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조 원 규모의 이재명 정부 첫 예산안이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
확장 재정 기조에 따라 올해 본예산보다 8.1% 늘어난 정부 예산안을 원안대로 유지하기로 여야가 합의한 데 따른 것
여야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
국회가 법정 시한(2일) 내에 예산안을 처리한 건 2020년 이후 5년 만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된 2012년 이후 예산안이 법정 시한 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2014년과 2020년 등 두 차례뿐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만나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서 4조3000억 원을 감액하는 대신 총지출이 정부안인 728조 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증액하는 합의문에 서명
김 원내대표는 “예산 총액을 온전하게 지켜냈다”며 “민생 회복과 미래 성장을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의지”
송 원내대표는 “민생예산이 중요하기에 예산안을 기한 내 처리하기 위해 대승적으로 합의했다”
이날 처리된 예산안에는 1조1500억 원 규모의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지원과 1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등 이재명 정부 핵심 국정과제 예산이 그대로 유지
국민의힘이 삭감을 주장했던 대통령실 특수활동비 82억5100만 원도 원안대로 예산안에 포함
그 대신 여야는 대통령실 운영비를 1억 원 삭감
또 국민의힘이 ‘방만 편성’이라고 지적해온 인공지능(AI) 예산 10조 원 중 2064억 원이 감액 대상에 올랐음
여야는 또 한미 관세협상에 따른 대미 통상 대응 프로그램 예산 1조9000억 원을 감액하고 한미전략투자공사에 대한 출자예산 1조1000억 원을 예산에 반영하기로 했음
관세협상 타결 이전 정해진 정부안에 협상 결과를 반영해 조정한 것
이와 함께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재해복구 시스템 구축과 분산전력망 사업 육성, 도시가스 공급 배관 설치 지원, 국가장학금 지원 등의 예산은 증액하기로 했음
여야는 이날 본회의에서 배당소득 분리과세와 법인세·교육세 인상 등 예산부수법안도 함께 처리
이에 따라 내년부터 연 2000만 원이 넘는 배당소득을 받을 경우 최대 45%의 금융종합소득세 대신 14∼30%의 별도 세율이 적용
또 법인세는 최고 세율이 24%에서 25%로 오르는 등 4개 과표구간에 따라 적용되는 세율이 각각 1%포인트씩 인상되면서 25%의 최고 세율이 적용
여야가 728조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합의 처리한 것은 쟁점 사업별 증감액 조정 과정에서 한 발씩 물러나 접점을 찾았기 때문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첫 예산안을 5년 만에 법정시한 내 합의로 통과시키기 위해 야당이 요구한 대통령실 운영비와 인공지능(AI) 지원 예산 등 감액을 받아들였음
반면 ‘이재명표 예산’ 대규모 감액을 고수했던 국민의힘은 확장 재정으로 편성된 내년도 예산의 총액 규모 순증을 막고 보훈유공자 수당 등 일부 예산을 증액하는 선에서 합의했음
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에 따르면 내년도 예산안에서 여야가 합의한 감액 규모는 4조3000억 원임
여야는 감액과 같은 액수로 각자 요구해 온 예산을 증액하는 데에도 합의했음
올해 본예산보다 8.1% 늘어나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2년(8.1%)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인 예산 규모를 정부 원안대로 유지하기로 한 것임
주요 감액 항목은 AI 지원 예산, 정책펀드, 예비비 등임
AI 지원 예산은 전체 약 10조 원 중 국민의힘 요구에 따라 약 2064억 원을 감액
앞서 국민의힘 예결위 위원들은 AI 관련 예산으로 편성됐지만 실제 AI 연구개발 또는 활용과 거리가 먼 ‘무늬만 AI’ 예산이 많다고 지적하며 1조2000억 원 규모 삭감을 요구한 바 있음
또한 투자처 중복 등을 이유로 총 3조5421억 원 규모의 정책펀드 예산 중 3200억 원이 감액됐음
민주당 예결위 간사인 이소영 의원은 “AI 지원 예산은 개별 사업 자체가 없어진 건 아니고, (개별 사업 예산이) 1000억 원이라고 하면 그걸 900억 원으로 하는 식으로 (각각) 조금씩 깎은 것”이라고 설명했음
대통령실 운영비도 1억 원 삭감
국민의힘은 그간 “지난해 민주당이 대통령실과 검찰 특활비를 전액 삭감했다”며 “내년도 예산안에 편성된 대통령실 특활비 82억1500만 원을 전액 삭감하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음
국민의힘 박형수 예결위 간사는 “특활비 삭감 의미를 운영비 1억 원 삭감하는 데 담기로 했다”고 했음
정부안에 1조9000억 원 규모로 편성됐던 대미 투자지원 정책금융 패키지는 약 8000억 원이 삭감된 1조1000억 원으로 확정
대출 또는 보증 형태로 기업의 대미 투자를 지원하는 이 예산은 당초 한국수출입은행·한국산업은행·한국무역보험기금 등 3개 기관 지원액을 합쳐 편성했으나, 한미 관세 협상 결과에 따라 신설되는 한미전략투자공사 예산으로 반영됐음
예결위 관계자는 “정부안은 관세 협상의 방향성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여유 있게 편성한 금액이기 때문에 규모를 줄여 반영했다”고 설명했음
여야는 각자 필요에 따른 증액분도 합의안에 반영
민주당은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재해복구시스템 구축과 분산전력망 산업 육성, AI 모빌리티 실증사업 등에 투입되는 예산을 늘렸고 국민의힘은 도시가스 공급배관 설치 지원, 국가장학금 지원, 보훈유공자 참전명예수당 등을 증액했음
대통령실, 첫 예산안 합의 통과 의지 강해
이날 여야가 내년 예산안을 합의 처리할 수 있었던 배경엔 이재명 정부 첫 예산안을 신속히 통과시키고자 하는 정부·여당의 의지가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옴
예결위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실이 예산안을 합의 통과시키겠다는 의지가 강했다”며 “야당 측 요구를 대폭 수용하더라도 협상에 속도를 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설명했음
민주당 원내 지도부는 예산 총액과 핵심 국정과제 관련 예산을 지킨 점을 성과로 강조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재명 정부의 첫 예산안이 핵심 국정과제 감액 제로(0), 총액 유지, 여야 합의 그리고 법정기한 내 처리라는 4가지 성과를 동시에 달성한 것은 정말 다행”이라고 강조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예산안 단독처리 가능성을 거론하며 압박하는 가운데 민생 예산 처리를 위해 합의에 응했다고 밝혔음
송언석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다수당이 폭거를 일삼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민생 예산이 중요한 점이 있기 때문에 대승적으로 합의했다”고 했음
재정건전성 부담
이재명 정부의 첫 예산안이 여야 합의로 정부안 대비 증액 없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재정 건전성 부담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임
내년도 예산안 증가 폭이 역대 최대인 데다 현 정부의 ‘초확장재정’ 기조에 국가채무비율이 지속적으로 늘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
국회 예산정책처와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내년도 예산안의 총지출은 728조 원으로 올해 본예산보다 54조 7000억 원(8.1%) 증가
증가율로는 역대 일곱 번째지만 증가액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
이는 재정 중독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문재인 정부의 2022년(49조 7000억원) 증가 폭을 뛰어넘는 액수이기도 함
익명을 요청한 한 재정 전문가는 “기존 정부 예산안의 규모가 워낙 컸던 만큼 그 테두리 안에서 국회 여야 의원들 간 밀고 당길 여지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며 “추가 증액이 없을 뿐 매머드급 예산안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지적
더 큰 문제는 정부가 거둬들이는 돈보다 씀씀이가 크다 보니 나랏빚은 해가 갈수록 쌓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임
세수 부족분은 대규모 적자국채를 찍어내며 메꾸는 실정
이로 인해 지난해 1175조 원 규모였던 국가채무는 올해 두 차례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여파로 1300조 원을 돌파한 데 이어 내년 1400조 원까지 훌쩍 넘어설 것으로 전망
이에 따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올해 말 49.1%에서 내년 말 51.6%로 치솟게 된다는 추산
이 비율이 50%를 돌파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
이런 확장재정 기조 속에 저성장이 지속될 경우 이재명 정부 임기가 끝나는 2030년 국가채무비율은 비기축통화국의 재정 건전성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60%에 육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음
앞서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공개한 연례협의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에 대해 “대내외 충격 탓에 수년째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실질 GDP 성장률을 감안해 한시적인 확장재정이 필요하다”면서도 “잠재성장률 회복 이후에는 물가 상승 압력 등을 고려해 재정 정책 기조를 조정해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음
예정처 역시 “향후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의무지출 증가에 대응하고 재량지출에 대한 구조조정을 지속해야 한다”고 지적
국회가 역대급 확장재정에 제대로 브레이크를 걸지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옴
한 정치권 관계자는 “야당이 재정 운용을 방만하게 한다고 날을 세웠으나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구 민원성 사업과 선심성 돈 풀기에 마냥 반대만 할 수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음
<시사점>
여야가 728조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에 근 마찰 없이 합의했습니다. 우선 재정 확대가 갖는 단기적 긍정 효과는 어느 정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확장 재정은 트럼프 관세로 인한 수출 변동성과 경기 하방을 막는 주요한 완충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AI·반도체·바이오 등 미래 전략 산업 예산 확대는 한국 경제에 필요한 ‘투자형 재정’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SOC·주거·고용정책은 내수와 소비를 떠받치는 역할을 할 전망입니다. 취약계층 지원 강화 역시 사회적 안전망을 보완해 최소한의 민생 안정 기능을 수행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확장 재정이 단기 경기 방어와 미래 성장 기반 조성이라는 두 축에서 일정한 긍정적 파급효과를 기대하게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이번 예산안은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타협 속에서 지출 증가만 부각됐을 뿐, 그 지출을 뒷받침할 구조개혁과 재정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실종되었습니다. 정치적 부담을 나누기 위한 타결이었지, 재정 개혁을 위한 타결은 아니었다는 평가를 해 볼수 있습니다.
국가채무는 내년 1,413조 원으로 사상 처음 1,400조 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고,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사상 처음으로 50%대를 돌파한 51.6%에 이를 전망입니다. 관리재정수지 적자와 국채 발행 규모는 이미 경고선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내년 적자국채 발행만 110조 원에 달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상황에서, ‘확장 재정의 효과’보다 ‘재정건전성의 훼손’이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의 고령화 속도와 부채 증가세를 우려하며 “중장기 재정 지속 가능성에 구조적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2050년 최고 130%로 상승). 내년에 선진국(특히 프랑스) 가운데 조만간 재정위기를 겪는 국가가 나타날 수 있다는 이코노미스트지의 국제 분석도 더 이상 과장이 아닙니다. 성장 둔화와 고령화라는 구조적 압박을 고려하면, 지금처럼 지출 중심의 예산 편성은 ‘지속성’이라는 핵심 원칙을 위협합니다.
물론 확장 재정은 경기 사이클을 고려할 때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확장 재정과 재정 무책임은 다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재정 확대 자체의 찬반이 아니라, 증가한 지출이 미래세대의 부담이 되지 않도록 복지·연금·조세 시스템의 전면적 재설계와 지출 우선순위 조정을 병행하는 일입니다.
정치권은 예산안 합의가 ‘민생을 위한 결단’이라 주장하지만, 그 민생을 지속시키기 위해 필요한 구조개혁은 철저히 회피했습니다. 확장 재정이 경기 대응 효과를 발휘하려면 재정의 체력과 신뢰가 전제돼야 하는데, 지금과 같은 적자 확대·채무 증가 흐름이 지속된다면, 한국은 단기 경기 부양을 얻는 대신 미래세대에 더 큰 부담을 남기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단기 효과에 취해서는 안됩니다. 재정의 본질은 ‘현재의 만족’이 아니라 ‘국가의 지속성’입니다. 정치권은 확장 재정의 명분 뒤에 숨지 말고, 재정건전성 회복을 위한 구조개혁이라는 보다 어려운 숙제에 응답해야 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출의 양이 아니라, 국가재정의 질을 높이는 결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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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news.naver.com/article/newspaper/020/0003678917?date=2025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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