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인프라가 확장되면서 반도체 산업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GPU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HBM의 공급 부족이 이어지고 있으며, 전 세계 클라우드 기업들은 자체 AI 칩 개발로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모두 반도체 생산능력을 다시 키우라는 흐름으로 이어지고, 그 출발점에는 장비 기업들이 있습니다. GPU가 아무리 잘 팔려도, HBM이 아무리 필요한 시대가 와도, 결국 칩 생산을 위한 공정 장비 투자가 먼저 이루어져야만 공급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확장 국면에서는 장비 기업이 반도체 기업보다 더 빠르게 실적이 개선되는 모습을 보여주곤 합니다. 이러한 구조적 성장의 한가운데 서 있는 국내 기업이 원익IPS입니다.
원익IPS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양사에 모두 핵심 공정 장비를 공급하는 한국의 주요 장비 업체로, 열처리·플라즈마·세정·반응성 공정 등 전공정에 필요한 장비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삼성 파운드리와 메모리 라인 모두에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은 국내 장비 기업 중에서도 흔치 않은 강점입니다. 최근 실적 흐름을 보면 2025년 상반기 원익IPS의 매출액은 3,664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6% 이상 증가했고, 영업이익과 순이익도 뚜렷한 증가세로 전환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일시적 반등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AI·HBM·파운드리 투자가 확대되면서 장비 수주가 늘어나는 ‘사이클 초입’의 전형적인 흐름에 가깝습니다. 연간 기준으로 보면 2022년 매출은 약 1조 원대를 기록했으나 2023년 업황 둔화로 6,903억 원까지 줄었고, 2024년 7,482억 원으로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여기에 2025년 상반기 호조가 겹치면서 업황이 턴어라운드 국면에 진입했다는 점이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주가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최근 주가는 약 6만 원대 중반에 형성되어 있고, 52주 변동폭은 2만 원 초반에서 7만 원 중반까지 넓은 편입니다. 상승폭이 컸다는 것은 시장이 원익IPS의 구조적 성장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는 의미이지만 동시에 단기적으로는 여전히 오버슈팅과 과매도 구간이 반복되며 밸류에이션이 완전히 고정되지 않은 전형적인 ‘사이클 초입 장비주 패턴’을 보이고 있습니다. 애널리스트 평균 목표주가가 7만 원 초반대인 점은 지금의 주가가 여전히 ‘실적 개선 속도 대비 저평가’일 수 있다는 시장 시각을 반영합니다.
AI 시대에서 원익IPS가 중요한 이유는 메모리·파운드리·패키징 등 세 영역의 확장 흐름을 동시에 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HBM 생산 확대는 기존 DRAM 대비 공정 난이도가 높고 TSV(Through Silicon Via) 기반 적층 공정이 필요해 장비 투입량이 크게 늘어납니다. SK하이닉스는 2024년 HBM CAPA를 전년 대비 60% 이상 확대하겠다고 밝힌 상태이며, 삼성전자도 HBM3E와 차세대 HBM 기술 확보를 위해 공격적인 설비 투자에 들어갔습니다. 이러한 투자는 장비 발주로 먼저 이어지기 때문에 원익IPS는 HBM 확대의 실질적 수혜기업입니다.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 테일러 공장에 260조 원 규모 투자를 선언하며 EUV 공정과 첨단 패키징 라인을 늘리고 있습니다. 이는 단기 수주 증가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CAPA 확장 흐름이기 때문에 원익IPS가 받는 수혜의 기간이 매우 길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차세대 패키징 시장도 본격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GPU가 고성능화될수록 CoWoS와 Hybrid Bonding 같은 고부가 패키징이 필수가 되었고, 이런 첨단 패키징 공정은 열처리·플라즈마·세정 기술이 매우 중요합니다. 원익IPS는 기존 기술 기반으로 해당 영역의 장비 개발을 진행해 이미 여러 고객과 기술 검증을 넓혀가는 중입니다.
경쟁사와 비교해도 원익IPS의 위치는 독특합니다. 국내 장비기업 중 한미반도체는 패키징·본딩 장비에 특화되어 있고, 주성엔지니어링은 ALD·증착 중심으로 메모리 공정에서 강점을 갖습니다. 두 회사 모두 특정 공정에서는 뛰어나지만 파운드리·메모리·패키징·디스플레이 등을 모두 아우르는 확장성 측면에서는 제한적입니다. 반면 원익IPS는 공정 장비 포트폴리오가 넓고 파운드리와 메모리에 모두 공급 가능한 구조로 시장 확장성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습니다. 해외 기업과 비교해보면 Applied Materials나 Lam Research처럼 전 세계적으로 독점적 시장지위를 가진 장비 회사들과 직접 경쟁하는 구조는 아니지만, 반도체 대기업의 맞춤형 공정에 필수적인 ‘특수 공정 장비’ 분야에서는 글로벌 업체가 쉽게 진입할 수 없는 영역을 깊게 파고든 기업입니다. 장비 산업은 고객사 공정과의 적합성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기술·라인 경험이 쌓이면 진입장벽은 더 높아집니다. 원익IPS는 바로 이 장벽을 기반으로 안정적 성장 곡선을 그릴 수 있는 기업입니다.
이제 2025년 이후 3년간 실적 시나리오를 가정해보겠습니다.
최선 시나리오에서는 AI 인프라 투자가 꺾이지 않고 GPU·HBM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구도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TSMC, 인텔 모두 CAPA 확장이 이어지고 패키징 장비 투입 속도도 증가하는 경우로 매출 성장률이 연 15~20% 수준까지 가능할 수 있습니다. 파운드리와 패키징 수주가 동시에 확대되면 영업이익률도 상승하면서 2027년에는 지금보다 훨씬 높은 재평가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준 시나리오는 메모리 수요 회복과 파운드리 투자 지속이라는 현재 컨센서스 기반 구도입니다. 연평균 7~10% 수준 매출 성장과 HP·AI PC 등에서 온디바이스 AI 확장에 따른 추가 장비 발주 증가가 이어지는 흐름입니다. 첨단 패키징 시장이 본격 성장하는 시점과 맞물리면 기준 시나리오만으로도 장기 성장은 충분하다는 판단입니다.
보수 시나리오는 글로벌 경기 둔화, 반도체 업황 조기 둔화, AI 투자 지연 등이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입니다. 매출은 횡보하거나 0~3% 성장이 유지될 수 있고, CAPEX가 늦춰지면 수주 시점이 밀릴 수 있습니다. 다만 원익IPS는 고객 포트폴리오가 다양하고 재무구조가 튼튼해 장기 하락 위험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체크해야 할 리스크도 정리해보면 첫째는 반도체 사이클의 급격한 둔화입니다. 특히 AI 인프라 투자 사이클이 기대보다 더 빨리 정점에 도달할 경우 실적 개선 흐름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둘째는 대규모 투자 지연 리스크입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 등 주요 고객사의 CAPEX 계획 변경이 그대로 실적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글로벌 경쟁 심화입니다. 특히 첨단 패키징 장비 경쟁이 본격화되면 해외 장비사와의 기술 경쟁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넷째는 지정학적 리스크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규제가 공급망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환율 리스크가 실적 변동성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익IPS는 메모리·파운드리·패키징·디스플레이라는 네 개의 축에서 모두 성장 기회를 확보한 매우 드문 한국 장비 기업입니다. 최근 매출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고, 장비 수주가 본격적으로 증가하는 사이클 초입에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주가는 이미 반등했음에도 여전히 밸류에이션은 과거 대비 낮은 편이며, 향후 AI 인프라가 확장될수록 원익IPS는 산업 중심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꾸준한 성장을 누릴 기업 중 하나라고 판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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