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패션을 소비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옷이나 가방을 직접 소유하는 것이 당연한 문화였다면, 이제는 필요할 때 빌려 입고 반납하는 방식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바로 패션 렌탈 서비스라는 새로운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의류 몇 벌을 빌려주는 수준이 아니라, 글로벌 산업으로 발전하며 소비자와 투자자 모두에게 주목받고 있는 영역입니다.
세계 패션 렌탈 시장 규모를 보면 그 성장세가 더욱 눈에 띕니다. 글로벌 리서치 기관에 따르면 패션 렌탈 시장은 2021년 약 12억 달러(약 1조 6천억 원) 규모였고, 2029년까지 연평균 8% 이상 성장해 약 30억 달러(약 4조 원) 이상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결혼식, 파티, 직장 행사 등 특별한 순간에 ‘한 번 입고 끝낼 의상’을 사기보다는 빌리는 데 거부감이 적기 때문에 앞으로 시장 확대 속도는 더 빨라질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렌트더런웨이(Rent the Runway)'가 있습니다. 2009년에 창업한 이 회사는 디자이너 드레스와 명품 가방을 구독형 렌탈 방식으로 제공하면서 패션업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렌트더런웨이는 2019년 기준 회원 수가 1천만 명을 넘어섰고, 2021년 뉴욕 증시에 상장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 기간에는 파티와 결혼식이 줄어들면서 실적이 부진했지만, 최근 행사 수요가 회복되면서 2023년 매출이 전년 대비 18% 성장한 약 3억 2천만 달러(약 4.3천억 원)를 기록했습니다. 이 회사의 흥미로운 점은 단순 대여 서비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패션 브랜드와 협력해 ‘재고 관리’와 ‘순환 소비 모델’까지 제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 시장도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최근 5년간 국내 패션 렌탈 시장 규모는 매년 평균 15% 이상 성장해왔고, 2023년 기준 약 6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특히 20\~30대 여성 소비자들의 비중이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결혼식 하객 패션이나 직장 내 공식 행사, 면접 의상 수요가 꾸준히 늘면서 관련 플랫폼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실제로 국내 의류 렌탈 스타트업 ‘클로젯셰어’는 누적 회원 수 20만 명을 돌파했으며, 한 달 구독료를 내면 최대 10벌의 옷을 대여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스타트업 ‘더클로젯’은 명품 가방 렌탈 서비스로 유명한데, 루이비통, 구찌, 프라다 같은 인기 브랜드 가방을 하루 5천 원 수준부터 빌릴 수 있게 하면서 2030 여성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패션 렌탈 서비스가 매력적인 이유는 분명합니다. 첫째, 비용 절감 효과입니다. 예를 들어, 한 벌에 수십만 원 하는 드레스를 단 한 번 입기 위해 구매하는 것은 부담이 크지만, 같은 드레스를 3만\~5만 원 정도로 빌릴 수 있다면 훨씬 합리적입니다. 실제 조사에 따르면 렌탈 서비스 이용자 중 70% 이상이 ‘구매 대비 비용 절감’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습니다. 둘째, 다양성과 경험의 가치입니다. 매달 다른 의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패션에 민감한 소비자들이 새로운 스타일을 부담 없이 시도할 수 있습니다. 셋째, 지속가능성입니다. 옷을 사고 버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문제를 줄이고, 순환 소비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친환경적 가치도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또 다른 기회가 생깁니다. 전통적인 패션 브랜드는 매 시즌마다 신상품을 팔아야 했지만, 렌탈 서비스와 협업하면 재고 부담을 줄이고 소비자 접점을 늘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H\&M과 자라 같은 글로벌 SPA 브랜드도 일부 국가에서 렌탈 실험을 하고 있고, 국내에서는 LF, 한섬 등 대형 패션 기업들도 렌탈 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온라인 플랫폼과의 협업도 활발한데, 무신사나 W컨셉 같은 온라인 패션 플랫폼에 렌탈 기능이 추가된다면 소비자 경험은 훨씬 넓어질 수 있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패션 렌탈 서비스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구조적인 기회로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구독 경제와 결합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실제로 렌트더런웨이의 회원 중 상당수는 ‘무제한 구독 모델’을 이용하는데, 월 159달러(약 21만 원)를 내면 원하는 만큼 드레스와 가방을 교체해 입을 수 있습니다. 이런 구독 모델은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만들어내고, 소비자가 쉽게 이탈하지 않도록 묶어두는 효과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클로젯셰어가 월 5만\~7만 원 구독 모델을 운영하면서 꾸준히 회원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물론 넘어야 할 과제도 있습니다. 옷의 세탁과 관리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수익성을 높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명품 가방이나 드레스는 훼손 시 보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소비자와 기업 간 갈등이 생길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과 운영 노하우가 쌓이면서 점점 효율화되고 있고, AI를 활용한 사이즈 추천, IoT 태그를 활용한 제품 관리 같은 혁신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결국 패션 렌탈 서비스는 소비자에게는 ‘똑똑한 소비’, 기업에게는 ‘새로운 수익 모델’, 투자자에게는 ‘미래 성장 산업’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패션이 더 이상 소유의 상징이 아니라 경험의 기회로 바뀌고 있는 지금, 렌탈 시장은 분명 앞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산업입니다. 앞으로 10년 안에 한국 시장만 해도 1조 원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옷은 옷장에 두는 게 아니라, 플랫폼에 두고 필요할 때 꺼내 입는다”는 인식이 일상화되는 순간, 패션의 가치와 산업 구조는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