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공개된 2025년 워런 버핏의 주주서한은 그 어느 때보다 담담하고 절제된 문장들로 시작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앞으로는 조금 더 조용해질 것”이라 표현하며, 오랜 시간 자신이 맡아온 자리에서 한 걸음 물러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암시했습니다. 하지만 그 ‘조용함’은 퇴장이 아니라, 버크셔라는 거대한 생태계를 이미 단단한 시스템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자신감에 가까웠습니다. 주주 입장에서 보면, 이번 서한은 단순한 연례 보고서가 아니라 버크셔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진화해 갈지 보여주는 깊은 메시지가 담긴 문서에 가깝습니다. 동시에 글로벌 금융시장과 투자자 심리 전반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버핏의 오랜 경험에서 나온 통찰이 꽤 진하게 묻어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버핏은 버크셔의 본질적 구조를 다시 한 번 강조했습니다. 버크셔는 특정 산업의 유행이나 단기적인 매크로 변화에 흔들리는 회사가 아니라, 미국 경제 깊숙이 박힌 실물 기반 사업들로 묵직하게 구성된 “복합 엔진”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보험, 철도(BNSF), 에너지(Berkshire Hathaway Energy), 제조업 전반 등 어떤 경기 국면에서도 꾸준히 캐시플로우가 발생하는 사업들이 버크셔의 심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이러한 구조는 “시장에 혼란이 올수록 버크셔가 더 강해지는 이유”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2023~2025년 동안 불확실성이 극단적으로 높아진 금융시장을 지켜본 투자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부분이었습니다.
자본 배분 전략에 대한 설명도 매우 중요했습니다. 버핏은 자사주 매입을 단순한 ‘주가 부양 전략’이 아닌 “남아 있는 주주의 지분가치를 본질적으로 높여주는 행위”라고 정리했습니다. 내재가치 대비 시장가치가 낮게 형성된 시기에 버크셔가 공격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해온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버크셔가 앞으로도 비슷한 전략을 유지할 것이며, 이 점은 장기 투자자에게 **버크셔 주가의 하방 안정성을 높여주는 요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즉, ‘떨어지면 버크셔 자신이 사들인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번 서한에서 가장 주목받은 부분은 후계자인 **그렉 아벨(Greg Abel)** 에 대한 평가였습니다. 버핏은 그를 두고 “지칠 줄 모르는 운영자”라 표현하며, 이미 버크셔의 에너지 사업군과 여러 운영 자회사에서 보여준 경영 능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단지 후계자 임명을 넘어, 앞으로 버크셔가 어떤 방식으로 경영될지에 대한 방향성을 은근히 제시한 셈입니다. 버핏이 장기간 다져온 ‘탈(脫)스타 시스템’의 경영 철학—즉, 한 사람의 천재에 의존하지 않고 분권화된 경영 구조 속에서 사업부문별로 자율성을 부여하는 방식—은 아벨 체제에서도 그대로 유지될 것입니다. 버핏은 그 연속성 자체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보고 있으며, 새로운 CEO가 오더라도 버크셔가 급격한 변화를 선택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또한 그는 시장에 대한 시각을 상당히 솔직하게 밝혔습니다. “AI가 대세냐 아니냐” “반도체 사이클이 다시 고점을 향하느냐”와 같은 단기적 기조에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대신, 미국 기업들의 장기 경쟁력이 과거보다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점을 더 진하게 언급했습니다. 특히 제조업의 리쇼어링, AI·반도체·에너지 전환으로 인한 새로운 산업적 축의 등장 등을 두고, 한 산업이 성장할 때에도 버크셔는 그 산업에 직접 베팅하기보다는 안정적인 현금 창출력을 기반으로 시장이 흔들릴 때 기회를 잡는 전략을 밀고 갔다는 점을 재확인했습니다. “군중 심리에 놀아나지 않는 것”이 투자의 핵심이라는 그의 오랜 철학이 다시 한번 강조된 셈입니다.
2025년 주주서한의 메시지를 종합해 보면, 투자자들이 받아들일 핵심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버크셔의 장기적 투자 철학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둘째, 실물 기반 사업과 안정적인 현금흐름은 앞으로도 버크셔의 중심축이 될 것이며, 이 구조는 단기 변동성이 높은 시장에서도 장기적으로 성과를 견인하는 ‘철학적 안전장치’ 역할을 합니다. 셋째, 리더십 전환은 불안 요소가 아니라 버크셔를 더욱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는 시스템적 변화라는 점입니다. 이는 단기 성과 중심의 경영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구조 위에 회사를 세우는 버크셔 스타일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더해, 한국 투자자라면 이 서한의 메시지를 조금 다르게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시장은 미국 시장에 비해 구조적 변동성이 더 크고, 단기 뉴스나 이벤트에 주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버핏의 이번 서한은 한국 투자자에게 “큰 흐름을 보는 투자자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일깨워줍니다. 예를 들어, AI·바이오·2차전지처럼 테마성 급등·급락이 반복되는 한국 시장에서는 장기 현금흐름 기반의 기업 가치 분석이 종종 외면되곤 합니다. 그러나 버핏의 메시지는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고 안정적으로 돈을 버는 구조’가 결국 주가를 끌어올리는 힘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또한 한국 시장의 특성상 개인 투자자의 비중이 높고, 단기 매매가 활발하다 보니 시장 변동성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크게 받습니다. 이때 버핏의 “가격은 순간마다 달라지지만 가치의 본질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철학은 특히 큰 의미를 가집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는 달러자산 배분 관점입니다. 버핏의 서한은 미국 기업의 장기 경쟁력에 대한 그의 확신을 담고 있으며, 이는 한국 투자자 입장에서 **미국 우량주의 장기 투자 비중을 유지하거나 확대할 근거**가 됩니다. 환율 변동성이 높아지는 구간에서는 특히 달러 기반의 가치투자 포트폴리오가 전체 자산 안정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버핏이 버크셔의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가 하방을 지지하듯이, 한국 투자자도 ‘자산 전체의 안전판’을 마련하는 관점으로 글로벌 투자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종합적으로 보면 2025년 버핏의 주주서한은 단순한 경영 보고서가 아니라, 투자자가 장기 시장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한 일종의 ‘가이드북’에 가깝습니다. 그는 더 이상 큰 목소리로 투자 철학을 설파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그의 오랜 메시지는 이미 시장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특히 변동성이 커진 2025년의 시장 환경을 생각해 본다면, 버핏이 던지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가장 중요하다”는 조언은 한국 투자자에게도 가장 유용한 나침반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단기 혼란에 속도를 맞추기보다는, 자신이 가는 길이 장기적으로 옳은 방향인지 되돌아보라는 메시지는 지금의 시장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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