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시장의 ‘게임체인저’로 평가받는 소형모듈원전(SMR)이 국가첨단전략기술에 지정되지 않을 것으로 보임
이르면 이달 중 개최되는 이재명 정부의 첫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에 SMR에 대한 국가첨단전략기술 지정 안건이 상정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
인공지능(AI) 3대 강국 도약을 국정 목표로 제시한 정부가 차세대 원전을 활용한 전력 생산과 관련 산업 육성에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옴
9일 국무조정실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말 이후 한 번도 열지 않았던 첨단전략산업위를 이르면 이달 중 소집할 계획
이 위원회는 2022년 처음으로 개최됐으며 이후 반도체·2차전지·디스플레이 등을 첨단전략기술로 지정해 예산·세제 등을 집중 지원해왔음
윤석열 정부는 SMR 등 차세대 원전 기술도 첨단전략기술로 지정할 방침이었으나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전면 중단돼 현재에 이르렀음
정부의 한 관계자는 “올해는 SMR 지정 안건이 상정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
국내 원전의 주무 부처인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산업통상부 내부에서도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감지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한국에는 아직 독자적 SMR 기술이 없다”며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 데 이어 김성환 기후부 장관도 SMR 1기를 새로 짓는 기존 전력수급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드러내면서임
한국수력원자력은 대형 원전 2기를 건설기 위한 부지 선정 절차를 중단했고 원자력안전위원회 역시 고리 원전 2호기에 대한 계속운전 인가에 대한 판단을 두 차례나 미룬 상태임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엔비디아의 최신형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 장을 돌리려면 최소 대형 원전 1기가 필요하다”며 “정부가 직접 발표한 온실가스 감축도 원전만이 사실상 유일한 해법”이라고 지적
미국과 중국을 비롯해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소형모듈원전(SMR)에 주목하는 것은 SMR이 기존 대형 원전의 단점은 최소화하면서도 안정성과 경제성을 최대화해 전력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
대표적인 사례가 ‘전기 먹는 하마’로 통하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임. 만약 그래픽처리장치(GPU) 수만 장을 한꺼번에 돌리는 AI 데이터센터 인근에 SMR을 건립한다면 장거리 송전망 구축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과 전력손실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음. 매몰 비용이 사라져 전기요금 역시 자연히 더 저렴해짐
재생에너지의 가장 큰 단점인 간헐성 문제도 SMR에는 해당되지 않음.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은 기후 상태에 따라 출력량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국가 전력망 전체에 큰 부담을 줄 수 있지만 SMR은 경직적인 대형 원전보다도 출력을 탄력적으로 조정하기 쉬워 재생에너지와 상호 보완 관계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 정부가 추진하는 탄소 감축을 위한 실질적 대안도 현재로서는 원전이 유일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9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우리나라에 GPU 26만 장을 선공급하겠다고 약속했는데 현재 상황에서는 당장 물건이 와도 GPU를 돌릴 전기가 부족하다”며 “지금 당장은 계획된 재생에너지 공급이 워낙 많아 어떻게든 감당한다고 해도 2030년 이후부터는 SMR과 같은 차세대 원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
지금 SMR에 대한 투자 기회를 놓치면 5년 뒤에는 벌어진 기술 격차를 따라잡기 어려워진다는 의미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한국이 AI 허브로 도약하려면 2030년부터 100만 장 이상의 GPU를 돌릴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SMR 기술에 대한 선제 준비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음
아직 SMR 기술이 상용화 수준에 접어들지 못했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인식도 사실과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
중국은 지난달 세계 최초의 육상 상업용 SMR인 ‘링룽1호’ 시운전에 돌입. 시운전에서 문제가 발견되지 않으면 내년 중 실제 전력 생산에 들어간다는 게 중국의 목표. 전문가들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SMR 기술 격차가 이미 5년 이상 벌어져 있으며 여기서 지원이 더 이뤄질 경우 그 격차가 10년 이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
더 큰 문제는 반도체·철강·석유화학 등 우리나라 핵심 제조업이 모두 막대한 전력 소모를 기반으로 두고 있다는 점
실제 우리나라의 연간 전력 소비량은 올해 552.3TWh에서 2038년 624.5TWh로 증가. 대부분 AI 데이터센터 등 미래 첨단산업을 돌리기 위해 필요한 전력 중심으로 소비량이 늘어나는 구조
하지만 값싼 원전 대신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만 늘린다면 전기요금이 가파르게 상승할 수밖에 없음. 김동철 한국전력 사장은 최근 “재생에너지 발전단가는 여전히 원전보다 높다”며 “단기적으로는 재생에너지 확대가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말했음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한 에너지저장장치(ESS) 구축 비용도 만만찮음. 정부의 탄소 중립 시나리오에 따라 태양광발전 비중이 2050년에는 50% 수준으로 확대될 경우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력을 저장하기 위한 ESS 설치 비용만 최소 464조 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
국내 반도체 장비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황 CEO가 ‘중국은 전기가 거의 공짜에 가깝다’고 평가했는데 여기에 미래산업의 핵심이 담겨 있다”며 “노동부터 세제·전기요금까지 한국이 해외에 밀리면 제조업 공동화가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고 지적
최성민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도 “탄소 중립과 AI 시대 전력 수요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에너지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
SMR이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는 분석. SMR 추진 선박이 이런 사례. 중국은 최근 컨테이너 1만 4000개를 운반할 수 있는 세계 최대 원자력 추진 화물선의 세부 사양을 최초로 공개한 바 있음
만약 중국이 이 기술을 상용화하면 세계 1위인 한국 조선업은 물론이고 동북아시아 안보의 판도까지 달라질 수 있음
국내에서는 HD현대 등 일부 기업이 SMR 추진 선박 관련 기술력을 상당 수준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국가 지원이 동반되지 않으면 발전의 속도가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
문주현 단국대 교수는 “미국 에너지부(DOE)는 SMR의 상업화를 촉진하고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대규모 자금 지원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런 노력에 힘입어 오클로·테라파워·뉴스케일파워 등 미국의 주요 SMR 기업들이 기술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고 설명
<시사점>
차세대 원전기술인 소형모듈원전(SMR) 이 글로벌 에너지 전략의 핵심축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 체코 등 주요 선진국은 SMR을 탄소중립 실현과 AI 산업 전력수급 안정의 핵심 인프라로 규정하고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SMR을 첨단전략기술 지정 대상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임에도, 정책적 뒷받침은 오히려 뒤로 물러나는 셈이 아닐 수 없고, 산업경쟁력과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심한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매년 급증하고 있습니다. 생성형 AI와 클라우드 서버 확장은 대규모 전력 확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는 간헐성이 크기 때문에 대규모 전력공급원을 안정적으로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탄소중립을 유지하면서도 24시간 발전이 가능한 전원이 필요하며, 그 대안으로 SMR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SMR은 도시·산업단지·데이터센터 단위의 분산형 공급이 가능해, 대형 원전의 입지 갈등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한국은 이미 두산에너빌리티, 한수원, 한전 등을 중심으로 SMR 핵심 기술을 상당 부분 확보해왔습니다. 세계가 이제 막 상용화 경쟁에 뛰어드는 상황에서 한국은 선두권에 들어갈 수 있는 드문 기회를 가진 것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이 시점에서 SMR 지원을 소홀히 한다면, 기술은 있어도 시장을 만들지 못하는 ‘추격형 산업’의 전철을 다시 밟을 위험이 있습니다.
에너지 정책은 이념이 아니라 산업전략입니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중 어느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는 식의 이분법적 접근은 시대착오적입니다.
신재생에너지의 확대는 계속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AI·반도체·수소·정밀화학 산업을 지탱할 기저부하 전력 없이 신재생만으로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는 없습니다.
신재생에너지와 대형원전, SMR, 저장장치(ESS)의 조화로운 믹스 전략이 필수적입니다. 정부가 대형원전의 추가공급이 어렵다고 판단해도 최소한 SMR에는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합니다.
세계는 지금 "전력 = 국가 경쟁력"이라는 인식 속에 움직이고 있습니다.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지 못한 국가는 미래 산업 주도권을 잃는 시대입니다. SMR을 전략기술로 제대로 육성할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논쟁 속에서 시간을 허비할 것인지에 따라 한국 경제의 향후 20년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SMR을 국가급 전략산업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기술 상용화와 수출 시장 개척에 정책적 의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기회를 놓친 뒤에는 다시 되돌릴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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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news.naver.com/article/newspaper/011/0004553672?date=202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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