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어느 평일 오후, 카페 창가에 앉은 사람들을 보면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노트북을 펼쳐 놓고 회의를 하고, 화상통화를 하며, 커피 한 잔으로 반나절을 보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카페는 더 이상 커피를 마시는 곳이 아닙니다. 이제는 ‘나만의 작은 사무실’이자 ‘생활 거점’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히 근무 환경의 변화에 그치지 않습니다. 유통의 형태, 소비의 구조, 공간의 가치까지 송두리째 바꾸고 있습니다.
이른바 ‘카페 워킹족’의 등장은 새로운 소비 패턴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사무실과 집 사이에서 소비가 일어났다면, 이제는 ‘이동 중’과 ‘머무는 공간’에서 소비가 일어납니다. 이런 변화는 유통업체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흐름입니다. 단순히 커피를 파는 것이 아니라, ‘머무는 시간을 판매’하는 개념으로 시장이 재편되고 있는 것입니다.
스타벅스, 블루보틀, 이디야 같은 대형 카페 브랜드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변화를 감지했습니다. 테이블 간 간격을 넓히고, 콘센트와 고속 와이파이를 갖춘 ‘워킹존’을 마련했습니다. 심지어 스타벅스는 매장 내 ‘프라이빗 존’을 시범 도입하면서, 카페 한가운데에서도 회의나 인터뷰가 가능한 공간을 제공합니다. 이 흐름은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공간 유통’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커피 한 잔의 가격이 아니라, ‘머무는 시간’에 대한 가치를 파는 셈입니다.
이 변화는 식음료 산업뿐 아니라 전통 유통업에도 파급되고 있습니다. 편의점, 서점, 호텔, 심지어 백화점까지도 ‘머무는 공간’을 중심으로 재구성되고 있습니다. GS25는 최근 ‘라운지형 편의점’을 선보였습니다. 단순히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며 일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제공하는 콘셉트입니다. 교보문고는 서점 한쪽을 ‘코워킹존’으로 전환하고, 독립서점 카페처럼 조용히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신세계백화점은 점심시간마다 백화점 내부 라운지를 오픈해, 프리랜서와 리모트 워커를 위한 공간으로 재활용하고 있습니다. 결국 모든 공간이 ‘일하는 사람’을 위한 유통 거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기술이 더해지면서 ‘스마트 워킹 유통’이 등장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카페 내 미니 오피스 ‘스페이스 클라우드’, 그리고 배민이 시범 운영 중인 ‘워크 포인트(Work Point)’입니다. 이 서비스들은 앱을 통해 주변 카페나 라운지를 예약하고, 그 자리에서 식사·커피·간식·프린트 서비스까지 통합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합니다. 유통의 경계가 완전히 사라지고, ‘공간’ 그 자체가 상품이 된 것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시간 기반 소비’의 확대입니다. 카페는 이미 단순한 음료 판매 공간이 아니라, ‘시간을 재구성하는 유통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부 스타트업 카페에서는 1시간 단위로 커피 무제한 제공, 프린트·회의실 이용, 스낵 구독이 가능한 패스를 판매합니다. 시간당 3천 원에서 5천 원 수준이지만, 이 서비스는 이미 고정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즉, 소비의 단위가 ‘제품’에서 ‘시간’으로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이 트렌드는 기업에도 큰 시사점을 던집니다. 유통의 본질이 ‘재화의 이동’이었다면, 지금은 ‘경험의 연결’로 바뀌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고객은 물건을 사기 위해 공간을 방문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집중할 수 있는 공간’, ‘머무를 이유가 있는 장소’를 찾아 이동합니다. 따라서 유통 기업은 이제 ‘상품 기획자’가 아니라 ‘공간 디자이너’가 되어야 합니다. 매출보다 중요한 것은 ‘체류 시간’과 ‘재방문율’이 되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식문화와 결합하면서 또 다른 형태의 소비를 낳고 있습니다. ‘워크 앤 다인(Work & Dine)’이 대표적입니다. 스타벅스 리저브, 폴 바셋, 백리향 카페 등은 커피뿐 아니라 식사까지 가능한 형태로 진화했습니다. 한 끼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니, 점심 이후에도 손님이 떠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몇몇 카페는 오후 6시 이후 ‘공유 오피스’로 전환해 야간 이용 요금을 받는 등 새로운 수익 모델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유통의 경계는 사라지고, 시간과 경험이 결합된 복합적 비즈니스로 확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현상은 단기적인 유행이 아닙니다. MZ세대가 직장 중심의 일과 삶을 거부하면서, ‘유연한 일터’에 대한 수요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동시에, 기업들도 재택근무와 오피스 축소를 병행하며 ‘하이브리드 근무’가 일상이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개인의 일터가 ‘도시의 소비공간’으로 분산되면서, 유통의 지도 또한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엔 오피스 밀집 지역이 핵심 상권이었다면, 이제는 ‘주거와 근무가 교차하는 생활권역’이 새로운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유통 기업들은 이제 상품 대신 ‘머무는 경험’을 디자인해야 합니다. 카페가 사무실이 되고, 서점이 라운지가 되며, 백화점이 오피스 역할을 하는 시대. 물건보다 공간이, 매출보다 시간이 중요해진 이 흐름에서, 유통의 본질은 ‘판매’가 아니라 ‘관계’로 바뀌고 있습니다. 소비자가 머무는 곳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앞으로의 유통 경쟁력입니다.
결국 유통의 혁신은 기술도, 자본도 아닙니다. 사람들의 ‘시간을 이해하는 감각’에서 시작됩니다. 커피 한 잔의 가격보다 그 한 잔을 마시며 보내는 시간이 더 큰 가치를 가지는 시대. 그 시간 속에서 유통은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유통트렌드 #카페워킹족 #리테일혁신 #하이브리드근무 #공간유통 #스타벅스 #MZ세대소비 #워케이션 #시간소비
컨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