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농업이 지난 수천 년 동안 늘 자연의 흐름에 맞춰왔던 산업이었다면, AeroFarms는 그 역사에 가장 큰 균열을 만든 기업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흔히 식물공장이라고 부르는 수직농장(Vertical Farm) 기술은 여러 기업이 시도하고 있지만, 산업적·기술적·상업적 성공 사례를 동시에 갖춘 회사는 많지 않습니다. AeroFarms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도시형 농업을 실험했다는 차원이 아니라, AI·센서·LED·수분 제어·공기 흐름 시스템을 모두 결합해 농업을 사실상 ‘제조업’처럼 바꿔버렸다는 데 있습니다. 이 회사가 보여주는 방향성 자체가 앞으로 10~15년 뒤 식량 산업이 어떤 모습이 될지 예고하는 아주 중요한 시그널이 됩니다. 전통 농업은 비·햇빛·토양·계절이라는 외부 변수에 영향을 받지만, AeroFarms는 모든 것을 통제 가능한 환경에서 키워냅니다. 그 결과 동일 면적 대비 생산량이 기존 농업보다 390배 높게 나오고, 물 사용량은 95% 줄며, 작물의 맛·향·영양·식감까지 데이터 기반으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농업에서 이렇게까지 정밀 제어가 가능해진 기술적 변화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웠던 전환입니다.


AeroFarms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들의 기술적 깊이 때문입니다. 이 기업은 단순히 실내 LED 조명을 켜놓고 채소를 키우는 방식이 아니라, 식물이 흡수하는 광량·파장·광합성 효율·CO₂ 농도·수분의 입자 크기까지 모두 모델링해 데이터로 관리합니다. 식물은 각각 다른 주파수대의 빛에 반응하고, 단백질 합성이나 아미노산 농도도 광량 조절에 따라 달라집니다. AeroFarms는 이 메커니즘을 실험이 아닌 AI 기반 최적화로 관리합니다. 예를 들어 바질을 키울 때는 향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특정 시간대만 강한 blue spectrum을 적용하고, 로메인 상추는 아삭함을 유지하기 위해 광량과 습도, 내부 미세풍량을 세밀하게 조절합니다. 이런 방식의 재배는 전통 농업에서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결국 생산되는 작물의 표준화를 가능하게 만들고, 프리미엄 식자재 시장에서는 엄청난 경쟁력이 됩니다. 미쉐린 레스토랑에서 AeroFarms의 채소를 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매일 똑같은 품질의 재료”는 요식업에 있어 최상위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AeroFarms의 비전은 단순한 채소 생산을 넘어서 “도시 안에 들어오는 신선식품 공장”을 만드는 데 있습니다. 뉴저지·버지니아·뉴욕 등의 도시형 모델을 보면, 도심에서 20km 안쪽에 위치한 수직농장을 통해 마트·레스토랑·급식 시설로 직배송합니다. 밭에서 2~3일을 이동하던 채소가 수확 후 몇 시간 안에 소비처로 이동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채소의 신선도를 극단적으로 높이고, 탄소배출·물류비·보관비를 줄입니다. 도시에서 생산해 도시에서 소비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신선식품 공급망’의 구조 자체가 완전히 바뀝니다. 우리가 지금 마트에서 흔하게 보는 신선식품은 공급망이 길기 때문에 상온 보관, 냉장 유통, 보관 비용 등이 가격에 반영되지만, AeroFarms 모델에서는 이 과정 대부분이 사라져 버립니다. 단순히 농업을 스마트하게 한다는 개념을 넘어, 도시 물류와 식품 가격 구조까지 흔드는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회사의 진짜 경쟁력은 기술보다 “학습 데이터”에 있습니다. AeroFarms는 지난 15년 동안 작물 생장 데이터를 수백억 건 축적해왔는데, 이는 후발주자가 쉽게 따라갈 수 없는 영역입니다. 식물이 특정 광량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떤 미세환경에서 가장 빠르게 자라는지, 어떤 조합이 수확량을 높이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가진 회사는 글로벌에서도 손에 꼽습니다. 다시 말해, 미래의 농업 경쟁력은 땅이 아니라 데이터에 있으며, AeroFarms는 글로벌에서 가장 큰 작물 생장 데이터를 가진 기업 중 하나입니다. AI 시대의 농업에선 이 데이터가 사실상 “토지”이자 “광물”이자 “영업권”입니다. 즉, 데이터가 더 많을수록 더 높은 생산성, 더 높은 품질, 더 경쟁력 있는 단가를 만들 수 있는 겁니다. 이 회사가 농업을 모델 기반(Model-driven) 산업으로 바꾸려는 철학을 갖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AeroFarms의 기술은 중동에서 가장 빛을 봅니다. 사우디·아부다비·UAE는 이미 “식량 안보(Food Security)”를 국가 최우선 전략으로 올려놓았고, 오일 이후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식물공장을 도시 인프라처럼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AeroFarms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단순히 생산량 때문이 아니라 물 사용량이 극히 적다는 점 때문입니다. 사막 지역에서 물은 돈이고 권력입니다. 전통 농업은 대량의 물을 필요로 하는데, AeroFarms는 공기 중 수분을 회수해 재활용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수분 입자마저도 다시 순환시킵니다. 기후 변화가 거세질수록 중동 국가들에겐 이 기술이 생존 기술이 되는 셈이죠. 그래서 중동 주권펀드(PIF, ADIA, Mubadala)는 지난 몇 년간 AeroFarms와 같은 기업에 투자해왔고, 장기적으로는 사막 한복판에서 유럽산 수준의 신선식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사우디 네옴 프로젝트에 포함된 수직농장 계획은 바로 이 철학을 반영합니다. 한국 투자자 입장에서도 이 흐름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면 향후 10년 동안 “식량을 누가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지”가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본 역시 AeroFarms의 기술을 참고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농업 고령화가 세계 최악 수준인데, 이 때문에 노동력 없는 농업이 필요합니다. AeroFarms의 재배 방식은 노동집약적인 농업 구조를 자동화할 수 있는 대표 사례입니다. 일본의 편의점 업체들은 이미 실내 재배 채소를 대규모로 도입하고 있고, 기술적으로 더 정교한 모델을 구축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언뜻 보면 농업이 튼튼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농가 평균 연령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고 기후 리스크에도 취약합니다. 이 때문에 AeroFarms 같은 모델은 한국에서도 점차 주목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한국의 식품 기업들은 안정적인 원재료 확보가 가장 큰 리스크인데, 식물공장은 이 리스크를 거의 제거합니다. CJ는 글로벌 HMR에서 경쟁해야 하는데, 원재료 품질 편차와 가격 변동은 비용과 품질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AeroFarms식 모델은 CJ의 HMR 경쟁력을 결정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하림·농심·풀무원 또한 원재료 기반의 기업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식물공장은 장기적으로 필수 기술이 될 수 있습니다.


투자 관점에서 보면 AeroFarms는 “기후 테크”, “식량안보 테크”, “도시 인프라 테크”, “AI 농업” 모두에 속해 있습니다. 이런 구조적 성장 산업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20~30년 동안 수요가 꾸준히 유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식량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전 세계 인구는 2050년까지 90억에 육박하고, 기후 변화로 재배 가능한 지역은 줄어드는 상황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농업 생산량의 격차가 커지고 있고, 기후 재해가 늘어나면서 식량 가격 변동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후와 상관없는 식량 생산 기술”의 가치가 더욱 커집니다. 특히 한국처럼 식량 자급률이 낮고,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는 AeroFarms 모델이 국가 전략 차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한국이 중동과 협력해 외국에 스마트팜 기지를 만들고, 그 생산물을 국내로 다시 들여오는 구조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일본이 이미 하고 있는 전략입니다.


AeroFarms의 도전 과제도 물론 존재합니다. 초기 설비 비용이 높고, 전력 비용이 비싸며, 글로벌 공급망이 불안정하면 장비 가격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 비용은 매년 빠르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LED 가격은 지난 10년간 85%나 하락했고, 센서 비용도 중국·대만 제조사들의 생산으로 계속 낮아지고 있습니다. 또한 전력 비용은 국가별 편차가 크기 때문에 AeroFarms 같은 기업은 “가장 전력이 싸고 물이 적게 들어가는 지역”을 중심으로 모델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동과 동남아가 성장 거점으로 떠오르는 것입니다. 실제로 싱가포르는 식량 자급률을 30%까지 높이기 위한 국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AeroFarms 기술의 도입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2035년이 되었을 때, AeroFarms 같은 기업은 단순한 벤처가 아니라 도시 인프라의 일부가 되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우리가 편의점·카페·약국·편의시설을 당연하게 보듯이, 앞으로는 “지역형 식물공장”이 도시 곳곳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 구조는 물류를 단축하고, 식품 가격을 안정시키고, 탄소 배출을 줄이며, 식량 위기를 완화합니다. 또한 작물의 품질을 일정하게 만들어 고급 식자재 시장, 기능성 식품 시장을 다시 재편할 수 있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히 ‘채소를 어디서 재배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구조, 도시 인프라, 식량 체계, 물류, 에너지, 노동력, 기후 리스크까지 모든 것을 재편하는 대전환입니다. AeroFarms는 이 전환의 가장 앞단에 있으며, 이 회사가 지난 15년간 쌓아온 기술·데이터·생태계는 글로벌 식량 산업의 방향을 좌우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갖습니다.


앞으로의 경쟁은 땅을 많이 가진 국가가 아니라 “기후 영향 없이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국가”가 이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관점에서 AeroFarms는 미래 식량 패권의 중심축에 서 있는 회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농업 테마가 그렇게 화려해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기후 변화가 심해지고 글로벌 식량 위기가 반복될 때마다 이 기업의 가치는 더 커질 것입니다. 특히 투자자는 “기후 리스크가 커질수록 반드시 수요가 늘어나는 산업”에 주목해야 합니다. AeroFarms는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0년 뒤 식량 산업의 주류가 될 가능성이 높은 기술을 지금부터 이해하는 것은 향후 투자 기회를 선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미래의 식탁이 어디서 오느냐는 단순한 미식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와 국가 전략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