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를 보실 때 가장 먼저 짚어봐야 할 지점은, 겉으로 보이는 성장률보다 안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체질 개선입니다. 2025 회계연도 4분기와 연간 실적을 보면 매출은 약 944억 달러 수준으로 전년 대비 대략 3% 성장에 그쳤지만, 이익과 현금흐름은 훨씬 빠른 속도로 좋아지고 있습니다. 4분기 매출은 약 224억 달러로 시장 컨센서스를 소폭 밑돌았고, 연간 기준으로도 직전 몇 년처럼 화려한 매출 확장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조정 주당순이익(Adjusted EPS)은 연간 기준으로 약 20% 가까이 증가했고, 최근 3년 기준으로는 연평균 19% 성장이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자유현금흐름도 100억 달러를 넘기며 팬데믹 이후 가장 견조한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숫자만 놓고 보면 “매출은 평범한데, 돈 버는 체력은 훨씬 좋아졌다”는 한 줄 요약이 가능합니다.


사업부별로 찬찬히 뜯어보면 그 구조 변화가 더 또렷해집니다. 엔터테인먼트 부문(영화, TV, 라이선싱 등)은 연간 매출이 소폭 증가했지만 4분기 기준으로는 전년 동기보다 매출과 이익이 모두 빠졌습니다. 대형 영화 라인업의 흥행 편차, 전통 TV 채널(케이블·지상파)의 구조적 역풍이 동시에 영향을 준 모습입니다. 스포츠 부문은 ESPN을 중심으로 연간 영업이익이 약 20% 늘며 버팀목 역할을 했지만, 4분기에는 비용 증가 영향으로 이익이 약간 줄었습니다. 반대로 가장 눈에 띄는 쪽은 체험(Experiences) 부문입니다. 테마파크·리조트·크루즈를 포함한 이 부문은 2025 회계연도 전체 매출이 6% 성장해 360억 달러를 넘겼고, 영업이익은 100억 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4분기만 놓고 봐도 매출은 약 87억 달러, 영업이익은 약 19억 달러로 각각 6%, 13%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미국 내 테마파크는 입장객이 약간 줄었는데도 1인당 지출 상승과 호텔·크루즈 호황 덕분에 전체 이익이 9% 늘었고, 국제 파크·리조트는 영업이익이 25%나 증가했습니다.


디즈니 전체로 보면 테마파크를 포함한 Experiences 부문은 더 이상 “부수입 사업”이 아니라, 회사의 핵심 캐시카우이자 다른 사업(콘텐츠·스트리밍)을 지탱하는 기둥이 됐습니다. 글로벌 테마파크 업계 데이터를 보면, 2024년 전 세계 주요 25개 테마파크의 합산 방문객은 약 2억 4,600만 명으로 전년 대비 2.4% 증가했는데, 이 가운데 디즈니가 운영하는 파크들이 1억 4,500만 명을 끌어모았습니다. 이는 전년보다 1.2% 늘어난 수치로, 여전히 세계 1위 테마파크 사업자라는 타이틀을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국가·파크별로 조금 더 들어가 보면 흐름이 더 재미있습니다. 2024년 기준으로 상하이 디즈니랜드는 방문객이 1,400만 명에서 1,470만 명으로 5% 증가했고, 홍콩 디즈니랜드도 3.3% 늘었습니다. 도쿄 디즈니리조트에서는 도쿄 디즈니랜드 방문객이 1,470만 명에서 1,510만 명으로 2.6% 증가했고, 도쿄 디즈니씨 역시 1,200만 명에서 1,240만 명으로 2.9% 늘었습니다. 일본 내 방문 수요가 거의 성숙 단계에 가까운 시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꽤 의미 있는 성장입니다.


유럽 쪽은 조금 달라서, 디즈니랜드 파리와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파크(현재 리뉴얼 진행 중)는 2024년에 각각 약 1.8%의 방문객 감소를 기록했습니다. 다만 유럽 전체 테마파크·체험 부문 매출은 10% 증가했고, 국제 파크 전체 영업이익도 25% 늘어난 것으로 보면, 가격 인상과 1인당 지출 확대가 감소한 인원을 만회하고도 남는 구조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 본토 파크(매직킹덤, EPCOT, 캘리포니아 어드벤처 등)도 2024년에 0.3~1.3% 수준의 완만한 방문객 증가세를 보였고, 이는 전반적으로 “양보다 질”의 성장 전략이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제 스트리밍(Direct-to-Consumer, DTC) 쪽을 보겠습니다. 최근 분기 기준으로 디즈니+와 훌루를 합친 유료 가입자는 약 1억 9,600만 명, 이 가운데 디즈니+ 단독 가입자는 약 1억 3,200만 명 수준입니다. 한 분기 동안 디즈니+는 약 400만 명 안팎의 가입자를 늘렸고, DTC 부문 매출은 약 8% 증가해 62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Investopedia][6]) 더 인상적인 부분은 이 부문이 3년 전만 해도 연간 40억 달러에 가까운 적자를 내던 사업이었다는 점입니다. 지금은 분기 기준 약 3억 5,200만 달러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확실한 턴어라운드에 성공했습니다.


글로벌 숫자만 놓고 보면 디즈니+는 약 1억 3,000만 명대의 가입자를 보유한 3위권 스트리밍 서비스입니다. 스트리밍 시장 집계 사이트의 데이터 기준으로 2025년 9월 전 세계 디즈니+ 가입자는 약 1억 3,160만 명, 넷플릭스는 약 3억 160만 명,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는 약 2억 명 수준입니다. 그러니까 “규모”만 놓고 보면 넷플릭스에 크게 뒤처져 있고, 프라임 비디오와도 어느 정도 격차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디즈니는 이제 경쟁의 초점을 “가입자 숫자”에서 “가입자당 수익(ARPU)”과 “마진”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콘텐츠 투자비 역시 240억 달러 수준에서 230억 달러 정도로 다소 줄이는 방향으로 조정 중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고, 광고 포함 요금제 확대, 요금 인상, 계정 공유 단속, 번들(디즈니+·훌루·ESPN+ 묶음) 전략을 통해 가입자당 매출을 끌어올리는 데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디즈니뿐 아니라 OTT 업계 전체의 공통된 방향이기도 합니다. 가입자 수가 일정 수준 포화에 가까워지면서 이제는 “얼마나 많이 모았냐”가 아니라 “모아둔 가입자에게서 얼마나 돈을 벌 수 있느냐”가 핵심이 된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 시장을 따로 떼어보면, 디즈니의 고민과 기회가 동시에 드러납니다. 한국에서 디즈니+는 2025년 9월 기준 약 217만 명 정도의 유료 가입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같은 자료 기준으로 넷플릭스가 약 835만 명, 토종 OTT인 티빙·쿠팡플레이·웨이브가 각각 300만~400만 명대의 가입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OTT 시장은 이미 넷플릭스와 로컬 3강(티빙·쿠팡플레이·웨이브) 중심으로 굳어진 구조이고, 디즈니+는 상대적으로 후발주자로서 틈새를 파고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디즈니+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2023년 9월 약 433만 명으로 피크를 찍은 뒤 2025년 초에는 250만 명대 중반까지 내려왔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일시적인 흥행작(한국 오리지널 ‘무빙’ 등)이 있을 때는 크게 치솟지만, 그 이후에는 다시 빠지는 양상이 반복된 셈입니다.


일본에서는 시장 구조가 조금 다릅니다. 2025년 기준 일본 SVOD(정액제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에서 넷플릭스의 점유율이 약 21.7%, U-NEXT가 15%,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12.9%, DAZN 9.7% 수준이고, 디즈니+는 약 8.9%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즉, 일본에서는 디즈니+가 “제법 강한 2군”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애니메이션·캐릭터 IP 시장이 워낙 크고, 디즈니의 기존 브랜드 파워도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한국보다 디즈니+에게 우호적인 시장 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일본 오리지널 애니메이션·드라마, 마블·스타워즈 팬덤, 가족 단위 디즈니 팬층이 두텁기 때문에 ARPU 개선 여지도 상대적으로 큽니다.


한국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디즈니의 한국 OTT 사업은 “시장 지배자”라기보다는 성장 옵션에 가깝습니다. 이미 넷플릭스와 토종 OTT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디즈니+가 한국에서 자리를 넓히려면 몇 가지 과제가 있습니다. 첫째, 로컬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를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입니다. 한국형 디즈니 오리지널(무빙처럼 글로벌에서 통할 만한 작품)을 꾸준히 내놓아야만 가입자 피크 이후 이탈을 막을 수 있습니다. 둘째, 국내 통신사·결제 플랫폼과의 번들 제휴입니다. 한국 소비자들은 통신요금·카드사·멤버십과 묶인 OTT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 지점을 얼마나 잘 풀어가느냐에 따라 한국 내 입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셋째, 가격 전략과 광고형 요금제입니다. 물가·금리 환경을 감안하면, “조금 불편해도 싸게 보는 요금제”와 “광고 없는 프리미엄 요금제”를 어떻게 포트폴리오화할지에 따라 ARPU와 가입자 수의 균형점이 정해질 것입니다.


반대로 일본에서는 이미 꽤 의미 있는 점유율을 확보한 상태라, 향후 과제는 “규모 확대”보다는 “수익성 극대화”에 가깝습니다. 일본 이용자 특성상 애니메이션·캐릭터·라이브 공연·굿즈 구매로 이어지는 소비 패턴이 강하기 때문에, 디즈니 입장에서는 스트리밍을 통해 캐릭터 IP를 강화하고, 이를 도쿄 디즈니리조트 방문과 머천다이징 매출로 연결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더 공고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쿄 디즈니랜드·디즈니씨 방문객이 2~3%씩 완만하게 성장하는 가운데, 온라인에서 팬덤을 키워 오프라인 방문으로 유도하는 전략이 자연스러운 조합입니다.


경쟁사 관점에서 보면, 디즈니는 넷플릭스와 WBD(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 사이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넷플릭스는 2024년 말 기준 전 세계 가입자가 3억 명을 넘겼고, 지역별로도 미국·캐나다 약 9,000만 명, 유럽·중동·아프리카 약 1억 명, 아시아태평양 약 5,700만 명 등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합니다. WBD는 맥스(Max)·디스커버리+ 통합 이후 스트리밍 가입자가 1억 1,000만~1억 2,000만 명 수준으로 올라왔고, 2026년까지 1억 5,000만 명을 목표로 제시한 상태입니다. 넷플릭스는 철저한 스트리밍 원플랫폼·광고형 요금제·계정공유 단속·스포츠 중계 진출 등으로 “플랫폼 그 자체”를 강화하는 전략을 쓰고 있고, WBD는 비교적 공격적인 가격·콘텐츠 라이선스 정책으로 몸집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디즈니의 강점은 “플랫폼 + IP + 테마파크”라는 3단 구조입니다. 콘텐츠 라이브러리만 놓고 보면 넷플릭스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뒤쳐졌다는 평가도 있지만, 디즈니는 그 콘텐츠가 테마파크·리조트·크루즈·머천다이징과 직결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OTT에서 본 캐릭터를 실제 파크에서 만나고, 그 캐릭터가 그려진 굿즈를 구매하며, 다시 새로운 시리즈를 스트리밍으로 보는 경험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룹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 투자자 관점에서 디즈니를 볼 때 가장 큰 차별점입니다. 넷플릭스는 훌륭한 플랫폼이지만, 디즈니처럼 “IP를 현실 세계까지 확장시키는 경험 비즈니스”를 가진 회사는 아닙니다.


물론 리스크도 큽니다. 첫째, 전통 TV(ABC, 케이블 채널 등) 부문은 광고·시청률 하락으로 이익이 계속 줄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유튜브TV와의 송출료 분쟁으로 ESPN·ABC 채널이 끊기며 광고 매출에 타격을 입는 일도 있었고, 그 과정에서 주가가 한때 9% 가까이 급락하기도 했습니다. 둘째, 영화 부문의 흥행 편차도 리스크입니다. 마블·픽사·애니메이션 라인업이 예전만큼 “무조건 대박”인 시대가 아니고, 콘텐츠 제작비는 계속 올라가다 보니 박스오피스에서 조금만 삐끗해도 수익성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셋째, 스트리밍 경쟁이 과열되면서 콘텐츠 투자비를 줄이자니 가입자 성장이 둔화되고, 늘리자니 마진이 깎이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넷째, 국제 파크는 중국 경기 둔화·환율·정치 리스크에 상당 부분 노출돼 있습니다. 상하이·홍콩 디즈니랜드 방문객은 2024년에 각각 5%, 3.3% 늘었지만, 중국 경기의 방향성에 따라 언제든 변동성이 커질 수 있는 구조입니다.


그럼에도 디즈니가 2026년 이후를 자신 있게 보는 이유는 비교적 명확합니다. 회사는 FY26·FY27 두 해 모두 두 자릿수 EPS 성장을 가이드하고 있고, 2026년에만 70억 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하겠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테마파크·체험 부문은 이미 사상 최대 이익을 내고 있고, 스트리밍은 적자 사업에서 흑자 사업으로 전환되었으며, 스포츠(ESPN)도 여전히 탄탄한 캐시카우입니다. 결국 남은 숙제는 전통 TV의 구조 개편, 영화 라인업의 품질 관리, 그리고 스트리밍-테마파크-머천다이징을 하나의 생태계로 더 촘촘히 묶어내는 실행력입니다.


한국 투자자 입장에서 디즈니는 세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미국 상장사로서의 디즈니입니다. 달러 자산 비중을 늘리고 싶고, 글로벌 브랜드·IP·테마파크에 대한 구조적 노출을 가져가고 싶다면 디즈니는 여전히 대표적인 선택지입니다. 다만 주가 레벨과 향후 EPS 성장, 자사주 매입 속도를 같이 봐야 하고, 전통 TV 부문의 구조 개편이 어느 정도까지 진전되는지 체크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디즈니와 협력할 수 있는 한국 기업입니다. OTT용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는 스튜디오·드라마 제작사, 애니메이션·캐릭터 IP 보유 업체, 디즈니 관련 상품을 생산하거나 라이선스를 받는 소비재 기업 등이 간접 수혜 후보가 될 수 있습니다. 디즈니+가 한국에서 넷플릭스만큼의 점유율을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글로벌 콘텐츠 허브로서 한국 오리지널을 전 세계에 유통한다는 전략은 유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셋째, 경쟁 관계에 있는 한국 OTT 기업들입니다. 티빙·쿠팡플레이·웨이브 등은 한국 소비자 입장에서 디즈니+와 동시에 고려되는 서비스입니다. 이들의 가격·콘텐츠·번들 전략과 디즈니+의 대응을 비교해보면, 국내 미디어·콘텐츠 생태계 전체의 방향을 읽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정리하면, 디즈니는 지금 “좋은 때”라기보다 “바뀌는 때”에 서 있습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압도적인 성장주는 아니지만, 테마파크·체험 사업이 꾸준히 실적을 받쳐주고, 스트리밍이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선 시점, 그리고 2026년을 시작으로 다시 한 번 이익 성장 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 분기점입니다.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에서의 스트리밍 전략, 국가별 테마파크 방문객 추세, 콘텐츠 투자비 조정, 그리고 경쟁사 넷플릭스·WBD와의 차별화 전략이 앞으로 2~3년 동안 디즈니의 주가와 기업가치를 좌우할 핵심 변수들이 될 것입니다. 이 지점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단순히 “애들 좋아하는 캐릭터 회사”가 아니라 “IP와 경험, 플랫폼을 동시에 가진 글로벌 인프라 기업”으로 바라보시면 디즈니의 현재와 미래가 조금 더 입체적으로 보이실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