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끊이지 않는 전세 사기 사건으로 인해 임차인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그 해결책 중 하나로 '전세 에스크로' 제도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목돈의 전세보증금을 임대인에게 직접 맡기는 현재의 방식 대신, 신뢰할 수 있는 제3자에게 맡겨 보증금 떼일 위험을 원천 차단하자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전세 에스크로가 과연 전세 사기의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을까요?
전세 에스크로란 무엇인가?
전세 에스크로(Escrow)란 임차인이 지급하는 전세보증금을 임대인이 아닌 은행이나 신탁사와 같은 금융기관(제3자)이 전세 계약기간 동안 안전하게 예치하고 있다가, 계약이 만료되면 임차인에게 직접 반환하는 제도입니다.
마치 온라인 쇼핑 시 구매자가 결제한 돈을 쇼핑몰이 잠시 보관하고 있다가 배송이 완료된 후 판매자에게 지급하는 '안전결제' 시스템과 유사한 원리입니다.
이를 전세 계약에 적용하면 임대인의 개인적인 신용 문제나 주택 가격 변동과 상관없이 임차인은 자신의 보증금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게 됩니다.
왜 필요한가? : 전세 사기 및 깡통전세의 위험
전세 에스크로 제도의 필요성은 현재 전세 제도가 가진 구조적 위험성에서 출발합니다.
전세 사기 예방: 악의적인 임대인이 이중 계약을 하거나, 신탁 사기를 벌이는 등의 사기 행각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습니다. 보증금이 제3자에게 예치되어 있으므로 임대인이 이를 유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깡통전세' 위험 감소: 집값이 전세보증금보다 떨어지는 '깡통전세'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임차인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보증금은 금융기관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어 주택 경매 결과와 무관하게 회수가 가능합니다.
'갭투자' 부작용 방지: 전세보증금을 레버리지 삼아 여러 주택을 매입하는 '무자본 갭투자'를 막는 효과가 있습니다. 임대인이 보증금을 다른 주택 매입 자금으로 활용할 수 없게 되므로, 시장의 과열을 막고 보다 건전한 임대차 시장을 조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현실의 벽: 전세 에스크로의 단점과 한계
이처럼 임차인에게는 매우 유리해 보이는 제도이지만, 현실적인 도입까지는 여러 걸림돌이 존재합니다.
전세 공급 감소 및 월세화 가속: 임대인 입장에서 전세보증금은 주택담보대출 상환이나 또 다른 투자를 위한 중요한 자금원입니다.
만약 보증금을 예치해야 한다면 전세를 놓을 유인이 크게 줄어들게 됩니다.
이는 전세 매물 감소로 이어지고, 결국 전세의 월세화를 가속화시켜 임차인의 주거비 부담을 높이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수수료 부담: 에스크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기관은 보증금을 관리하는 대가로 일정 수수료를 요구하게 됩니다.
과거 시범 사업에서는 거래대금의 0.05% 수준이었으나, 장기간 보증금을 예치하는 전세의 특성상 수수료율과 부담 주체(임대인/임차인)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현재 이용 가능한 서비스의 부재: 가장 큰 현실적 한계는 현재로서는 전세 계약기간(통상 2년) 전체에 걸쳐 보증금을 예치하는 형태의 '전세 에스크로' 상품을 제공하는 금융기관이 사실상 없다는 점입니다.
일부 은행에서 부동산 매매 잔금이나 보증금 '송금' 과정의 안전을 위한 일회성 에스크로 이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이는 계약기간 전체의 보증금 안전을 보장하는 본래의 취지와는 거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