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말인 지금, 전 세계 소비 시장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은 더 이상 경기나 물가 같은 전통적인 변수들이 아닙니다. 시장조사기관과 리테일 기업들의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소비의 방향을 결정하는 진짜 축은 점점 더 숫자가 아니라 사람들의 ‘심리’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금리와 환율, 실업률과 같은 거시 지표가 예전만큼 직접적으로 소비를 설명해주지 못하고, 대신 “요즘 사람들, 왜 이렇게까지 쓰지?”, “왜 여긴 불황이 아닌 것 같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감정에서 시작되는 흐름이 강해진 것입니다. 특히 2023년 이후 축적된 소비 데이터를 보면, 2025년의 소비경제는 이미 상당 부분 ‘리벤지·보복·보상 소비’라는 감정의 구조 안에서 재편돼 있습니다. 그리고 2026년을 향해 가는 이 시점에, 이 감정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앞으로의 시장을 읽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 변화를 이해하려면 먼저 코로나 시기부터 이어진 심리의 궤적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강제적인 이동 제한과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 사람들은 여러 해 동안 여행, 외식, 문화생활, 패션 소비를 크게 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억눌렸던 욕구는 단순한 “아껴야지”가 아니라 “이만큼 참았으니 나중에는 더 쓰겠다”라는 반대 방향의 에너지를 키워왔습니다. 그래서 제약이 풀리자마자 폭발한 것이 바로 ‘리벤지 소비’입니다. 그동안 못 갔던 곳에 한꺼번에 가고, 미뤄왔던 지출을 한 번에 터뜨리며, 일종의 회복 의식을 치르는 듯한 소비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이 패턴은 “보복”에서 “보상”으로 성격이 바뀌었습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보다,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 수고비, 위로의 성격이 강해졌습니다. 지금의 소비는 이 보상 심리가 일상화된 단계라고 보시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한국 시장은 이 흐름이 특히 선명하게 나타나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2024~2025년 동안 우리는 여러 번 “경기는 어렵다는데 소비는 왜 이렇게 뜨겁지?”라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고금리·고물가 환경임에도 일본·동남아 여행 예약은 계속해서 신기록을 갈아치웠고, 항공권 가격이 코로나 이전의 두 배에 가까워진 시점에도 주말 항공편은 매진이 일상이 됐습니다. 명품 매장에서는 가격 인상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오픈런 줄이 줄어드는 속도는 매우 느렸습니다. 패션·스포츠·키즈·리빙 카테고리에서 프리미엄 라인과 한정판 상품은 오히려 더 빨리 소진됐고,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는 특정 브랜드가 오픈 직후 완판되는 모습이 반복됐습니다. 전통적인 논리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들이지만, “지금 나의 수고와 스트레스를 견디게 만드는 건 이런 작은 보상뿐”이라는 심리로 보면 무척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이 감정 기반 소비는 가격 탄력성을 약화시키는 특징을 보입니다. 예전에는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면, 지금은 “값이 오른다는 건 그만큼 갖기 어려운 것이라는 의미고, 그 희소성이 나의 만족감을 더 키워준다”는 식의 심리가 작동합니다. 특히 명품과 리셀 스니커즈 시장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몇 년 사이에 가격이 크게 오른 제품들이 여전히 품절을 반복하고, 심지어 정가보다 더 비싼 중고 가격에도 거래가 붙습니다. 소비자는 이제 ‘가성비’보다는 ‘가심비’를 먼저 따지는 쪽으로 기울었고, “내가 이걸 샀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만족감이 지출의 핵심 이유가 됐습니다. 이 감정은 한 번 형성되면 잘 꺼지지 않기 때문에, 전체 경제가 흔들려도 특정 카테고리 소비는 계속 강하게 유지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패션·뷰티 시장은 이런 구조 변화를 가장 먼저 반영한 산업입니다. 과거에는 가격과 품질, 브랜드 인지도가 주요 변수였다면, 지금은 “이 브랜드가 나를 어떻게 표현해주는가”가 최전선의 기준입니다. 무신사, 젝시믹스, 안다르 같은 브랜드가 단순한 온라인 쇼핑몰이나 기능성 레깅스 브랜드를 넘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도 이런 배경입니다. 사람들은 옷을 고를 때 디자인뿐 아니라 그 브랜드가 가진 세계관, SNS에서의 이미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함께 고려합니다. 그래서 “헬린이 룩”, “하이틴 무드”, “꾸안꾸 출근룩”, “테니스 코어” 같은 키워드가 단순 유행어를 넘어서 하나의 정체성 영역처럼 취급되고 있습니다. 소비자는 그 영역에 들어가는 순간, 단순히 옷을 산 것이 아니라 특정 무드와 커뮤니티에 진입한다고 느낍니다.


이 흐름은 키즈 패션과 키즈 스포츠 시장에서 더 극적으로 나타납니다. 3040 부모 세대는 자신이 어린 시절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아이에게는 꼭 해주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가방을 하나 사더라도 “얼마나 오래 쓰느냐”보다 “아이의 어깨에 멜 때 얼마나 예뻐 보이느냐”, “학교에서 친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아이 스스로가 얼마나 자신감을 느끼는지”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됩니다. 스키복, 테니스복, 축구 유니폼 같은 제품도 마찬가지입니다. 겨울 스포츠 학원에 다니는 아이에게 기능적으로만 충분한 옷을 입히기보다, 사진과 영상으로 남겼을 때 ‘한 컷’이 잘 나오는 제품을 찾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부모의 소비는 아이의 경험이자 곧 ‘가족의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이 영역에서는 가격이 다소 높더라도 감정적 만족도가 확실하다면 구매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여행·레저 소비는 코로나 이후 가장 강한 ‘리벤지’와 ‘보상’이 교차하는 카테고리입니다. 2025년 내내 우리는 일본·유럽·동남아 여행 수요가 고금리·고환율 속에서도 좀처럼 꺾이지 않는 모습을 봤습니다. 가족 여행을 떠나는 3040세대에게 여행은 단순한 휴가가 아니라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유한한 시간에 대한 투자”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연차를 어렵게 써서 떠나는 3~4일의 여행이니만큼 숙소, 식당, 액티비티를 고를 때 가격보다 기억에 남을 만한 경험을 우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프리미엄 리조트, 테마파크, 키즈 프로그램이 잘 갖춰진 곳이 매우 높은 선호를 얻고 있고, 이런 시설에 대한 예약은 경기와 관계없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몸은 힘들어도 “이번 한 번 정도는”이라는 심리로 항공권과 호텔을 결제하고, 그 기억을 사진과 영상으로 남겨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계속 감정적 보상을 받습니다.


감정 기반 소비의 또 다른 축은 ‘힐링·웰니스’입니다. 수면 관련 상품, 건강기능식품, 홈트·요가·명상 관련 구독 서비스, 홈스파 용품 같은 카테고리가 계속 성장하는 이유는 단순히 건강 염려가 커졌기 때문이 아니라, 정신적 피로를 상쇄해줄 무언가가 필요해서입니다. 일과 육아, 노후 준비, 집값과 물가에 대한 불안이 동시에 눌러오는 시대에,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이 정도는 써도 된다”는 허가를 자주 내립니다. 좋은 침구와 숙면템을 사면서 “잠이라도 잘 자야 버틴다”며 합리화하고, 비싼 PT나 필라테스에 투자하면서 “이 정도는 나한테 주는 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감정입니다. 이 지출이 나의 죄책감을 줄여주고, 죄책감을 줄이는 과정이 다시 자신을 지탱해주는 힘이 됩니다.


이러한 감정 소비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경계를 다시 흐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한동안 온라인 최저가가 절대 기준처럼 여겨졌다면, 지금은 “내가 신뢰하는 채널”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라이브 방송에서 호스트의 설명을 들으며 구매했을 때, 작은 사은품이나 빠른 응대로 기분 좋은 경험을 했을 때, 사람들은 그 채널에 정서적인 친밀감을 느끼고 반복 구매를 합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원이 친절하게 스타일을 추천해주고, 아이와 함께 방문했을 때 기다릴 수 있는 작은 놀이 공간이나 포토존이 잘 마련돼 있다면, 그 매장은 단골을 확보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브랜드는 단순한 판매자가 아니라 감정 경험을 설계하는 큐레이터에 가깝게 변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감정 기반 소비가 기업의 전략과 재무구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제품 경쟁력→마케팅→판매의 일방향 구조였다면, 지금은 커뮤니티와 감정이 먼저 형성되고 그 안에 제품을 얹는 구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브랜드는 먼저 SNS에서 세계관과 분위기를 만들고, 팬층을 확보한 뒤에 제품을 확장합니다. 한 번 감정적으로 연결된 고객은 가격 인상이나 작은 불편에도 쉽게 떠나지 않고, 오히려 브랜드의 성장과 함께 자신이 성장한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이 점에서 감정 기반 소비는 브랜드에게 일종의 “무형 자산”을 축적하게 해주는 구조입니다. 숫자로는 완벽히 설명되지 않지만, 이 자산을 가진 브랜드와 그렇지 않은 브랜드의 밸류에이션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2025년 말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이 감정 기반 소비는 단기 유행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에 가깝습니다. 앞으로 경기 사이클이 어떻게 움직이든,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나는 나를 위해 쓸 자격이 있다”는 인식이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경제적 여건이 어느 정도 갖춰진 3040세대는 돈을 쓸 때 예전처럼 죄책감만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와 가족의 삶의 질을 지키기 위한 필수 방어 수단이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인식이 유지되는 한, 감정이 강하게 개입되는 카테고리(패션, 키즈, 여행, 명품, 웰니스, 취미, 레저)는 공급 측 요인이나 단기 변동에도 비교적 탄탄한 수요를 유지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소비가 영원히 뜨겁다는 뜻은 아닙니다. 감정 기반 소비 역시 한계는 존재하고, 특히 중저가 일상 소비나 대형 내구재(자동차, 부동산 등)에서는 여전히 거시경제 변수의 영향력이 큽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시장을 분석할 때 “어느 카테고리가 숫자보다 심리의 영향을 더 받는지”, “어떤 브랜드가 감정 자산을 더 많이 쌓아가고 있는지”를 먼저 구분해서 보는 시각입니다. 같은 산업 안에서도 감정 자산이 많은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실적 격차는 앞으로 더 벌어질 수 있고, 주가에서도 그 차이가 점점 더 크게 반영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투자 관점에서 보면, 숫자만 잘 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브랜드는 어떤 감정을 팔고 있는가, 그 감정은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해지는 시점입니다.


결국 2026년을 향해 가는 지금, 소비를 이해하는 가장 현실적인 키워드는 ‘심리’입니다. 사람들은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기억, 경험, 자존감, 보상, 힐링을 사고 있습니다. 브랜드는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설계하고, 플랫폼은 가격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무대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구조를 먼저 이해하면, 개별 업종과 기업을 보더라도 숫자 뒤에 숨은 진짜 동력을 훨씬 명확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경제는 점점 더 인간에 가까워지고 있고, 소비는 그 변화의 최전선에 서 있습니다. 이제 시장을 보는 우리의 눈도 매출과 이익에 더해 “사람들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함께 읽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