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투자 사이클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전례 없는 속도로 확대되는 가운데, 2008년 금융위기를 예견했던 마이클 버리가 최근 헤지펀드 등록을 취소하고 별도의 뉴스레터를 통해 ‘AI 버블 경고’를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버리라는 이름이 시장에 던지는 메시지는 언제나 무게감이 있습니다. 단순히 과거의 명성 때문이 아니라, 그의 분석이 항상 “과열의 구조”를 정확하게 짚어냈기 때문입니다. 이번 경고 역시 감정적인 표현이 아니라, 현재 기업들의 재무 구조와 투자 행태를 면밀하게 관찰한 뒤 나온 분석이라는 점에서 투자자라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입니다.


요즘 시장은 AI에 대한 낙관론이 주류입니다. GPU, 데이터센터, HBM 반도체, AI 모델, 생성형 서비스까지 모든 영역에서 기대감이 폭발하고 있습니다. 많은 기업이 “AI를 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압박 속에서 투자를 늘리고 있으며, 투자 속도는 실적 개선 속도보다 더 빠르게 치솟는 중입니다. 버리는 바로 이 ‘속도 이상 현상’과 ‘구조적 괴리’를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AI 투자의 대세 흐름 속에서 시장 전체가 흥분해 있지만, 실제 기업의 재무 구조를 들여다보면 몇 가지 우려해야 할 조짐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최근 글로벌 빅테크의 CAPEX는 과거 어느 시기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AI 서버 한 대의 가격은 억 단위에 이르고, GPU를 수천·수만 장씩 묶은 AI 클러스터를 구축하려면 기업당 연간 수조 원의 지출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데이터센터 전력·냉각·광통신 장비·고대역폭 네트워크까지 포함하면 총투자 규모는 상상 이상입니다. 문제는 이 막대한 비용이 회계상에서는 감가상각으로 나누어 반영되기 때문에, 기업의 실제 비용 부담이 당장 실적에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겉으로는 영업이익이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현금흐름표를 보면 투자 부담이 빠르게 쌓이고 있는 기업들이 있습니다. 버리는 이 현상을 ‘착시’라고 표현합니다.


1999~2000년 닷컴 버블과 현재의 가장 큰 유사점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당시 기업들은 미래 가치를 명분으로 막대한 투자를 이어갔지만 실제 수익을 내는 기업은 소수였습니다. 지금의 AI 투자 환경에서도 비슷한 구조가 관찰됩니다. 누구나 “AI 시장은 앞으로 커진다”고 말하지만, 어떤 기업이 그 시장을 독식할 수 있을지는 아직 불분명합니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시장 점유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과도한 속도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격적 투자’는 경쟁 기업 수가 많을수록 더 심해지고, 재무적 부담은 그만큼 커지게 됩니다. 버리가 말한 AI 버블의 핵심은 단순한 과열이 아니라, “수익 모델이 뚜렷하지 않은 상태에서 투자 속도만 지나치게 빠른 상태”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버리가 AI 산업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AI가 장기적으로 산업 혁명의 중요한 축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AI는 분명 수십 년 단위의 구조적 성장 산업입니다. 다만 모든 기업이 살아남는 산업은 아니라는 점도 명확합니다. 오늘날 AI 시장은 GPU·데이터센터 운영·모델 경쟁력·서비스 플랫폼·인프라 공급·전력 인프라 등 여러 영역이 한꺼번에 연결된 구조입니다. 이 중 수익성이 좋은 분야는 극히 제한적이며, 나머지는 ‘고비용·저수익’이라는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버리가 경고하는 기업군이 바로 이런 회사들입니다.


최근 가장 흥미롭게 관찰되는 지점은 감가상각의 급증입니다. 감가상각은 회계적으로 비용 처리를 분산시켜 당장 이익을 높이는 효과를 갖습니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실제로 막대한 자본 지출이 이미 발생한 상태입니다. 특히 AI 서버, GPU 장비, 패브릭 네트워크, 전력설비, 냉각 장비는 모두 짧은 주기로 재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비용이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현금흐름이 버티지 못하는 기업이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투자자에게 중요한 것은 영업이익이 아니라 ‘실제 현금흐름이 얼마나 건강한가’입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전력입니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은 “전력을 제때 확보하지 못하면 AI 서버 가동이 어려울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습니다. 이는 단기 우려가 아니라 구조적 리스크입니다. AI 데이터센터는 전력 소비량이 전통 데이터센터의 2~3배에 달합니다. 전기 공급이 제한되면 GPU가 아무리 있어도 서버는 ‘돌릴 수 없는 자산’이 됩니다. 이 문제는 냉각 기술과도 연결됩니다. 공랭식 냉각으로는 고도화된 AI 서버를 감당할 수 없어 수랭식·액침식 냉각, 혹은 DLC 같은 고효율 기술이 필요합니다. 냉각 장비는 초기 비용뿐 아니라 운영비도 상당하기 때문에 기업들의 비용 부담은 점점 커지게 됩니다.


이처럼 AI 인프라 구축이 고비용 구조를 띠는 상황에서, 모든 기업이 성공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지나친 낙관입니다. 투자자라면 AI 산업 내에서도 수혜 기업과 비수혜 기업을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AI의 필수 구성 요소입니다. HBM을 중심으로 한 고대역폭 메모리 시장은 구조적으로 수요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HBM 시장 1위 기업으로 공급 부족과 가격 인상 효과를 누리고 있으며, 삼성전자 역시 AI 서버용 DRAM과 3나노 시장 확대를 기반으로 실적 개선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기업은 AI 투자 과열과 관계없이 중장기적으로 구조적 성장을 이어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반대로 AI를 ‘사용자’ 관점에서 접근하는 기업들은 상황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높은 비용을 감수하며 AI 서비스를 확장하려 하지만 명확한 수익 모델이 없는 기업은 조정 위험이 큽니다. 실제로 최근 미국 시장에서도 AI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실적 기여도가 낮은 기업들이 큰 변동성을 보였습니다. 투자자들이 ‘AI 테마’로 접근했지만, 기업이 실제 수익을 보여주지 못하자 주가는 빠르게 반응했습니다. 결론적으로 AI 시대의 투자는 ‘AI라는 키워드’가 아니라 ‘AI로 돈을 벌 수 있는 기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투자자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입니다. 단기적으로는 시장이 조정 받을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버리의 메시지는 시장 심리에 영향을 주고, 과열 구간에 있던 종목들은 조정을 받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하지만 조정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닙니다. AI는 구조적 성장 테마이기 때문에 단기 조정은 오히려 좋은 기업을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기회는 ‘실적 기반 기업’에 한정됩니다. 구조적 성장을 이끄는 기업은 조정을 빠르게 회복하지만, 비용 구조가 불안한 기업은 더 깊은 하락에 빠질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AI 공급망의 구조입니다. AI 공급자는 GPU, HBM, 광통신 부품, 냉각 장비, 전력 인프라 등 인프라 전반을 공급하는 기업들입니다. 이들은 AI 투자가 지속될수록 수요가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구조를 갖습니다. 반면 AI 사용자 기업은 경쟁 심화, 서비스 수익성, 모델 개발 비용, 인프라 비용 등 여러 요인에 의해 성과가 달라집니다. AI 산업은 ‘인프라 기업이 원초적 수혜를 받는 구조’이므로 장기적으로 더 안정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AI는 여전히 핵심 테마입니다. 제조, 금융, 헬스케어, 국방, 교육, 모빌리티 등 다양한 산업에서 AI는 구조적 변화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노동 생산성 향상과 산업 효율성 개선도 확실합니다. 따라서 AI에 대한 장기 투자를 부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지금은 ‘속도 조절 구간’에 들어선 시점이며, 투자자들은 기업별 구조를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익 모델 없이 투자만 확대하는 기업은 위험하고, 실적에 기반해 AI 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기업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버리의 경고는 ‘AI 시대의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 현실을 냉정하게 보라’는 메시지입니다. AI는 지속 가능한 메가트렌드이지만, 모든 기업이 그 혜택을 동일하게 누릴 수는 없습니다. 투자자는 AI 투자 사이클의 구조적 위험과 기회를 구분하고, 재무 구조와 실적 기반의 건강한 기업을 선택해야 합니다. 결국 시장은 기술적 내러티브가 아니라 실적으로 움직입니다. 버리는 이 기본 원칙을 다시 상기시켜주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