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집권 자민당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64) 총재가 21일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에 이어 제104대 총리에 취임
일본 의원내각제 140년 역사상 첫 여성 총리
이날 임시국회에서 치러진 중의원(하원) 총리 지명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는 과반인 237표를 얻어 총리로 선출
다카이치는 26년간 자민당과 협력한 공명당이 연립정부에서 이탈해 한때 위기를 맞았지만, 보수 야당 일본유신회를 새로운 연정 파트너로 끌어들여 총리직에 올랐음
강경 우익 성향의 다카이치 내각 출범으로 이전 이시바 내각 체제에서 구축됐던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의 향방이 주목
다카이치는 과거 역사·영토 문제에서 강경 발언을 쏟아냈고, 야스쿠니 신사도 정기적으로 참배해 왔음
다만 ‘총리 다카이치’는 다를 것이란 관측도 나옴. 다카이치는 이날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일본에 중요한 이웃 국가”라며 “중요한 파트너인 일한(한일) 관계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회담을 희망하며, 제대로 의사소통해 가겠다”고 했음
다카이치는 이달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해 이재명 대통령과 처음으로 만날 예정
이 대통령도 이날 소셜미디어에 다카이치 총리 선출 축하 메시지를 올리며 “경주에서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했음
다카이치는 관방장관에 기하라 미노루 전 방위상, 외무상에는 모테기 도시미쓰 전 자민당 간사장, 방위상에는 총재 선거에서 경쟁했던 고이즈미 신지로 전 농림상을 임명
다카이치, 핵추진잠수함 도입 길 열어
21일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에 오른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신임 총리가 중국 견제를 위해 ‘차세대 추진력’을 갖춘 신형 잠수함을 보유한다는 국방 정책을 수립
핵추진 잠수함 보유를 염두에 둔 행보일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27일 일본을 방문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가 다음 날 열릴 예정인 정상회담에서 이와 관련된 대화를 나눌지에 관심이 쏠림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 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가 대중국 견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밝혔음
또 핵추진 잠수함 기술의 호주 이전에 대해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고도 했음
미국이 중국 견제 강화를 위해 일본의 핵추진 잠수함 보유를 용인할 경우 한국, 대만도 이에 가세하려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옴. 한미일 3국 협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음
앞서 다카이치 총리는 20일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와 연립정권 구성에 합의하며 정치, 경제, 국방 등 12개 분야의 주요 정책을 공개
특히 국방 부문에서 “차세대 추진력을 갖춘 VLS(수직발사장치) 탑재 잠수함 보유 정책을 추진한다”며 ‘장거리 미사일 탑재’와 ‘장기 잠항’이 가능한 신형 잠수함 보유 목표를 명시
일본 정부가 ‘차세대 추진력’을 갖춘 신형 잠수함 도입을 국방 정책에 공식적으로 포함시킨 건 처음
‘강한 일본’ 재건을 강조하는 다카이치 정권은 정보기관 강화도 추진. 총리 직속 ‘내각정보조사실’과 ‘내각정보관’을 격상시켜 내년에 각각 ‘국가정보국’과 ‘국가정보국장’을 신설하기로 했음
2027년 말까지 영국 비밀정보국(MI6)처럼 대외 첩보 수집을 전담하는 독립기관인 ‘대외정보청’(가칭)도 만들기로 했음
이재명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중대한 시기에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며 “APEC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밝혔음
다카이치 총리도 이날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층 중요성 커진 한일 관계를 미래 지향적이고 안정적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면서 “이 대통령과의 회담도 희망하고 있다”고 했음
아베노믹스 시즌2 예고
다카이치 내각이 21일 정식 출범하면서 일본 집권당인 자민당은 새 연정 상대인 유신회와 함께 한층 강화된 보수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총리는 경제 분야에서는 확장재정과 완화적 금융정책을,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강한 일본’을 기조로 방위력 강화 등에 힘쓸 것으로 관측
다만 자민·유신 연합의 국회 의석이 참의원(상원)과 중의원(하원) 양원 모두에서 과반에 미달한 ‘소수 여당’인 상황에서 주요 정책 추진마다 야당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한계를 안고 출발
우선 다카이치 신임 총리가 강조해온 ‘강한 일본’ 기조에 따라 안보·군사 정책의 대대적인 강화가 예상
교도통신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이후 ‘국가안전보장전략’ 등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검토하고 있음
2027 회계연도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로 증액하기로 한 당초 방침을 예정보다 앞당겨 개정해 증액 규모를 확대하겠다는 것임
헌법 개정 여부도 관심사. 전력 보유 및 교전권을 부인한 헌법 9조(일명 평화헌법)가 대상으로 자위대 권한을 명기해 법적 근거를 만드는 데 목적
한국과 중국은 헌법 9조 개정이 ‘전쟁 가능 국가’로의 전환이라며 반대
방위성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자민당은 공명당과의 연립으로 안보 정책의 정당성을 담보했다”며 “자민당보다 매파 색채가 강한 유신회와 연립하면 기세에 떠밀린 정책 추진이 우려된다”고 말했음
경제정책에서는 ‘아베노믹스’ 계승
다카이치 총리는 재정 확대와 완화적 금융정책을 강조해왔으며 적자국채 발행도 용인하고 있음.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지방자치단체 대상 중점 지원 교부금 확충, 휘발유 잠정세율 폐지, 세액공제 신설 등 상당한 재원이 필요한 정책을 공약으로 제시
다카이치 총리는 △대담한 금융정책 △신속한 재정 정책 △신성장 전략 등을 내세운 자신의 경제정책 패키지에 대해 ‘아베노믹스’를 계승한 ‘사나에노믹스’로 명명하기도 했음
돈 풀기 정책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21일 도쿄 주식시장에서 일본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지수 평균 주가(닛케이 평균)는 전날 대비 130. 56엔(0.27%) 오른 4만 9316.06엔으로 마감하며 이틀 연속 최고가를 경신
반면 확장재정(재정 건전성) 우려로 엔화 매도가 이어지며 달러 대비 엔화는 전날 150엔대에서 이날 151엔대로 약세
‘소수 여당’ 구조는 정책 추진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민·유신의 중의원 의석은 231석으로 과반(233석)에 2석, 참의원도 120석으로 과반(125석)에 못 미침
예산안이나 법안을 처리할 때마다 야당의 협력이 필요한 구조. 유신회와의 연정도 리스크가 적지 않음
중의원 수 10% 감축, 오사카 제2 수도 지정 등을 둘러싼 자민당 내 반발이 있는 데다 소비세 감세와 기업 헌금 폐지 등은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봉합한 상태
유신회는 각외 협력을 선택해 입각하지 않기로 했음. 대신 엔도 다카시 국회대책위원장이 총리보좌관을 맡기로 했음
한편 다카이치 총리는 26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31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굵직한 외교 일정을 앞두고 있음. 외교·안보 요직 경험이 없는 만큼 급박하게 돌아가는 국제 정세 속 외교 수행 능력에 관심이 쏠림
<시사점>
다카이치 사나에가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로 선출되면서 일본 정치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다카이치 총리의 경제정책의 방향은 단순한 세대 교체를 넘어, 일본의 정책기조가 다시금 ‘국가 중심’과 ‘보호주의’로 회귀할 조짐을 보인다는 점에서 아시아 전체 경제질서에 큰 파장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다카이치 총리의 경제 구상은 아베노믹스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대규모 재정지출과 완화적 통화정책을 바탕으로 경기회복과 임금 상승을 유도하고, 기술안보를 중심에 둔 산업정책을 강화하겠다는 것입니다. 반도체·핵융합·첨단소재 등 전략산업에 대한 국가적 투자는 단기적 성장에는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일본의 막대한 국가부채와 고령화, 인구감소라는 구조적 제약 속에서 이러한 정책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할지는 의문스럽습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다카이치의 경제정책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가자본주의적 경제관과 닮아 있다는 점입니다.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워 세계무역질서를 뒤흔들었듯, 다카이치도 “일본의 이익을 지키는 경제안보”를 강조하며 보호주의적 경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특정 산업을 ‘국가 챔피언’으로 육성하고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발상은 단기적 자국이익은 높이겠지만, 동아시아의 협력질서를 약화시키고 글로벌 공급망을 왜곡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미칩니다. 완화적 통화정책이 지속되면 엔화 약세가 심화되어, 원화 대비 환율 불안과 한국 수출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이 첨단산업 육성을 명분으로 기술·소재 분야에서 자국 우선을 강화하면, 한일 간 협력의 여지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더구나 다카이치 총리가 안보·역사 문제에서 강경한 입장을 취한다면, 정치적 긴장이 경제협력에 부정적 그림자를 드리울 우려도 큽니다.
한일 양국은 대립/경쟁보다 협력의 가치를 되새겨야 합니다. 한국과 일본이 상호 ‘배타적 경쟁’ 관계에서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반도체, 배터리, AI, 청정에너지 등 양국이 강점을 가진 분야에서 협력적 생태계를 조성하면,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도 안정적 성장 기반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일본의 기술력과 자본을, 일본은 한국의 생산력과 혁신 역량을 인정하며 상호보완적 파트너십을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 신뢰 구축이 선행돼야 합니다. 과거사나 영토문제 같은 역사적 갈등이 경제협력을 가로막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며, 서로가 자중해야 합니다. 섣부른 말실수가 양국민의 감정을 상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과거 윤 정부부터 시작된 한일 선의의 관계가 이어질 수 있도록 이재명 정부와 다카이치 정부가 서로를 존중하고, 한일 양국 모두 상대방을 경쟁상대가 아닌 공동번영의 동반자로 인식하는 성숙한 외교전략이 필요합니다. 다카이치 총리 또한 경제안보와 산업정책의 틀 안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시야를 넓혀 나가야 합니다.
트럼프식 경제민족주의가 초래한 교훈은 분명합니다. 폐쇄와 보호는 일시적 성장을 줄 수 있을지만 미래를 보장할 수 없으며, 장기적 신뢰와 번영은 협력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새로운 리더십이 그 길을 외면한다면, 일본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불안정이 심화될 것이 분명합니다.
한국과 일본은 이제 ‘경제민족주의의 벽’을 넘어, 기술·산업·안보가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협력 모델을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다카이치 총리의 시대가 일본의 자국주의 강화가 아니라 한일 간 신뢰와 협력의 재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관련 기사>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5/10/22/R6XP5AQD2FA4FP7TDEAEOA7ZU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