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5년의 식탁은 지금과 완전히 다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우리가 마트에서 당연하게 집어오는 상추, 로메인, 어린잎 채소, 딸기, 블루베리 같은 작물들이 그때쯤이면 절반 가까이가 ‘밭’이 아니라 ‘공장’에서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이어오던 식량 생산 구조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전환점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식물공장, 또는 수직농장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농업은 더 이상 실험적인 기술이 아니고, 이미 전 세계 주요 도시와 기업, 그리고 국가의 식량 전략에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아직은 조용하지만 뒤에서는 CJ, 하림, 풀무원, 농심 같은 기업들이 움직인다는 것은 결국 이 변화가 비주류가 아니라 미래의 ‘정답’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사실 식물공장이 각광받기 시작한 배경은 단순히 기술의 발전 때문이 아닙니다. 가장 큰 이유는 기후 변화와 이상기후 때문입니다. 최근 5년간 유럽은 극심한 가뭄과 폭염, 갑작스러운 폭우로 인해 농산물 수급이 불안정해졌고, 미국도 엘니뇨 영향으로 작황 변동성이 커졌습니다. 한국 역시 배추·파·상추 가격이 계절별로 심하게 오르내리며 뉴스 기사의 단골손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는 ‘자연’이라는 불확실성에서 시작됩니다. 농업은 본질적으로 날씨와 토양에 의존하기 때문에 외부 변수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생산량은 매년 크게 변하고 가격도 휘청거립니다. 그런데 식물공장은 이 모든 불안정을 제거합니다. 계절도 필요 없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그 안에서는 365일 동일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으며, 품질과 생산량도 예측 가능합니다. 물은 전통 농업 대비 90% 이상 적게 쓰고, 토지 사용은 거의 1/100 수준으로 줄어듭니다. 실제 미국의 한 연구에서는 동일 면적 기준으로 식물공장이 전통 농업 대비 200~300배의 생산성을 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건 단순한 효율이 아니라 산업구조 자체가 뒤집히는 규모의 차이입니다.
사우디와 UAE 같은 중동 국가들이 식물공장을 ‘국가 인프라’ 수준으로 육성하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사막 국가들은 원래 농업에 불리한 환경이라 수입 의존도가 높았고, 기후 변화가 점점 심해지면서 식량 안보가 국가 리스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중동에서는 “석유 이후의 식량 주권”을 위해 식물공장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UAE의 Pure Harvest나 사우디 네옴 프로젝트에서 추진하는 스마트팜들은 단순히 지역 농업이 아니라 글로벌 수출을 염두에 둔 대규모 생산 기반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중동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농업의 미래’를 구현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거죠.
일본도 비슷합니다. 일본은 농업 인구의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농가 평균 연령이 67세에 이르러 기존 방식으로는 농업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구조입니다. 그래서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식물공장을 전략 산업으로 밀어주고 있고, 이미 일본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샐러드 채소 상당수는 공장에서 길러진 것들입니다. 우리가 여행 가서 먹는 샐러드가 사실은 수직농장에서 나온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도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비슷한 트렌드가 이미 들어오고 있습니다. 특히 딸기 가격의 계절별 변동이 커지면서 대형 유통기업들은 연중 일정한 품질의 딸기를 확보할 수 있는 ‘도시형 스마트팜’을 매우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 산업의 핵심 기술은 결국 AI입니다. 식물공장은 단순히 실내에서 키우는 농업이 아니라, 센서·로봇·광학·AI 알고리즘·데이터 분석·예측 모델이 결합된 ‘데이터 기반 농업 시스템’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수직농장에서 자라는 모든 식물은 생육 상태를 센서로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습도·CO₂ 농도·광량·영양분 공급을 AI가 자동으로 제어합니다. 전통 농업에서는 아무리 숙련된 농부라도 경험으로 예측해야 했던 부분들을 AI가 정밀하게 계산해주는 것이죠. 빛도 식물별로 다른 주파수의 LED를 조절해 광합성 효율을 극대화하고, 영양분은 필요한 만큼만 공급해서 낭비를 줄이며, 병충해는 외부 미세 변화로 사전에 감지해 방지합니다. 심지어 어떤 식물은 특정 음악이나 진동, 미세한 바람이 더 빠른 성장을 유도한다는 연구도 있어, 이런 요소까지 AI가 실험하며 최적 모델을 찾아냅니다. 즉 인간이 수천 년간 경험적으로 쌓아온 농업 지식을 AI가 몇 년 만에 정량화하고 최적화해버리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생산 비용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식물공장은 초기 구축 비용이 높다는 단점이 있지만, 일단 운영되기 시작하면 인건비·토지 비용·물·비료 등 대부분의 변동비가 낮아지고 생산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전통 농업보다 훨씬 경제적입니다. 최근 10년 동안 식물공장의 LED 비용은 80% 이상 하락했고, AI 제어 시스템도 더 저렴해지고 있습니다. 기술이 성숙해지는 속도를 감안하면 2030년대 중반쯤에는 채소류 기준 생산단가가 전통 농업과 거의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지점이 오면 시장은 걷잡을 수 없습니다. 가격 경쟁력이 확보되면 자연스럽게 기업들은 전통 농업 대신 식물공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정부도 안정 공급망 확보 측면에서 지원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2035년이 되면 도시 구조도 바뀔 수 있습니다. 지금은 식물공장을 “비닐하우스의 진화” 정도로 보지만, 사실은 도시의 ‘미니 데이터센터’처럼 들어올 가능성이 큽니다. 냉난방·전력·AI 제어 시스템 구조가 데이터센터와 매우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서울만 보더라도 강남·송파·마곡 같은 곳에 소규모 지역형 식물공장이 각 구마다 최소 5~10개씩 들어설 수 있습니다. 이런 시설은 건물 루프탑, 지하 공간, 폐창고, 유휴부지를 활용하기 좋기 때문에 도시재생 프로젝트와 결합하기도 용이합니다. 한마디로 “도시 안에서 먹거리를 스스로 생산하는 구조”가 되는 것이고, 이는 물류비 절감·탄소 배출 감소·신선도 유지 측면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제공합니다. 이미 미국 뉴욕에서는 건물 옥상에 수직농장을 설치해 지역 식당과 마트에 공급하는 모델이 활성화되고 있고, 한국에서도 서울시가 도시형 스마트팜 시범사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투자 관점에서 보면 이 산업은 생각보다 훨씬 넓은 산업 범위를 가집니다. 식물공장이라고 하면 채소를 키우는 기업만 떠올리기 쉬운데, 실제 핵심 가치는 주변 생태계에 있습니다. LED 제조사, 센서 기업, 자동화 로봇 기업, 물 관리 기술, 열관리 기술, 냉방·난방 솔루션, 공조 기술, 건설사, 데이터센터 운영 기술, AI 모델 개발사 등 수많은 산업이 얽혀 있습니다. 삼성은 이미 스마트 조명·센서 기술을 농업 자동화와 결합할 가능성이 있고, LG는 H&A 부문에서 공기 제어·미세환경 관리 기술을 식물공장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한화·두산은 에너지·냉각·전력 인프라 기술로 접근할 수 있고, CJ는 식재료 안정 공급망 확보 측면에서 식물공장을 자회사나 파트너사 형태로 구축할 수 있습니다. 한국 기업 중에서 가장 빠르게 이 흐름을 캐치할 기업은 HMR을 글로벌로 확장하고 있는 CJ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HMR의 가장 큰 리스크는 원재료 가격 변동과 품질 편차인데, 식물공장은 이 문제를 완전히 제거하는 기술이니까요.
한국이 이 산업에서 경쟁력을 갖기 어려운 지점도 분명합니다. 전기요금이 상대적으로 높고, 도시 부지가 비싸며, 초기 구축비가 부담됩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도시형 소규모 모델과 해외 거점 모델로 동시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 기업이 UAE·사우디에 ‘해외 식물공장’을 짓고 한국으로 역수입하는 모델도 현실적인 전략입니다. 실제로 일본은 이미 두바이에 스마트팜을 구축해 딸기와 잎채소를 일본 본토로 들여오는 사업을 테스트 중입니다. 한국도 충분히 가능한 모델입니다. 중동은 전력 비용이 낮고, 물을 바닷물을 정수해서 쓰기 때문에 운영비가 훨씬 낮습니다. 한국 기업이 기술·브랜딩·유통을 담당하고, 생산은 해외에서 하는 구조가 오히려 더 경쟁력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 공장형 농업이기 때문에 품질 관리가 산업화 수준으로 정교해집니다. 예를 들면 “당도 10±0.2 수준의 딸기”, “아삭함 80% 이상 유지되는 상추”, “씹힘 밀도 3단계의 로메인” 같은 식으로 작물의 물성 자체를 기계적·데이터적 기준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됩니다. 이건 전통 농업에서는 불가능했던 영역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유명 레스토랑들은 특정 수직농장과 독점 계약을 맺고 자신만의 작물 프로필을 생산하는 시대가 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우리 식당의 샐러드는 특정 농장의 2단계 광량·3단계 바람·칼슘 농도 1.5배 증가 식단에서 나온 상추를 씁니다” 같은 식의 완전히 새로운 퀄리티 경쟁이 가능합니다. 이건 미식·식자재 시장 자체를 재편할 수 있는 흐름입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식물공장이 기존 농업을 대체하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관점은 “공존”입니다. 식물공장은 완전히 새로운 공급망을 만드는 기술이지만 전통 농업이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다만 앞으로는 밭·비닐하우스·수직농장이 각각 역할을 맡는 구조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통 농업은 광범위한 토지를 활용한 저렴한 대량 생산에 적합하고, 식물공장은 고부가·신선·고품질·기후 리스크가 큰 작물에 집중합니다. 두 모델은 충돌이 아니라 분업입니다. 이 분업 구조가 구축되면 도시의 식탁은 더 안정되고, 인류는 기후 변화에 덜 흔들리며, 기업은 더 예측 가능하고 효율적인 공급망을 갖게 됩니다.
결국 이 모든 변화를 관통하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생산된 것을 먹게 될까?”
2035년쯤 되면 이 질문의 답이 훨씬 명확해질 겁니다. 자연을 기반으로 한 전통 농업과 기술을 기반으로 한 식물공장이 조화롭게 공존하며, 식량 생산이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데이터 기반의 예측 가능한 산업’으로 완전히 이동하는 시대. 그때의 식탁은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더 다양한 선택지가 생겼으며, 가격 변동에 휘둘리지 않는 구조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식물공장은 농업의 미래이자 도시의 미래이고, 식품 산업의 혁신이자 국가 전략이 될 것입니다. 지금 조용히 성장하는 이 산업이 앞으로 5~10년 안에 가장 큰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테마를 지금 미리 들여다보는 건 생각보다 훨씬 큰 인사이트를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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