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지금 디지털 결제와 금융자산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화폐적 수단이 등장하는 시점에 서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은 ‘가치가 비교적 안정된 디지털 화폐’라는 정의 아래, 전통 금융과 암호자산을 잇는 핵심 매개체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술이 제시하는 기회만큼이나 위험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오늘은 스테이블코인의 정의와 기업 현황, 주요 발행사인 테더와 써클의 전략, 그리고 미국·유럽·아시아 각국의 규제 대응까지 종합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스테이블코인이란 무엇인가부터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스테이블코인은 일반적으로 미국 달러·유로 등 법정통화 또는 저위험 자산에 연동(페그)되어 그 가치 변동성을 줄이도록 설계된 암호자산입니다. 변동성이 큰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와 달리 ‘1코인 = 1달러’에 가까운 가격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핵심입니다. 이러한 설계 덕분에 글로벌 송금, 결제, 디지털 자산 생태계에서 ‘디지털 달러’와 유사한 기능을 기대받고 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비트코인은 태생적으로 ‘탈중앙화된 가치저장 수단’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발행 주체가 없고, 공급량이 2,100만 개로 제한되어 있으며, 화폐 발행의 인플레이션 위험을 제거한 구조 덕분에 ‘디지털 금’으로 불립니다. 2025년 들어 비트코인 가격은 다시 상승세를 타며 7만 달러 선을 돌파했습니다. 이는 미국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 ETF를 통한 기관 투자 유입, 그리고 글로벌 불확실성 속에서 대체자산으로서의 수요가 늘어난 결과로 분석됩니다. 하지만 높은 변동성은 여전히 결제수단으로서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고, 이 부분이 바로 스테이블코인의 역할이 강조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이라면, 스테이블코인은 디지털 달러의 역할을 수행하며, 두 자산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제 주요 발행사인 써클과 테더의 현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써클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인 USDC는 “미국 달러 1대 1로 보유된 고유동성 자산으로 전액 담보된다”는 투명성을 기반으로 금융기관과 기업 간 결제 플랫폼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습니다. 써클은 “USDC는 100 % 달러 및 단기 국채 등 초저위험 자산으로 뒷받침된다”고 명시하며, 투명성과 신뢰성을 무기로 내세웠습니다. 반면 테더의 USDT는 시가총액 기준 세계 최대 스테이블코인으로, 발행량과 유통 규모 면에서 압도적입니다. 그러나 과거 담보자산 구성과 감사체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규제 대응 측면에서 보다 복잡한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써클은 2025년 들어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며, 미국 내 규제 적합성과 투명성을 강화했습니다. 반면 테더는 미국 시장 재진입을 위한 전략을 내놓으며, 자산구조를 투명화하고 새로운 미국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출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러한 두 기업의 전략은 단순히 시장 점유율 경쟁이 아니라, ‘규제 환경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라는 접근 방식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써클은 ‘규제 친화형 모델’을, 테더는 ‘시장 우선형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관심과 규제가 동시에 가속화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첫째, 글로벌 결제시스템이 빠르게 탈중앙화되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블록체인 기반 송금·결제 플랫폼이 활성화되면서,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이 실질적인 대체 수단으로 기능하기 시작했습니다. 둘째,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의 경쟁 구도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각국 정부가 CBDC를 통해 화폐 주권을 지키려 하는 반면, 민간 기업들은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글로벌 결제 시장을 선점하려 합니다. 셋째, 금융 안정성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처럼 보이지만, 완전한 예금보호체계가 없다는 점에서 대규모 인출 사태(run)가 발생할 위험이 존재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은 가장 적극적인 규제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2025년 중반, 미국 상원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대한 최초의 연방 법안인 ‘GENIUS Act’를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1:1 담보를 유지하고, 자산 구성 내역을 월 단위로 공개하며, 외부 감사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동시에 스테이블코인이 결제수단으로 사용될 경우, 연방은행 수준의 리스크 관리와 소비자 보호 체계를 적용받도록 명문화했습니다.
유럽연합(EU)은 이미 2024년부터 ‘MiCA(Markets in Crypto-Assets)’를 시행했습니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을 ‘전자화폐기관’ 수준으로 규제하는 강력한 프레임워크로, 자본금 요건, 담보자산 범위, 내부통제 기준 등을 세부적으로 명시했습니다. 영국은 2025년 1월부터 결제형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도입했고, 일본·싱가포르·스위스 등도 자국 내 발행사에게 인가제와 담보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즉, 각국은 달러 연동형 코인의 확산을 제도권 내로 끌어들이며, ‘위험한 탈규제 영역’이 아닌 ‘감시 가능한 금융시스템의 일부’로 편입시키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의 경우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입장은 점진적으로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2024년 말부터 ‘디지털자산 기본법’ 제정 과정에서 스테이블코인 항목을 별도로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핵심은 “1:1 담보 유지 및 실명계좌 기반 관리”입니다. 한국 내에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거나 거래소에서 취급하려면, 해당 자산이 법정화폐 또는 단기 국채 등으로 완전 담보되어야 하며, 투자자 실명확인을 통한 자금세탁방지(AML) 체계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또한, 해외발행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상장 시에는 발행사의 공시·감사자료를 제출해야 하며, 외환거래법상 규제와의 충돌 여부를 검토하는 절차도 신설될 예정입니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은 특히 스테이블코인이 ‘국경 간 결제’ 및 ‘소액 송금’ 시장에 미칠 영향을 주의 깊게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거래소나 기업이 달러 페깅 스테이블코인을 대량으로 보유할 경우, 이는 사실상 외화예치 형태로 작동해 외환수급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국내 결제수단으로서의 사용은 제한하되, 디지털자산 시장 내 거래용·해외송금용으로는 제한적 허용’하는 절충적 접근을 검토 중입니다. 동시에 한국형 CBDC 실험을 확대하면서, 민간 스테이블코인과의 역할 분담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기업 차원으로 시선을 옮겨보겠습니다. 써클은 규제 친화형 모델을 선택하면서 미국 내 금융기관과의 협업을 확대했습니다. 실제로 일부 글로벌 은행과 핀테크 기업들은 USDC를 결제 및 송금 네트워크에 통합하고 있습니다. 써클은 매달 외부 감사기관을 통해 담보자산 구성과 유동성을 공개하며, 자산 운용의 투명성을 확보했습니다. 이런 구조 덕분에 USDC는 금융기관과 기관투자자 중심의 신뢰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반면 테더는 여전히 시장 점유율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유통량의 약 65%를 차지하는 USDT는, 규제 불확실성이 높은 시장에서 ‘속도와 접근성’을 무기로 확산되었습니다. 특히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에서는 달러를 직접 보유하기 어려운 개인이나 기업이 테더를 사실상 ‘디지털 달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테더 역시 최근에는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습니다. 자산 구조를 공개하고, 회계법인에 의한 정기 검증을 도입하며, 미국 시장 재진입을 위해 ‘완전 담보형’ 모델로 전환을 추진 중입니다.
이런 변화는 스테이블코인 산업 전반의 구조적 성숙을 의미합니다. 초기에는 발행량 경쟁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규제 적응력”과 “신뢰성”이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금융기관, 핀테크, 정부 모두가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누가 법적 안정성과 기술적 신뢰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가’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스테이블코인의 미래 지형을 결정할 것입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한 암호화폐를 넘어 ‘토큰화된 금융 인프라’로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일부 기업은 회사채나 국채를 블록체인 위에 토큰 형태로 발행하고, 그 결제 단위로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합니다. 이는 기존 금융결제 시스템을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새로운 모델로 평가됩니다. 실제로 글로벌 결제기업과 일부 증권거래소는 이미 블록체인 기반 결제 프로토콜을 실험하고 있으며, 향후 스테이블코인은 금융 인프라의 일부분으로 통합될 가능성이 큽니다.
소비자 관점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의 의미는 단순히 투자자산을 넘어섭니다. 디지털 지갑에서 손쉽게 송금·결제를 수행할 수 있고, 환전이나 해외 송금 수수료를 대폭 줄일 수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글로벌 거래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실시간 정산과 투명한 거래 기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그만큼 규제 리스크, 기술 보안, 발행사 신뢰도라는 변수가 항상 따라붙습니다.
결국 스테이블코인은 기술혁신이 결제와 금융을 재설계하는 전환점에 서 있으며, 발행사·정부·이용자 모두가 이 새로운 질서 속에서 역할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디지털 화폐가 더 이상 실험 단계가 아닌, 실생활과 금융 시스템 속으로 들어온 지금 — 우리는 ‘디지털 달러 시대’의 문 앞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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