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패션 산업의 지형이 다시 한 번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한때 ‘가장 가치 있는 명품 브랜드’로 불리던 구찌와 생로랑을 보유한 케링(Kering) 그룹의 매출을, 일본의 SPA 브랜드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Fast Retailing)이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수치의 역전이 아니라, 패션 산업의 중심축이 명품에서 실용으로, 독점에서 대중으로, 이미지에서 효율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변화입니다.


2025 회계연도 기준으로 패스트리테일링의 매출은 3조 2000억 엔(약 213억 달러)을 돌파했습니다. 이는 전년 대비 8% 이상 성장한 수치로, 같은 기간 케링 그룹의 매출 186억 달러를 약 30억 달러 이상 앞질렀습니다. 2010년만 해도 케링(당시 PPR)은 유니클로의 두 배 규모였지만, 15년 만에 그 관계가 완전히 뒤집힌 것입니다. 케링이 구찌, 보테가 베네타, 생로랑 등 럭셔리 브랜드 중심으로 정체된 사이, 패스트리테일링은 유니클로, GU, 띠어리, 헬무트랭 등 다층 포트폴리오를 통해 꾸준히 성장하며 ‘글로벌 라이프웨어 제국’을 완성했습니다.


이번 역전은 단순히 매출의 문제가 아닙니다. 패션 시장에서 소비자의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과거에는 패션이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었다면, 이제는 ‘일상 속 기능성과 지속가능성’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유니클로의 강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패스트리테일링은 일본 도쿄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이미 그 매출의 60% 이상을 해외에서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중국, 한국, 동남아, 유럽, 북미를 아우르는 글로벌 네트워크는 명품 브랜드의 부티크보다 훨씬 넓고 탄탄합니다. 특히 유니클로는 중국 내 1,0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며, 단일 브랜드로는 아시아 최대의 리테일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이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집중된 케링의 유통망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고 확장성이 높습니다.


유니클로가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SPA(제조·유통 일체형)’ 모델의 완성도입니다. 패스트리테일링은 디자인, 생산, 물류, 판매를 모두 자체 통제하며, 생산 단가를 낮추고 품질을 유지하는 구조를 구축했습니다. 반면 케링은 장인의 수작업과 고가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하고 있어, 경기 침체나 소비 위축기에 상대적으로 취약합니다.


패스트리테일링은 또한 ‘히트상품의 과학’을 완성했습니다. 히트텍, 에어리즘, 울트라라이트다운, 감탄팬츠 등은 기능성과 합리적 가격의 대표 사례로, 매 시즌마다 글로벌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습니다. 단순히 옷을 파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적용된 의류’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이처럼 기술 중심의 패션은 명품 브랜드가 아직 충분히 대응하지 못한 영역이기도 합니다.


최근 유니클로의 브랜드 이미지가 한 단계 더 진화한 계기는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와의 협업이었습니다. 유니클로는 페더러와 10년 장기 계약을 맺고 단순한 스폰서십을 넘어 ‘라이프웨어(LifeWear)’ 철학을 함께 전파하는 파트너십을 구축했습니다. 페더러는 단순한 스포츠 스타가 아니라 ‘균형 잡힌 삶, 절제된 미학’을 상징하는 인물로, 유니클로의 브랜드 방향성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그는 2024년 도쿄 론칭 행사에서 “유니클로는 나에게 경기복이 아니라 철학”이라고 말하며, 스포츠와 일상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냈습니다.


유니클로는 로저 페더러와 함께 ‘This is LifeWear’ 글로벌 캠페인을 전개하며, “의류는 인간의 삶을 위한 도구”라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영상 속 페더러는 경기에 임하는 선수의 모습이 아니라, 일상 속 평범한 남성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공원을 산책하고, 가족과 커피를 마시며, 자연스러운 움직임 속에서 기능성 의류의 가치를 보여줍니다. 이는 명품 브랜드의 화려한 이미지 광고와는 완전히 다른 결을 지닌 접근법으로, 오히려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더 큰 공감을 얻었습니다.


이 캠페인은 한국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2024년 하반기 유니클로는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에 ‘페더러 라이프웨어 스페이스’라는 팝업형 전시 공간을 열고, 그의 실제 착용 아이템과 라이프스타일을 전시했습니다. 특히 ‘기능과 미니멀리즘의 조화’를 주제로 한 공간 디자인은 관람객들 사이에서 인스타그램 인증샷 명소로 자리 잡았으며, 오픈 2주 만에 방문객이 2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또한 한국 시장에서 유니클로는 단순한 매장을 넘어 ‘문화 공간형 리테일’을 실험 중입니다. 최근 명동 글로벌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는 ‘라이프웨어 인 서울(LifeWear in Seoul)’ 전시가 열렸는데, 이는 패션 제품이 아니라 ‘일상 속 기술’과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한 전시였습니다. 여기서 선보인 리사이클 다운 재킷, 친환경 데님 워싱 기술, 3D 니트 제품은 한국 소비자들에게 “유니클로는 더 이상 단순한 의류 브랜드가 아니다”라는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이러한 감성 중심의 마케팅 전략은 명품 브랜드와는 완전히 다른 결의 감동을 줍니다. 명품이 ‘꿈을 파는 산업’이라면, 유니클로는 ‘공감을 파는 산업’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브랜드가 소비자의 일상 속에 들어가 감정적 관계를 맺는 구조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패스트리테일링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측면에서도 명확한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2020년대 초반부터 “의류 폐기물 제로(Zero Waste)”를 목표로 내세우며, 재활용·리사이클 원단을 활용한 제품 비중을 꾸준히 확대했습니다. 소비자들은 이러한 가치에 공감했고, 브랜드 충성도는 더욱 높아졌습니다.


반면 케링은 구찌의 부진과 발렌시아가의 이미지 리스크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구찌는 2017~2019년까지 ‘밀레니얼 럭셔리’를 상징하며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했지만, 이후 디자인 과잉과 브랜드 피로도가 겹치며 성장세가 둔화됐습니다. 케링의 2025년 상반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20% 이상 하락했고, 구찌 매출은 전체 그룹 매출의 50%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전년 대비 15% 감소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유니클로는 2025년 상반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22% 상승했습니다. 원가율 상승에도 불구하고 재고 관리 효율과 온라인 매출 성장 덕분에 수익성이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특히 일본 내수 시장에서는 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이 늘었고, 중국·동남아 시장에서는 중산층 소비 확대로 신규 고객층을 확보했습니다.


패스트리테일링은 단순한 의류 제조사가 아닙니다. 창업자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유니클로를 “옷이 아니라 삶의 인프라를 만드는 회사”라고 정의합니다. 즉, 유니클로의 제품은 유행이 아니라 ‘필요’를 중심으로 설계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일회성 소비보다는 장기적인 가치 소비를 추구하는 글로벌 트렌드와 맞닿아 있습니다.


케링과 유니클로의 비교는 “패션의 민주화”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럭셔리가 상징하는 배타성과 소유의 문화가 약화되는 대신, 유니클로가 상징하는 실용성과 공유의 문화가 부상하고 있습니다. 특히 MZ세대 소비자들은 ‘보여주기식 소비’보다 ‘자기 정체성의 표현’을 중시하며, 이는 브랜드 로고보다 브랜드 철학을 선택하게 만듭니다.


유니클로의 성공에는 철저한 데이터 경영도 있습니다. 매장별 판매량, 기온, 고객 유입 데이터가 모두 통합된 시스템에서 실시간 분석되어 생산량과 재고가 자동 조정됩니다. 이런 운영 효율은 단순히 비용 절감 차원을 넘어, 고객 경험을 향상시키는 핵심 요소입니다. 반면 케링은 여전히 패션 하우스 중심의 느린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어, 소비자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유니클로의 성장 뒤에는 글로벌 불확실성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 소비자들은 ‘가성비’와 ‘신뢰할 수 있는 품질’을 더 중시하게 되었습니다. 즉, 럭셔리 시장이 흔들릴수록 유니클로는 더 강해졌습니다. 이는 명품 소비의 양극화와 실용 소비의 확산이 동시에 진행되는 현상을 보여줍니다.


물론 케링이 완전히 뒤처진 것은 아닙니다. 케링은 구찌 리브랜딩과 함께 생로랑의 독립적 브랜드 전략, 보테가 베네타의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 콘셉트를 강화하며 반등을 노리고 있습니다. 다만 소비자들의 관심이 빠르게 이동하는 시장에서, 이 전략이 얼마나 효과를 낼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현재 패스트리테일링의 시가총액은 약 12조 엔(약 800억 달러)에 이르러, 루이비통 모회사 LVMH를 제외하면 글로벌 패션업계 2위에 해당합니다. 케링의 시가총액(약 450억 달러)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야나이 회장은 2030년까지 매출 5조 엔(약 330억 달러)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패션보다 인간의 삶에 더 깊이 관여하는 기업이 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제 유니클로는 단순히 의류 브랜드를 넘어 ‘삶의 기술’과 ‘감성의 경험’을 파는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열린 ‘라이프웨어 인 서울’ 전시, 페더러 캠페인, 글로벌 기능성 라인업은 모두 같은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즉, 패션의 중심은 스타일이 아니라 가치라는 것입니다.


이는 패션의 미래가 단순히 옷을 파는 산업이 아니라 ‘삶을 디자인하는 산업’으로 변하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유니클로의 제품은 계절, 연령, 성별, 국경을 초월합니다. 소비자가 유니클로 매장에서 느끼는 것은 ‘패션의 다양성’이 아니라 ‘일상의 편안함’입니다.


패스트리테일링의 철학은 명확합니다. 옷은 사람의 일상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기술이며, 이 기술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든다는 믿음입니다. 케링이 예술과 문화의 상징이라면, 유니클로는 기술과 효율의 상징입니다. 결국 두 기업의 경쟁은 럭셔리 대 실용이라는 단순 구도가 아니라, ‘감성 대 데이터’의 싸움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유니클로가 구찌를 넘어섰다는 건, 단지 매출의 역전이 아니라 시대정신의 변화를 뜻합니다. 화려함보다 실용, 이미지보다 실체, 로고보다 신뢰를 중시하는 세대가 시장의 주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 세대는 브랜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대신 브랜드가 어떤 가치를 지키는지를 봅니다.


이제 패션 산업의 중심은 럭셔리가 아니라 라이프웨어입니다. 구찌와 생로랑이 상징하는 ‘탐미의 시대’가 저물고, 유니클로가 상징하는 ‘필요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소비자는 더 이상 브랜드를 위해 자신을 꾸미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의 삶에 맞는 브랜드를 선택합니다.


그 선택의 끝에서, 유니클로는 이미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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