 330억 달러 수준에서 2024년 350억 달러로 증가했고, 2025년에는 380억 달러 내외가 예상될 정도로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영업이익률 역시 18%대에서 20%를 넘어서는 흐름으로, 구독료 인상과 광고 기반 요금제 확장이 이익률 상승을 견인하고 있습니다. 한국 시장만 따로 떼어보면 유료 구독자 수는 700만~800만 사이로 추정되고, 연간 매출은 1조 원대 초반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한국이 넷플릭스의 글로벌 시장 중에서도 높은 ARPU를 확보할 수 있는 시장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반면 쿠팡플레이는 완전히 다른 전략으로 성장했습니다. 스포츠 콘텐츠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유입을 만들어냈고, 2024~2025년 사이 추정 구독자 수는 500만~600만까지 증가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연간 매출은 4천억~5천억 원 사이로 추정되지만, 콘텐츠 투자 비용이 매출 증가보다 빠르게 늘어나는 구조 때문에 당분간 수익성 압박이 지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스포츠 콘텐츠는 충성도가 매우 높고 국내 OTT 중 유일한 독점성 기반의 성장 전략을 취하고 있어, 2026년에도 강력한 고객 확보 수단이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티빙과 웨이브 등 국내 OTT는 비용 부담을 견디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티빙은 2023년 매출 약 6천억 원 수준에서 2025년 7천억 원을 넘기는 정도의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지만, 영업손실은 여전히 1천억 원대 중후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입니다. 웨이브는 매출 2천억 원대, 적자는 수백억 원대로 유지되고 있어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국면에 놓여 있습니다. 2026년 OTT 시장은 단순한 경쟁을 넘어 재편을 향해 가고 있으며, 구독자수 경쟁보다는 ARPU 상승, 광고 요금제 확대, 오리지널 제작 효율화가 핵심 전략이 될 것입니다.
한국 소비자들의 OTT 사용 패턴에서도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은 글로벌 평균 대비 월 단위 해지율이 높은 편이며, 콘텐츠가 끝나면 해지하고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행동이 더욱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이 때문에 플랫폼 간 콘텐츠 편차가 생길수록 해지-재가입 흐름이 가속화되고, 결국 안정적인 구독 수익을 유지하기 위한 광고 기반 플랜의 비중이 확대될 수밖에 없습니다. 선수입 콘텐츠 투자보다는 효율 중심의 콘텐츠 운영이 부각되는 이유입니다.
두 번째 소비 트렌드는 F&B 시장의 프리미엄화 흐름입니다. 한국의 간편식 시장 규모는 2018년 4조 원에서 2024년 7조 원까지 성장했으며, 2026년에는 9조 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큽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단순히 시장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선택 기준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에는 저렴한 가격과 양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재료, 건강성, 브랜드 스토리, 퀄리티가 더 우선적인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프리미엄 샌드위치 시장은 최근 3년간 연평균 20% 이상 성장했고, 특히 카페 브랜드와 편의점까지 뛰어들며 시장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습니다. 대표적으로 샌드위치 전문 브랜드들은 연매출 500억~1천억 원 사이를 형성하며 빠른 속도로 성장했고, 편의점의 프리미엄 샌드위치 매출은 최근 2년 동안 4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F&B 기업들의 성과를 더 구체적으로 보면, SPC삼립의 경우 2024년 매출 3조 5천억 원 수준에서 2025년 3조 7천억 원 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며, 영업이익은 1천억 원 내외까지 회복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프리미엄 간편식과 샌드위치·베이커리 카테고리가 실적을 견인하는 구조입니다. CJ제일제당의 HMR 부문 역시 2024년 매출 4조 원대, 2026년에는 5조 원 진입이 예상됩니다. 소비자들이 더 나은 품질의 간편식을 선택하는 비중이 늘어났고, 1~2인 가구 증가로 인해 ‘조리 편의성’이 중요한 요소가 된 것입니다.
이 흐름은 단순한 단기 트렌드가 아니라 구조적 변화입니다. MZ세대뿐 아니라 40대·50대 소비자까지 프리미엄 제품에 지갑을 열고 있으며, 가격 탄력성은 기존 대비 크게 낮아졌습니다. 이는 기업들에게 안정적인 매출 기반을 제공하며, 프리미엄 제품 비중이 회사의 이익률을 높이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H&B 채널 전쟁입니다. H&B 시장은 한국에서 압도적인 집중도가 특징인데, 2024년 기준 약 6조 원 시장 중 올리브영이 절반이 넘는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2024년 올리브영의 매출은 2조 7천억~3조 원 사이로 추정되고, 영업이익은 3천억 원대 중반까지 올라섰습니다. 영업이익률은 10%대 중반 이상으로, 국내 리테일 업종에서는 보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온라인 매출 역시 가파르게 확대되어 2025년 기준 온라인 비중은 전체 매출의 35%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올리브영은 단순 H&B 채널이 아니라 플랫폼으로 진화했습니다. 제품 큐레이션, 멤버십, PB 브랜드, 온라인 배송, 리뷰 시스템이 완성되며 거대한 진입장벽을 구축했습니다. 경쟁사들의 입장에서는 동일한 구조를 구축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상황이며, 이 격차는 2026년에도 쉽게 좁혀지기 어렵습니다. 시코르와 롭스는 점유율 회복을 시도하고 있지만, 2024년 각각 5~7% 수준에 머무르는 것으로 추정되며, 실매출 성장률도 1~3% 수준으로 제한적입니다.
2026년 H&B 시장의 관건은 온라인 매출 확대와 PB 상품 경쟁력입니다. PB 상품은 기업의 마진율을 크게 높여주는 요소로, 올리브영의 PB 판매 비중은 연평균 20% 이상 성장하고 있습니다. PB가 존재하는 카테고리는 가격 경쟁력을 가지면서도 브랜드 충성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 지배력이 더 강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세 산업은 서로 독립적이지만 몇 가지 공통된 구조적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소비자들은 더 높은 품질, 더 편리한 경험, 더 높은 자기 만족을 위해 프리미엄 비용을 지불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둘째, 경험 기반 소비가 확산되며 플랫폼 락인 효과가 강해지고 있습니다. OTT에서는 구독자 락인이, F&B에서는 품질을 통한 재구매가, H&B에서는 멤버십과 PB 상품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셋째, 기업 간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으며, 선두 기업들은 규모의 경제, 브랜드 파워, 데이터 기반 운영을 통해 성장 속도를 더 가속화할 수 있습니다.
2026년 한국 소비 시장의 흐름은 단순한 회복세나 경기민감도가 아니라 구조적 성장 섹터의 부상과 비효율적 플레이어의 도태라는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플랫폼, 프리미엄 제품, 충성 고객 기반을 가진 기업은 성장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시장 점유율을 잃어갈 것입니다. 소비자들은 더 똑똑해졌고, 더 많은 선택권을 가지며, 가치 판단 기준은 더욱 정교해졌습니다. 이 변화에 맞추어 움직이는 기업만이 2026년 이후 한국 소비 시장의 승자가 될 것이며, 이 흐름은 앞으로 몇 년간 계속해서 산업 지형을 바꾸는 강력한 동력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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