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의 역사에서 ‘라스트마일’은 늘 가장 복잡한 문제였습니다. 대형 물류센터에서 각 지역으로 상품을 옮기는 일은 비교적 단순하지만, 고객의 문 앞까지 정확히, 빠르게, 그리고 저비용으로 배송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도전입니다. 도심은 복잡하고, 인건비는 오르고, 교통과 규제는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유통기업들은 이 1km를 잡기 위해 기술과 전략을 총동원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의 서막은 이미 쿠팡이 열었습니다. 로켓배송이라는 단어는 이제 일반명사가 됐죠. 쿠팡은 전국 곳곳에 **풀필먼트센터(Fulfillment Center)**를 세워 재고를 소비자 근처에 미리 배치하는 전략으로 게임 체인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쿠팡 이후의 시대는 단순한 속도 경쟁이 아닙니다. 비용 효율과 기술 혁신이 새로운 무기입니다.


최근 롯데와 CJ대한통운, 네이버, 그리고 신세계 SSG까지 모두 ‘도심형 물류센터(CFC, City Fulfillment Center)’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대형 물류센터는 교외에 있어 접근성이 떨어지지만, 도심형 센터는 주문 후 1~2시간 내에 제품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서울 강남, 마포, 성수, 부산 해운대 같은 상권 중심지에 물류 거점을 세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기술의 진화는 이 전쟁을 한층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AI 물류 예측 시스템은 하루에도 수천만 건의 주문 데이터를 분석해 어떤 지역에 어떤 제품이 언제 필요할지를 예측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물류센터의 재고가 자동으로 이동하고, 배송 동선이 최적화됩니다. 심지어 AI는 날씨, 시간대, 교통량까지 반영해 배송 경로를 실시간으로 재조정합니다. ‘배송 기사’가 아니라 ‘AI 교통 컨트롤러’가 상품의 흐름을 조종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여기에 로봇과 드론 배송도 본격적으로 상용화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스타트업 ‘뉴빌리티(NEWBILITY)’의 자율주행 로봇은 이미 서울 일부 지역에서 배달을 시작했고, GS리테일과 협력해 편의점 상품을 실시간으로 배송하고 있습니다. CJ대한통운은 실내외를 오가는 로봇을 자체 개발 중이며, 쿠팡 역시 라스트마일 구간에서 **‘쿠팡 로보틱스’**라는 전담 조직을 신설해 자동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시범 단계이지만, 도심 내 배달로봇이 본격적으로 확산되면 물류비의 20% 이상을 절감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또 하나의 변화는 픽업(Pick-up) 경제의 부상입니다. 소비자들이 집이 아닌 ‘직장 근처’, ‘지하철역’, ‘편의점’ 등에서 직접 물건을 찾아가는 방식입니다. 이는 단순한 배송비 절감이 아니라, 소비자의 ‘생활 동선’에 맞춘 유통 혁신입니다. CU, 세븐일레븐, GS25 같은 편의점들이 택배 수령뿐 아니라 ‘온라인 주문 픽업 거점’ 역할을 하며 미니 물류허브로 변하고 있습니다. 결국 도심 곳곳이 거대한 ‘마이크로 물류망’으로 바뀌고 있는 셈입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ESG(지속가능성) 관점도 중요한 키워드로 떠올랐습니다. 라스트마일 구간은 전체 배송 과정 중 탄소 배출량이 가장 높은 단계로 꼽힙니다. 차량 한 대가 수십 곳을 오가며 낭비되는 연료와 시간은 환경에도 부담이 됩니다. 그래서 기업들은 전기 이륜차, 자율주행 전기 밴, 심지어 전동 킥보드 배송까지 실험하고 있습니다. 네이버는 친환경 물류 스타트업 ‘솔리드웨어’와 협력해 AI 기반 전기차 배차 시스템을 도입했고, 현대글로비스는 도심형 수소 물류 차량을 테스트 중입니다. 유통의 혁신이 단순히 ‘빨라지는 것’을 넘어, ‘깨끗해지는 것’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죠.


이 변화는 소비자 행동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과거 소비자는 ‘언제 도착하냐’만을 물었지만, 이제는 ‘어떻게 도착하냐’를 봅니다. 예를 들어 “친환경 포장으로 배송됩니다”라는 문구 하나가 구매 전환율을 높이고, “드론 배송 가능 지역입니다”라는 메시지가 브랜드 이미지를 바꾸기도 합니다. 즉, 배송 자체가 이제는 ‘브랜딩의 일부’가 된 것입니다.


국내 유통 대기업뿐 아니라 스타트업들도 라스트마일 시장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메쉬코리아는 도심 내 배송기사 네트워크를 AI로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했고, 바로고는 배달기사의 경로 데이터를 분석해 **‘AI 라우팅 엔진’**을 고도화했습니다. 심지어 스타트업 ‘파슬리’는 ‘도보 배송’이라는 초근거리 모델을 실험 중입니다. 반경 500m 내에서 소비자들이 실시간으로 주문하면, 인근 도보 배송원이 15분 내로 제품을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도심 밀집형 상권에서는 이런 초근거리 유통이 기존 택배보다 빠르고 저렴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제 유통의 경쟁은 더 이상 대형 물류창고나 트럭의 수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누가 더 가까이, 더 똑똑하게, 더 친환경적으로 도달하느냐가 승패를 가릅니다. 쿠팡의 로켓배송이 소비자 경험을 혁신했다면, 앞으로의 경쟁자는 ‘조용히 효율을 쌓는 기업’이 될 것입니다. AI로 재고를 예측하고, 로봇이 거리를 걷고, 소비자가 스스로 픽업하는 세상 — 유통의 최전선은 이제 창고가 아니라, 우리 동네 골목 끝입니다.


결국 유통의 본질은 여전히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일’입니다. 단지 그 연결의 방식이 변하고 있을 뿐이죠. AI가 도로를 계산하고, 로봇이 물건을 나르고, ESG가 그 길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유통의 전쟁터는 더 이상 먼 물류창고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도심, 그리고 그 마지막 1k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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