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암호화폐 이슈를 쉽게 정리해드리는 미국주식 연구센터입니다.
2025년 10월 12일 소식 전해 드립니다.
하룻밤 사이에 160억 달러가 사라졌다
미국 현지 시간으로 금요일 밤,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청산 사태가 벌어졌었죠. 단 몇 시간 만에 약 160억 달러 규모의 레버리지 포지션이 증발했는데요. 특히 비트코인(Bitcoin), 이더리움(Ethereum), 리플(XRP), 솔라나(Solana) 등이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비트코인 가격은 11만 1천 달러 수준으로 떨어졌고, 이더리움은 4천 달러 아래로 하락했으며, 다수의 알트코인은 하루 만에 20~40% 가까이 폭락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청산(liquidation)’이란 투자자들이 빌린 돈으로 레버리지(차입금 확대 투자)를 사용해 포지션을 잡았을 때, 시장이 반대로 움직이면 거래소가 자동으로 그 포지션을 강제로 정리해 버립니다. 이 과정에서 담보로 잡혀 있던 자산이 한꺼번에 시장에 쏟아지기 때문에 가격이 더 빠르게 떨어지게 되죠. 이번 폭락은 투자자들이 자발적으로 팔아서 생긴 하락이 아니라, 자동화된 시스템이 거의 동시에 수십억 달러어치의 포지션을 청산하면서 발생한 결과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해볼게요. 예를 들어 계좌에 100달러를 가지고 있고, BTC/USD 거래에서 20배 레버리지를 걸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 경우 실제로는 2,000달러어치의 거래를 하는 셈이 됩니다. 겉으로 보면 소액으로 큰 거래를 할 수 있으니 이익이 커질 것 같지만, 반대로 위험도 커집니다. 만약 비트코인 가격이 단 5%만 떨어져도, 그 하락분이 곧바로 담보금(100달러)을 초과하게 됩니다. 그러면 더는 증거금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거래소가 포지션을 강제로 청산해버립니다. 이게 바로 선물 시장에서 말하는 ‘청산’입니다.
문제는 이런 일이 한두 명에게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수많은 투자자들이 동시에 레버리지 포지션을 잡고 있기 때문에, 일정 가격선이 무너지면 연쇄적으로 청산이 터지게 됩니다. 한 번 가격이 빠지면 다음 가격대에 있던 포지션이 또 무너지고, 그것이 다시 다음 청산을 불러오면서 폭락이 가속화되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기본적으로는 무리한 레버리지를 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고로 저는 레버리지를 전혀 쓰지 않습니다). 초보자일수록 낮은 배율로 시작하는 게 안전하죠. 그리고 ‘스탑로스(stop-loss)’라고 부르는 자동 손절 주문을 걸어두는 것도 효과적입니다. 이건 미리 정해놓은 가격에 도달하면 포지션을 자동으로 정리해 손실을 제한하는 기능입니다. 설령 손해를 보더라도, 모든 자금을 잃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죠.
또 한 가지 중요한 건 증거금 비율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겁니다. 증거금 비율이 100%에 도달하면 포지션은 자동으로 청산됩니다. 이를 피하려면 중간에 추가 증거금을 넣거나 레버리지를 줄이는 방식으로 위험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시장이 불리하게 움직이더라도 포지션을 조금 더 오래 유지할 수 있죠.
이런 구조를 이해하고 거래에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불필요한 손실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시장이 바닥을 찾는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그렇다면 이렇게 큰 폭락 이후 시장은 어떻게 회복될까요? 이런 상황에서는 단기간의 ‘급반등’보다는 비교적 느리고 단계적인 바닥 다지기가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과정을 이해하는 게 지금 시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스플릿 캐피털(Split Capital)의 자히르 엡티카르(Zaheer Ebtikar) 최고투자책임자에 따르면, 이런 급락 직후에는 비교적 일정한 패턴이 반복된다고 합니다. 시장 유동성을 공급하는 참여자들과 거래 인프라, 그리고 투자자 행동이 맞물리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흐름이 나타난다는 건데요.
가장 먼저 나타나는 건 이른바 ‘출혈(bleed-out) 단계’입니다. 청산 주문이 거래소를 뒤덮으면서 가격이 더 깊이 밀려 내려가고, 이 시점에서 시장 조성자(마켓 메이커)들이 일시적으로 거래를 줄이거나 멈춥니다. 마켓 메이커는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 매수자와 매도자가 언제나 거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문 기관인데요. 변동성이 너무 커지면 이들도 위험을 줄이기 위해 잠시 후퇴합니다.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에서 선장이 방향타를 잡지 않고 파도부터 먼저 피하는 것과 비슷하죠.
이때 현물(spot) 시장과 선물(futures) 혹은 무기한(perpetual) 시장 사이의 가격 차이가 커집니다. 이 차이를 이용해 마켓 메이커와 기관 투자자들은 ‘차익거래(arbitrage)’를 통해 균형을 맞추려는 움직임을 시작합니다. 한쪽 시장에서 싸게 사고 다른 쪽에서 비싸게 파는 방식인데요. 이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시장은 쉽게 반등하지 않습니다. 시간과 체력이 필요한 과정입니다.
두 번째는 ‘데이터 피드 안정화’ 단계입니다. 시장이 급격히 출렁일 때는 거래소나 데이터 제공 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초과해 버립니다. 주문 체결이 지연되거나 실시간 정보가 끊기기도 하죠. 교통체증이 심할 때 내비게이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런 상황이 정리되고 데이터가 정상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하면, 큰손 투자자들과 마켓 메이커들이 다시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입해 매도 물량을 흡수하기 시작합니다. 공포 속에 쏟아져 나온 매도 물량을 천천히 ‘줍는’ 단계입니다.
세 번째는 ‘딜러 언와인드(dealer unwind)’입니다. 폭락 당시 낮은 가격에 매수한 포지션을 점진적으로 되파는 과정인데요. 마켓 메이커들은 한 번에 팔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다시 가격이 급락할 수 있기 때문이죠. 특히 ETF 시장이 문을 닫는 주말에는 유동성이 얇아지기 때문에 이 과정이 더 느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은 ‘바닥 형성(finding a floor)’ 단계입니다. 가격이 일정한 범위 안에서 안정되기 시작하고, 공포감에 움츠러들었던 투자자들도 서서히 시장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이때가 단기적인 저점이 형성되는 구간인데요. 여기까지 오기까지는 며칠, 길게는 몇 주가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상황은 바로 그 과정을 앞두고 있는 단계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패턴을 염두에 두고 최근 비트코인 차트를 봐볼까요.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10월 10일 저녁 시간대에 발생한 급격한 낙폭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급락은 단순한 투자자들의 공포 매도가 아니라 대규모 청산(liquidation)이 연쇄적으로 발생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규모 레버리지 포지션이 강제 정리되면서 가격이 수직으로 밀려내렸고, 이 과정에서 거래량(하단의 초록색 및 빨간색 바)도 급격히 치솟았습니다. 시장이 패닉 상태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신호입니다.
하락 직후 차트를 보면 일시적인 반등이 시도되었지만, 곧바로 추가 매도 압력이 이어지며 가격이 112,000달러 부근에서 횡보하기 시작합니다. 시장 조성자(마켓 메이커)가 완전히 복귀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동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전형적인 현상입니다. 즉, 앞서 설명했던 ‘출혈(bleed-out) 단계’에서 ‘데이터 피드 안정화 단계’로 넘어가는 구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주말로 접어드는 시점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ETF(상장지수펀드) 시장이 운영되지 않는 주말에는 현물 시장의 유동성이 줄어들어, 큰 폭의 회복보다는 느린 바닥 다지기 과정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차트 역시 가격이 특정 지점에서 장시간 옆으로 흘러가는 모습(횡보)을 보여주고 있는데, 마켓 메이커들이 점진적으로 매도 물량을 흡수하고, 시장이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단의 거래량을 보면 폭락 직후 거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잦아드는 흐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초기 패닉 매물이 소화되고, 공포 국면이 점차 안정되는 과정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패턴입니다. 다만 이런 움직임은 한 번의 반등으로 끝나기보다는 며칠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격 급한 투자자들은 V자 반등을 바라고 있겠지만, 시장의 진정세가 본격화되는 데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와 비트코인의 뜻밖의 연결고리
시장이 충격을 소화하고 있는 와중에, 전혀 다른 영역에서 비트코인의 이름이 전 세계 뉴스 헤드라인에 등장했습니다. 올해 노벨 평화상(Nobel Peace Prize) 수상자는 베네수엘라의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María Corina Machado)였는데요. 그녀는 과거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을 “저항의 수단”이라고 표현한 인물입니다.
2024년 비트코인 매거진(Bitcoin Magazine)과의 인터뷰에서 마차도는 비트코인이 베네수엘라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설명했습니다. 오랜 기간 초인플레이션에 시달려온 베네수엘라에서는 자국 화폐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일상적인 경제활동조차 불가능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산을 지키고 생존하기 위해 비트코인을 활용하기 시작했죠. 투자가 아니라 생존 수단이었습니다.
그녀는 처음에는 비트코인을 인도주의적 도구로 봤다고 말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권위주의적 통제를 우회하는 ‘정치적 저항 수단’으로 발전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나아가 민주주의로 전환된 미래의 베네수엘라에서 비트코인을 국가 준비자산의 일부로 활용하고 싶다는 비전도 밝혔습니다.
이것은 상징적으로 큰 사건입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공개적으로 비트코인을 지지하고 정치적 변화의 도구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죠. 베네수엘라처럼 인플레이션이 극단적인 나라에서는 정부가 화폐 시스템을 통제하는 상황에서도 비트코인이 ‘탈출구’ 역할을 해왔습니다. 암호화폐가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권리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암호화폐에 문을 연 모건스탠리
이 와중에 전통 금융 시장에서도 중요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가 10월 15일부터 전 고객에게 암호화폐 펀드 접근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한 겁니다. 지금까지는 최소 150만 달러(약 21억 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하고 높은 위험 선호도를 가진 일부 고객만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펀드에 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은퇴 연금 계좌를 포함해 훨씬 더 넓은 투자자층이 접근할 수 있게 됩니다.
이 결정에는 미국 정부의 정책 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올해 여름 미국 행정부는 퇴직연금 계좌가 암호화폐, 금, 사모펀드와 같은 대체자산에 투자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습니다. 이 조치로 인해 암호화폐를 포함한 자산 편입의 법적 리스크가 줄어들었고, 모건스탠리와 같은 대형 금융기관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겁니다.
모건스탠리는 블랙록(BlackRock), 피테딜리티(Fidelity Investments)와 같은 기관의 ETF 상품을 통해 고객들에게 암호화폐 투자 기회를 제공합니다. 내부 투자위원회는 공격적인 포트폴리오 기준으로 최대 4%까지 암호화폐 자산을 편입할 수 있다고 권고했는데요. 이런 움직임은 암호화폐가 전통 금융의 ‘공식 자산군’으로 점점 편입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집니다.
참고로 ETF(상장지수펀드)는 투자자가 직접 암호화폐를 보관하지 않고도 코인 가격에 투자할 수 있는 상품입니다. 미국에서 2024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ETF가 승인된 이후 지금까지 약 770억 달러 규모의 자금이 유입됐습니다. 여기에 모건스탠리 고객까지 합류한다면 자금 규모는 훨씬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몇 주, 시장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까
어쨌든 단기적으로는 시장이 상당한 충격을 받은 상태입니다. 마켓 메이커들이 유동성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고, 주말 동안은 ETF 시장이 멈추기 때문에 회복 속도는 더디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빠른 반등을 기대하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다소 지루하고 답답한 구간이 이어질 수도 있죠.
하지만 동시에, 더 큰 흐름에서는 암호화폐가 점점 기존 금융 시스템과 정치 질서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비트코인이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저항 수단’으로 쓰이고, 월스트리트의 대표 주자가 대규모 자금을 시장에 끌어들이는 상황은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그림이었습니다.
시장 안정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만, 장기적 관점을 두고 큰 그림을 그리면서 차분하게 투자를 진행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