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기술 수출만 10조 성과
국내 신약 플랫폼 관련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가장 큰 이유는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 환경에 맞는 성장 전략이기 때문
신약 개발을 위한 자금을 조달하는 데 구조적인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플랫폼 기술 분야가 경쟁력을 갖게 되면 조기에 기술수출을 할 수 있어 자금 확보가 가능해짐
특히 독점 계약이 아닌 만큼 여러 빅파마와 항암·비만·치매 등 다양한 질환에 대해 기술이전 계약이 가능
아울러 개발 단계와 판매량 등에 따라 지속적으로 자금이 유입되기 때문에 자금난에서도 벗어날 수 있음
전문가들은 국내 바이오 플랫폼 기업들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려면 중간 단계의 투자와 정부, 대형 병원과 연계하는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
22일 업계에 따르면 코스닥 시가총액 10위 내 신약 개발 기업 중 HLB를 제외한 기업은 모두 플랫폼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
바이오산업에서 플랫폼이란 기존 의약품을 개선하거나 신약 후보 물질을 도출할 수 있는 기반 기술
코스닥 시총 1위 기업인 알테오젠은 전 세계 매출 1위 의약품 ‘키트루다’에 피하주사(SC) 제형 변경 플랫폼 ‘ALT-B4’를 적용해 곧 상업화를 앞두고 있음
펩트론은 장기 지속형 약물 전달 플랫폼 ‘스마트데포’를 기반으로 일라이릴리와 장기 지속형 비만 치료제 기술평가 계약을 맺었고,
에이비엘바이오는 뇌혈관장벽(BBB) 투과 플랫폼 ‘그랩바디-B’를 바탕으로 올 4월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30억 2000만 달러(약 4조 1000억 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 에이비엘바이오의 기술이전 계약은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 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
국내 산업구조상 대규모 신약 개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K바이오 업계는 신약 개발보다 플랫폼 분야에 공격적으로 진출해 성과를 내고 있음
대규모 임상시험을 자체 주도하기에는 자금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국내 바이오 기업들은 오래전부터 글로벌 제약사에 신약 후보 물질을 초기 단계에 기술이전하는 사업 모델을 채택해왔음
다만 이 경우 단일 신약 후보 물질이기 때문에 기술 반환의 위험성이 있고, 또 다른 물질을 기술이전하기까지 불확실성이 큼
반면 원천 기술인 플랫폼을 보유한 기업은 지속적인 기술이전을 노릴 수 있는 만큼 단일 신약 물질만 개발하는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
김명기 LSK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신약 후보 물질을 중심으로 개발하는 기업은 1개 물질을 기술수출하고 나면 다음 물질을 수출하기 어려워 확장성이 떨어진다”며 “플랫폼을 보유한 기업은 오히려 기술이전 계약을 1건 체결하고 나면 기술성이 검증됐다는 이유로 후속 계약을 체결하기 쉬워져 기업가치가 지속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
과거에는 신약 플랫폼을 중심으로 하는 사업을 꺼리는 분위기가 있었음. 단일 신약 후보 물질을 기술수출하는 것보다 플랫폼 기술수출의 계약 규모가 작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 하지만 수출 실적이 쌓이면서 규모도 커지고 있음. 더구나 항암·비만·치매 등 치료 분야에서 기존 약물의 편의성을 높이거나 특허를 연장하려는 글로벌 빅파마들의 플랫폼 수요 또한 커지고 있음
한국거래소도 혁신 플랫폼 기술을 보유한 바이오 기업들에 대해서는 상장 문턱을 낮추고 있음. 알지노믹스는 최근 한국거래소로부터 기술특례상장 예비 심사 승인을 받고 연내 상장 절차를 마무리하겠다고 이날 밝혔음
알지노믹스는 리보핵산(RNA) 치환 효소 기반 RNA 편집·교정 플랫폼을 보유한 기업. 일라이릴리와 올 5월 최대 1조 9000억 원 규모의 유전성 난치 질환 치료제 개발을 위한 플랫폼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하면서 기술력을 입증
삼성서울병원에서 스핀오프한 ADC 플랫폼 기업 에임드바이오 또한 최근 코스닥 상장 예비 심사 승인을 받았음. 표적단백질분해(TPD) 플랫폼 기업인 유빅스테라퓨틱스는 최근 기술특례상장을 위한 기술성 평가를 ‘A, A’ 등급으로 통과해 상장 예비 심사 신청 자격을 획득
국내 신약 개발 플랫폼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중간 단계의 투자와 대학병원과의 생태계 구축이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옴
예를 들어 노보노디스크의 경우 오슬로·코펜하겐 대학병원과 공동으로 장기간 임상시험을 진행하며 글로벌 데이터를 확보.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는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지금까지 기술이전 중심의 전략으로 초기 성공 기반을 마련했지만 이제는 플랫폼 기술의 실제 임상 검증과 후기 개발 역량, 글로벌 공동 개발을 통한 신뢰 확보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
<시사점>
한국 바이오산업은 지난 20여 년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습니다. 초기(2000~2010년 초반)에는 바이오시밀러와 위탁생산(CDMO) 중심의 사업 모델로 세계 시장에 발을 들였지만, 이제(2010년 중반 이후)는 신약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혁신이 바이오 산업의 방향타가 되고 있습니다. 단일 신약 개발의 막대한 리스크와 장기간 소요되는 연구개발의 특성을 감안하면, 특정 기술을 여러 파이프라인에 적용할 수 있는 플랫폼 전략은 지극히 합리적인 진화라 할 수 있습니다.
플랫폼 전략의 장점은 매우 명확합니다. 단일 신약 개발의 불확실을 줄이고 여러 후보 물지에 적용 가능한 범용 기술을 통해 연구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알테오젠의 히알루로니다제 기술은 기존 정맥주사 의약품을 피하주사로 전환해 환자 편의성과 시장성을 동시에 높였으며, 리가켐바이오와 같은 기업들은 항체-약물 접합체(ADC) 플랫폼으로 글로벌 빅파마와의 제휴에 성공했습니다.
이들 기술은 단순히 하나의 제품에 머물지 않고, 여러 블록버스터 신약에 적용되어 로열티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한국 바이오가 '제조 강국'을 넘어 '기술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발판인 셈입니다.
그러나 한국바이오 기업들에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플랫폼 역시 임상과 규제라는 관문을 넘어야 하며, 특허 경쟁에서 밀려날 경우 하루아침에 기업 가치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미 글로벌 제약사들과의 지적재산권 분쟁이 현실화된 바 있으며, 자금 조달의 변동성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는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과학기술 생태계가 국제 지적재산권 체계 속에서 어떻게 경쟁할 수 있는가를 묻는 시험대이기도 합니다.
“기술은 있으나 상용화는 더디다”는 비판을 불식시키려면, 정부와 산업계가 힘을 모아 국제 규제 정합성, 임상 인프라 지원, 특허 방어 체계 강화에 나서야 합니다.
세계 제약 시장은 이미 ‘오픈 이노베이션’이 대세입니다. 빅파마들이 외부 기술을 사들이며 파이프라인을 보완하는 시대에, 한국 바이오 기업들은 저비용·고효율 플랫폼으로 분명한 경쟁우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앞으로 3~5년, 플랫폼 기술이 실제 상업화 성과를 내느냐가 한국 바이오의 성패를 가를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
국제 수준의 임상 연구 인프라를 확보하고, 인공지능, 바이오인포매틱스와 같은 첨단기술을 접목하여 후보물질 발굴과 임상 성공률을 높여야 합니다.
향후 정부는 생태계 조성에, 기업은 기술 집중과 글로벌 파트너십 강화에, 투자자는 냉철한 선택과 분산 투자에 나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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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news.naver.com/article/newspaper/011/0004536129?date=20250923